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 '경기 악화일로.. 기업인 사기진작 위해서도 대법원의 결단 희망'
  • 의료계 전문가들 ‘환자 상태 심각- 서울고법 판결은 사형 선고와 다름없어’
    경제계 '경기 악화일로.. 기업인 사기진작 위해서도 대법원의 결단 희망' 

     

    춘추전국시대였던 B.C. 270년경. 조나라에 조사(趙奢)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의 아들 조괄(趙括)은 병서와 병법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이 탁월해 조정의 군신들이 ‘천재적인 장수의 기질이 있다’고 칭송했다. 그러나 부친인 조사만은 ‘전쟁은 이론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부인에게 ‘임금께서 조괄을 중용하려 할 경우 제지해 달라’고 유언한 후 숨을 거뒀다.

     

    이후 조나라 효성왕 때 진나라가 침공해 들어왔고, 왕은 모친(조사의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괄은 병서에서 익힌 작전대로 방어전을 감행했다가, 40만대군이 포로로 잡혀 중국 역사상 가장 참혹하게 몰살당하는 참패를 초래하고 말았다.

     

    조괄의 교과서적 전쟁법은 ‘교주조슬(膠柱調瑟)’의 전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야금이나 거문고, 비파에서 줄의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장치를 ‘주(柱)’라고 한다. 한 비파 악공이 매번 연주 때마다 음을 맞추기 위해 이 '주'를 미세하게 움직여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거문고에 아교로 붙여버렸다. 

     

    처음 몇 번은 편리하기가 이를데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줄이 늘어지자 악기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폐물이 되고 말았다.

     

  • 최근 CJ그룹 이재현 회장에 대한 서울고법의 판결을 두고 ‘교주조슬’에 비유하는 법조인들이 적지 않다.

     

    서울고법은 지난 15일 이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했다.

     

    기업의 CEO나 임원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영국, 미국등 영미법에서 형사법 적용은 폐지하고, 주주들에게 얼마만큼의 손해를 입혔는지 금액을 산정해 변상케 하는 민사법만을 적용한지 오래다.

     

    독일, 일본 등 대륙법에서는 아직 배임죄를 형사법으로 다루고는 있지만, 매우 엄격하게 적용할 뿐 우리나라처럼 빈번하게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다루지는 않는다.

     

    전세계적인 흐름이 기업 경영자 사건의 경우 회사에 끼친 손해를 금전적으로 배상토록 하되, 인신 구속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서울고법은 지난 15일 이 회장에 대해 “장기간 다수의 임직원을 동원해 거액의 세금을 포탈하고 개인재산 증식을 위해 그룹 총수의 지위를 이용해 업무상 횡령, 배임 범죄를 저질렀다”며 엄중한 처벌을 내린 배경을 설명했다.

     

    이 중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일본 부동산이다.

     

    검찰은 일본 부동산 매입과 관련해 이 회장에게 309억원의 배임 혐의를 적용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상고심에서 이 회장의 배임에 따른 범죄수익을 구체적으로 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연대보증 당시 Pan Japan㈜이 변제능력 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상당한 정도의 대출금 채무를 자력으로 임의 변제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보여 대출금 채무 전액을 Pan Japan㈜의 이득액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었다.
     
    물론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은 대법원의 파기 환송 취지를 모두 감안한 것으로 여겨진다.

     

  • 하지만 대법원 출신 변호사는 물론, 서울고법 판사 출신 변호사들도 이번 판결이 ‘법 정의를 엄격하게 실현하고자 하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이 회장의 건강 상태를 감안하면 집행유예 정도의 판결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내비치고 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거쳤던 J 변호사(전 법원행정처장)는 이 회장 실형선고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건강문제가 심각한 이 회장이) 형 집행 중 죽으면, 법원은 검찰 탓을 하고, 검찰은 법원 책임이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벌 총수 재판 때면 하나같이 휠체어에 마스크를 끼고 법정에 등장했다가, 출소하면 밝은 표정으로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아왔던 국민들에게는 이 회장의 경우도 엄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적 시선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회장의 건강상태를 추적 취재한 언론인들과 의료계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그는 실제 투옥될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이 ‘사형 선고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지병인 만성신부전과 신장 이식 후유증, 근육이 위축되는 유전병 샤르코-마리투스(CMT) 등으로 인해 갈수록 쇠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2년 반 가량 서울대병원 병실에 갇혀 있는 동안 체중은 신장 이식을 받을 당시의 60㎏에서 현재는 50㎏ 수준으로 떨어졌고 설사 증세가 빈번한데다, 진행성 샤르코·마리·투스병(CMT)으로 인한 근육 소실이 심각하다는게 의료진의 전언이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유전 질환이다. 유전자 이상으로 말초신경의 수초에 이상이 생기면서 손과 발의 근육이 점점 위축되어 힘이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걷지 못하고, 움직임 부족으로 전신 근육도 감퇴하게 된다.

     

    1886년 프랑스, 영국의 의학자들인 샤르코, 마리, 투스 등 세사람에 의해 발견된 지 100년 이상이 지났지만, 이 병의 치료제는 아직도 동물실험 단계에 머물고 있으며, 병의 진행을 근본적으로 멈추게 하는 치료제는 없는 상태다.

     

    이 회장의 신부전증 수술 후유증도 심중한 상황이다. 그는 만성신부전증으로 고생하던 그는 2013년 8월 아내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았다.

     

    의학적으로 신부전증 환자의 신장 이식 수술은 부모나 자식 등 직계 혈연의 신장을 받아야만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의 경우 생물학적으로 남이나 다름 없는 아내의 신장을 받았기 때문에 혈연관계에 있는 가족의 신장을 받은 경우보다 면역 억제제를 강하게 써야 했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은 정상인은 거의 걸리지 않는 곰팡이나 특이한 바이러스 감염에 걸렸고, 설사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영양은 대장에서 흡수되기 때문에 설사가 잦다는 것은 영양 섭취에 문제가 생겨 몸 전체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주치의인 신장내과 김연수 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면역 억제제가 신경 독성이 있는데다 간 기능도 나빠지게 해 갈수록 진행되는 샤르코·마리·투스병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그렇다고 면역 억제제를 줄이면 이식 신장이 망가져 위험해지므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에게 샤르코·마리·투스병과 신장이식 후유증이 겹치면서 몸 상태를 계속 악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 익명을 요청한 한 대학병원 내과 과장은 “서울대병원 측 설명이 사실이라면 이 회장은 교도소에 수감될 경우 수개월 내에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주장들이 사실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서울고검 부장 검사 출신의 C 변호사는 “이 회장에 대한 판결을 범죄 자체에 대한 미시적 접근에서 좀 더 넓은 광의적 시각으로 해석한다면 결국 그의 죄질이 사형에 해당하느냐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법원 재상고를 선택한 CJ 변호인측은 이번 재상고를 통해 집행유예 등 원하는 결과를 얻을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하고 있다. 대법원에서는 원심의 법리 해석과 적용의 타당성만을 따지기 때문에 이번 재상고에서 변호인단은 배임 부분의 무죄를 주장한다는 전략이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이 회장의 건강문제와 별개로 ‘악화일로를 치닫는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이 회장에 대한 긍정적 판결은 기업인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일자리 창출, 투자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글로벌 투자자금 대이동, 중국의 경기 둔화, 국제유가 하락 등 글로벌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만큼 악재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호생지덕 적선지가(好生之德, 積善之家)라는 말이 있다. ‘죽을 목숨을 살려주는 덕을 베풀면 선행이 쌓여 좋은 일이 생긴다’는 얘기다. 이는 국가와 사회에도 적용된다. 

     

    많은 법조인들과 의료인들이 CJ 재상고심에서 대법원이 보다 넓은 시야로 판결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뉴데일리경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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