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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의 영웅 조조(曹操)가 서기 220년 사망한 후 장남 조비(曹丕)가 왕위에 올랐다.
조비는 셋째 조식(曹植)보다 영리하지 못했다. 권좌에 올라서기 전, 부모로부터 재능이 동생보다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자랐던 조비는 조식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해 적당한 핑계를 삼아 죽여버리기로 했다.
조비가 조식을 불러 "일곱 걸음 만에 시 한 수를 지으라"고 했다. 못 지을 경우 이를 트집잡아 처형하려 했다.
조식이 일곱 걸음을 떼며 시를 읊는다.
‘콩깍지는 솥 밑에서 솥을 달구고/ 콩은 솥 안에서 운다/ (콩과 콩깍지는)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어찌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되었는고'
중국 문학사에 유명한 칠보시(七步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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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간장을 끊는 눈물의 시를 들은 형조식(文帝)은 자신의 졸렬함을 뉘우치고 동생을 놓아주게 된다.
중국 역사에서 조비-조식의 에피소드는 형제 갈등이 문학적으로 승화된 드문 사례다. 권력을 둘러싸고 형제간 피비린내 나는 살해극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서기 907년 후량을 세운 태조 주온은 둘째인 주우문을 황제에 앉히려 했다. 이에 반발해 주온의 셋째 아들인 주우규는 부친을 살해하고, 주우문을 죽인 후 황제에 올랐다.
부친을 시해하고 황제에 오른 사실을 알고 있던 넷째아들 주우정은 측근 장수들과 모의해 셋째 주우규를 살해했다. 형을 죽이고 황제에 올랐기에 동생들도 역모할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한 넷째 주우정은 그의 동생들인 주우옹, 주우휘, 주우능, 주우회 등 7명의 동생들을 각종 죄목을 씌워 차례로 죽였다. 황궁 내 살해극이 지속지는 동안 후당 군대가 쳐들어와 후량은 923년 개국 16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5대 10국 시기 남한의 중종(中宗)처럼 즉위한 후 10여년에 걸쳐 모두 15명의 형제를 죽인 황제도 있었다.
권좌를 둘러싼 형제 살해는 서양, 중동의 역사에서도 드물지 않았다. 심지어 오스만쿠르크에서는 메메드 1세(1521-1543)가 새로 술탄이 된 경우 형제들을 모조리 살해하는 것을 관습법으로 정하기도 했다.
우리 역사에서 대표적인 형제 분쟁의 주인공은 조선시대의 태종 이방원이었다. 형 정종으로부터 강압적으로 왕위를 물려받아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이방원이 자신도 왕위를 빼앗기게 될까봐 친형제인 방간, 이복형제인 방번, 방석들을 모조리 죽였던 것이다.
고금의 역사에서 형제간 분쟁은 주로 장자 승계의 원칙이 깨졌을 때 발생했다.
장자보다 차남 또는 삼남의 능력이 뛰어난 경우, 선왕이 장자가 아닌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하면서 이에 불복한 형을 중심으로 분쟁이 빈발했던 것이다.
▶ 황실 골육상쟁을 방불케 하는 오늘날 재벌가 분쟁
지도자를 합리적으로 선출하는 체제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형제간 피 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은 멈추었지만, 대기업에서는 형제 분쟁이 종종 현실로 투영되고 있다.
우리 재계는 삼성그룹, 현대그룹, 효성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두산그룹 등 대그룹의 창업주에서 2세, 3세로 경영권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진통들을 겪어왔다.
그동안 우리 재벌가 형제 분쟁이 국내에서만 이슈가 돼왔던 반면 작금에 펼쳐지는 롯데그룹 승계문제를 둘러싼 신동주-신동빈 형제간 분쟁은 한-일 두 나라에 걸쳐 생중계되다시피 하면서, 롯데 일가가 한국 재벌기업의 후진성과 2, 3세들의 탐욕성을 대변하는 것과 같이 여겨지고 있는 형국이다.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이번 분쟁은 피를 나눈 형제간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끝날 싸움처럼 어느 한쪽도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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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롯데그룹 형제분쟁의 원인은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에 있다.
70세였던 1995년 아들 구본무 회장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 후 자연으로 돌아가 명예롭게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삶을 살고 있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처럼, 일찌감치 두 아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했었더라면 오늘날 눈 앞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기막힌 광경은 볼 필요가 없었을 터였다.
19세 때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온갖 수모와 고생 끝에 기업을 하나씩 세우고 또 고국에 진출해 한-일 양국을 아우르는 대그룹을 일으킨 창업주 신격호. 그의 눈에서 두 아들의 역량은 하나같이 마음에 차지 않았을 수 있다.
그의 20년 숙원 사업이었던 123층 높이의 제2롯데월드 사업 역시 ‘내가 직접 뛰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의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했을 것이다. 동생인 신선호 산사스 회장도 언급했듯, 그는 앞으로도 10년 이상은 건장하게 경영일선에서 뛸 수 있을 것으로 스스로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진작에 인정했어야 했다. 두 아들에게 경영권을 모두 넘겨주고 나면 자신의 남은 삶이 의미 없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롯데그룹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을까.
신 총괄회장이 승계문제에 대해 전혀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던 듯 하다. 두 아들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갈라놓은 것은 있었다. 지주사인 광윤사,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은 비슷하게 갖도록 하고, 장남 신동주는 일본롯데를, 차남 신동빈은 한국롯데를 경영토록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형제의 우애가 좋은 집안이었다면 이같은 시나리오도 실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동주-신동빈 형제간 분쟁이 어디부터 시작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현재까지 객관적으로 나타난 정황으로 볼 때는 일본롯데를 맡기로 한 신동주가 2013년 8월부터 한국의 롯데제과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동생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형이 야금야금 국내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하자, 한국롯데 경영권의 위협을 느낀 신동빈 회장이 아예 분쟁의 싹을 자르기 위해 반격에 나섰다는 시각이다.
▶ 창사 이래 최대 위기 롯데그룹 어디로?
롯데그룹 형제 분쟁은 겨우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가기 시작한 ‘대기업 혜택-경제살리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기정 사실로 굳어졌던 SK그룹 최태원 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8.15 대사면론에도 역풍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엘리엇 사태 이후 재벌그룹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잃고 있다. 롯데 일가는 한국 경제, 대기업들에 끼치는 악영향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당장 롯데그룹 자체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이 예고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로 예정돼 있는 면세점 신규 심사에서 소공동 롯데면세점, 롯데월드면세점은 힘겨운 살아남기 투쟁이 예상된다. 연간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알짜 사업이다.
부산 북항 복합리조트 건설이며, 계열사 증시 상장 프로젝트며 줄줄이 차질이 예상된다.
이번 사태는 가히 롯데그룹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에 빛을 발하던 100대 기업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6곳에 불과하다. 1980년대 4대그룹의 위상을 자랑하던 대우그룹이 해체되리라 예상한 전문가는 단 한명도 없었다.
롯데그룹이 오늘의 진통을 딛고 재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막다른 길을 치달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을 비롯한 두 아들이 어떻게 이번 위기를 타개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신격호 회장의 건강에 이상 징후가 있는만큼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의 역할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으로, 롯데호텔의 지배주주사인 12개 L투자회사와 일본의 롯데홀딩스 경영권을 장악했지만, 이들 회사의 대주주인 신격호 총괄회장 옆에서 신동주가 작전을 짜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반격 카드들이 나올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빠른 시일 내에 사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간을 끌수록 한국의 대기업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들끓고, 롯데그룹은 불리한 위치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자칫 이번 사태가 소송전으로 비화할 경우 수년동안 법리 공방이 펼쳐지면서 롯데그룹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삼부자의 현명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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