• 농업분야의 개방파고가 날로 거세다.

     

    마지막 빗장인 쌀 시장도 열렸고 조만간 한중 FTA 마저 타결되면 가장 염려하는 중국 농산물도 밀려들 태세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즈음,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정부는 농업의 '6차 산업화'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6차 산업이란 1차 농산물과 2차 가공품, 3차 유통과 서비스까지 부가가치를 배로 곱하는 '1Ⅹ2Ⅹ3=6'을 말한다. 먹거리에 문화를 얹고 관광과 서비스까지 활성화 시키는 융복합이다.

     

    그 중심에는 변함없이 농업인 CEO와 농업 경영체가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소득 1억원이 넘는 농업경영체는 1만7291개에 이른다. 1년새 3.3% 562명이 늘어난 수치로 그중 개인 농업인은 1만6401명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같은 성공 농업인 육성책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2017년까지 매출 100억 이상의 농기업 1000개, 일자리 5000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잘사는 농촌과 부자 농업인'을 만들겠다는 이른바 농부(農富) 프로젝트다.

     

    뉴데일리경제와 시장경제신문은 발빠르게 트렌드를 읽고 이미 융복합화에 나서 억대의 조수익을 올리는 분야별 마루 농업인을 소개하는 [농부(農富)열전]시리즈를 마련했다.

     

    마루는 꼭대기나 하늘을 칭하는 순 우리말이다. (편집자註)

     

     

  •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농부(農富)열전 ①]시월의 제주는 노랑이다. 한라산 오름마다 노지 감귤과 황금향, 천혜향, 한라봉 등 감귤의 사촌들이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이맘때면 제주의 석양도 감귤 빛을 닮아 있다.

     

    그런 제주에서 또다른 노랑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새콤달콤의 대명사 '골드키위'다.
    제주시 동쪽 도련동 일대에 가면 감귤 못지않게 키위가 눈에 많이 띈다. 200여 키위농원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데다 본격 수확철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사실 키위는 '제2의 감귤'로 불리며 제주의 제2 과수가 된지 오래다. 500여 농가가 300ha에서 키위를 재배하고 있으며 연간 8000톤이 넘는 키위를 생산한다. 키위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아열대 과일중 가장 이름이 알려진데다 맛과 효능도 좋고 농가수입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바로 이곳에 '키위랑' 브랜드로 억대의 조수익을 올리는 농가가 수두룩한 한라골드 영농조합법인이 있다. 이곳의 법인 대표인 고봉주씨는 우리나라 키위 농가 1세대 격이다.

     

    대학 졸업후 잠시 직장생활을 하던 그가 키위농사를 시작한 때는 30년전인 1984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그가 감귤 대신 키위를 심자 주변의 반응은 뜨악했다.

     

    잘알려지지도 않은 생소한 아열대 과일, 까슬까슬한 털이 달린 이상한 모양새, 재배경험도 없고 판로조차 불투명한 터에 키위를 택하자 가족들 조차 만류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끄덕도 하지 않았고 묵묵히 키위농원 가꾸기에 전념했다.

     

    그는 제주의 햇살과 바람을 믿었다. 여름의 충분한 일조량, 가을철의 시원한 날씨, 맛이 들기에 적당한 겨울 온도, 1년 내내 고른 강우량은 키위의 주산지 뉴질랜드와 다를 바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의 선택은 적중했다. 때마침 비타민 보고인 키위의 효능이 하나둘씩 알려지면서 판매량이 급속히 늘었다. 그렇게 키위는 30여년간 해마다 억대의 조수익을 꾸준히 올려주며 효자과수가 됐다. 재배면적을 2ha(6000여평)로 늘린 최근 3~4년전부터는 수익이 2억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그의 고수익 비결은 '어떻게 생산하느냐'와 함께 '어떻게 파느냐'란 문제를 늘 함께 고민했던 농업철학에 있었다. 고 대표의 참다래 농사는 철저히 시장지향적이다. 법인 일과 함께 직접 하우스에서 유기농 참다래를 생산하는 그의 시선은 늘 시장에 맞춰져 있다.

     

    애써 생산한 농산물을 제대로 팔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시장이 원하는 참다래 생산은 그래서 줄곧 그의 중심이었다. 키위종자와 경영체 구성에 골몰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당시 우리나라 모든 키위 농가는 뉴질랜드의 제스프리 품종을 재배했던 터라 매출액의 15% 가량을 로열티로 지급해야 했다. 그 비용만도 연간 100억원이 훌쩍 넘었다.

     

    또 개별농가들이 생산과 유통까지 모두 처리하다 보니 판로가 막히거나 제값을 받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는 남보다 한발 앞서 국산종자를 도입하기로하고 농원 한 곳을 농진청의 품종시험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3300㎡ 규모의 별도 하우스에서 6개 신품종을 시험재배하고 실증을 거쳐 마침내 지난 2007년 그가 그토록 고대하던 '한라골드'가 탄생했다.

     

    국내 육종 골드키위인 한라골드의 가장 큰 장점은 로열티가 없고 재배가 쉽다는 점이었다. 그린 키위보다 수확량도 30~50%가 많다보니 농가수익도 늘었다.

     

    손이 많이 가는 재배도 한결 수월해 졌고 키위에 치명적인 냉해와 궤양병 등에 대한 내성도 강해졌다. 그린키위가 원가지만 일자로 놓고 가지는 뻗치는 대로 빈 공간으로 유도하는 방식과는 달리 골드키위는 원가지를 기준으로 가지들을 바둑판 모양으로 만들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도록 해서 재배와 관리, 수확 등이 모두 손쉬워 졌다.

     

  •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2008년에는 165명의 키위 농가를 규합해 영농조합도 만들었다. 어려움이 적지않았지만 농가들을 독려하며 한라골드키위 확대에 힘쓴 결과 드디어 2009년 한라골드는 첫 선을 보였다.

     

    그가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신품종에 기대를 건 이유는 골드키위의 당도가 보통 13브릭스(Brix)를 넘는 데다 신맛이 거의 없어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입맛을 길들여 10년, 20년 후 미래의 소비자를 사전에 확보하자는 그만의 의중이었다.


    첫 해 생산한 20여톤 전량은 제주농협연합사업단에 출하했다. 과의 사업 공조에 대해 고 대표는 "농가 단위 개별 판매는 아무리 좋은 농산물을 생산해도 손해 볼 여지가 크다"며 "생산 규모화와 출하창구 단일화를 통해 이를 타개해 나가자는 취지였다"고 했다. 또 당시 외국산을 취급하지 않는 농협 매장에 '골드키위' 등을 공급함으로써 시장 요구를 만족시키자는 뜻도 포함돼 있었다.

     

    2010년에는 농진청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한라골드 '전용실시권' 계약도 맺으면서 날개를 달았다. 전용실시권이란 특허 발명에 대해 기간과 장소, 내용의 제한을 가하여 계약권자에게 독점적으로 허락한 실시권을 말한다. 현재 시중에서 볼 수 있는 한라골드키위는 모두 한라골드 영농조합의 표다.

  •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품종 균형화의 효과는 대단했다. 당도가 높고 식미감 마저 기존 헤스프리 등을 뛰어넘자 수요가 급증했고 농가들도 신바람을 냈다. 감귤과 키위를 함께 키우던 복합 농가들이 서둘러 키위 전업농 대열에 합류했다. 그와 함께 조합활동을 하던 40대 젊은 농군들은 현재 1ha당 평균 1억원 이상의 조수익을 올리고 있다.


    대신 골드키위 표준규격화를 위해 품질검사와 잔류농약 검사 등은 엄격히 시행했다. 수확시 당도는 10브릭스 이상으로 하고 규격화된 포장 박스에 브랜드는 '키위랑'으로만 출하시켰다.

     

    '키위랑'은 그가 2011년 뉴질랜드 제스프리사와의 송사까지 벌인 끝에 탄생시킨 한라골드키위의 고유 브랜드다. 전국 단위 공동계산과 정산시스템도 함께 구축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높였다.

     

  •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쉼없는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농가들이 직접 판매와 유통까지 맡기에는 힘이 벅찼다. 그래서 2012년에는 판매법인 한라골드를 세웠다. 규모화를 위해 자금도 유치하고 판매전문화를 꾀하기 위함이었다. 역시 성공작이었다.


    그동안 농협 위탁판매에만 집중하던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대형 마트나 홈쇼핑 진출이 가능해졌다. 지난해 처음 선보인 한라골드 홈쇼핑 판매는 대박을 쳤다. 한시간만에 준비한 모든 물량이 동이 났다. 올해는 골드키위 외에 레드키위 판매도 추진하고 있다.

     

    수요가 늘면서 아예 농원들이 몰려있는 도련동에 산지유통센터까지 만들었다. 1일 최대 500톤을 보관하는 저온저장고를 비롯해 연간 5000톤을 처리하는 선과장, 일일 최대 300톤을 모으는 집하장을 갖췄다. 10여명의 일자리도 새로 생겨났다.


    저온저장고 시설확충은 출하조절을 통한 가격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생과와 다양한 가공제품 개발로 새로운 시장 개척도 가능해졌다. 자체 품질 검사부서에 전문인력까지 늘어나 고품질 출하 구축이 시작됐다.

     

  •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그는 키위 생산과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도 꾸준히 고민한다. 지난해 처음 1000톤이 넘어 4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지난해 보다 50%가 늘어난 1500톤에 70억 매출이 목표다. 계획대로라면 2016년에는 그가 1차 목표로 삼았던 2500톤 생산에 100억 매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품목별로 출하 작형을 구성해 시장이 요구하는 품종과 물량을 꾸준히 공급하는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9-10월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레드키위로 가을 입맛을 끌어들인다. 레드키위는 앙증맞은 빨간 속살을 지닌 최신 품종으로 브릭스 17도 이상의 단맛으로 최근 높은 가격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일반 그린 키위와 달리 털이 없어서 표면이 매끄럽고 높은 당도를 자랑한다. 수확 후 숙성 기간을 거치면 당도가 18브릭스에서 22브릭스까지 올라가 상품가치가 매우 높다.

     

    10월-11월은 한라골드의 대표주자인 골드키위를 본격 출하해 소비자들을 입맛을 계속 유지시킨다. 이후 만생종인 원조 그린키위도 잇따라 출하하는 방안이다.

     

    키위 효능을 배가시킬 생과외의 부가제품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키위는 오렌지보다 2배, 사과보다 6배나 많은 비타민C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식이섬유와 미네랄, 항산화 성분은 물론 식물성 영양소와 소화기능을 돕는 각종 효소도 풍부해 다이어트 과일로도 이름이 높다.

     

    키위 하나면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 C를 모두 섭취할 수 있다. 키위비타민은 여기에 착안해 만든 제품이다. 요리에 활용하기 위한 키위식초, 간식용 키위젤리, 애주가들을 위한 키위 와이너리도 함께 개발됐다.
    직접 키위농장을 찾아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 팜파티와 팜투어도 오래전부터 추진중이다.

     

  •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하지만 가공과 부가가치 분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전문화였다. 농업법인이 생산과 유통, 판매에 가공까지 떠맡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이었다.

     

    제주도는 3차산업 비중이 78%로 월등히 높다. 1차산업은 17.9%, 2차산업은 불과 4.1%다. 가공 비중이 너무 약해 농산물을 2, 3차산업과 연결시키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여건도 고려했다.


    대신 그는 조심스레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내 키위 시장은 다국적군들의 경합이 벌어지고 있다.

     

    일찌감치 선점한 뉴질랜드를 필두로 칠레와 미국, 이탈리안산까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한중 FTA까지 타결될 경우 값싼 중국 키위들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키위는 중국이 원산지로 최근 중국의 키위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여기에 망고와 블루베리, 아시아베리 등 같은 아열대 과일들이 키위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시장도 정체기에 접어들고 있다. 1인당 키위 소비량은 수년째 1kg에 머물고 있다.

     

  •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그래서 그는 또다시 역발상을 꿈꾸고 있다. 우리 키위도 해외로 내보내겠다는 생각이다. 1차 공략지는 러시아 극동지역. 우리가 초창기에 그랬듯 아열대 과일에 대한 선호도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아직 초기단계지만 까다로운 검역 조건 등을 통과할 경우 이르면 내년 첫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류비용만 줄일 수 있다면 후숙과일인 키위의 특성상 상품 경쟁력은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꽃가루 생산이다. 키위는 은행나무처럼 암수 딴그루다. 그래서 수분수인 수나무를 꼭 함께 심어야 키위가 달린다. 수분수가 없으면 수분 성공률은 2%에 불과해 우리나라 농가들은 수입 꽃가루로 인공수정을 하고 있다.

     

    수입물량만도 연간 수백kg, 관련 비용도 10억대가 넘는다. 그래서 유통센터 인근에 꽃가루 생산시설을 만들고 자급을 꾀하고 있다. 제주 농업기술원과의 협력을 통해 연간 100kg 이상의 꽃가루를 만들어 비용을 줄일 계획이다.

     

  • ▲ 한라영농조합 고봉주 대표ⓒ뉴데일리 DB

     

    농촌에 대한 걱정에 그는 당당했다. 일종의 되고의 법칙이다. 고민과 걱정만 하지말고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얘기다. "막히면 뚫고 없으면 만들고 안되면 되게하고..."

     

    9순 노모를 모시며 고향 제주를 지키며 고수익을 올리며 행복한 농사꾼을 자임하는 그의 목표는 100세 농군이다. 기실 키위는 관리만 잘한다면 성목이 된 후에도 30~40년까지 수확인 가능한 과수다.

     

    50대 중반인 그는 그래서 지금도 어린 묘목을 심어 30~40년 후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이웃 키위 농가와 더불어서다.


    "제라진 골드키위 몬딱 드셔봅서양(굉장한 골드키위 모두 드셔보시라)"
    투박한 그의 제주어가 유난히 살갑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