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절감 위해 독성실험 생략…원료공급 SK케미칼은 수사 제외
  •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첫 구속영장을청구하는 등 수사가 진척되면서 제품 개발·제조 과정의 과실 등이 드러나고 있다.

     

    최대 가해업체이자 사태의 시발점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현 RB코리아)가 산업용 유해 화학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사용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도 확인됐다.

     

    11일 검찰에 따르면 옥시는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프리벤톨R80'이라는화학물질을 썼다. 옥시측은 이 물질의 흡입 독성실험을 거쳐 안전성을 확인한 뒤 제품 제조에 사용했다.

     

    하지만 가습기에 하얀 이물질이 생기는 데다 세척력이 썩 좋지 않다는 소비자들의 민원이 들어오자 2000년 제품 원료를 문제의 PHMG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옥시에 PHMG를 써보라고 처음 권한 곳은 원료도매업체 CDI였다. 이 업체는 SK케미칼로부터 PHMG를 사들여 옥시측 하청 제조사인 한빛화학에 공급한 곳이다.

     

    이때 옥시는 CDI에 PHMG의 흡입 독성실험 자료가 있는지 문의했다고 한다. PHMG를 가습기 살균제로 쓰려면 반드시 흡입 독성실험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옥시도 인지했던 셈이다.

     

    더구나 PHMG 원제조사인 유공(현 SK케미칼)은 1996년 12월 산업용 항균제 첨가물 용도로 PHMG 제조 신고를 한 상태였다. 피부에 닿아도 괜찮다는 사실은 입증됐지만 흡입 독성에 대해선 세계 어디에도 관련 정보가 없었다.

     

    하지만 옥시는 실험을 생략하고 2000년 10월 PHMG를 함유한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을 시장에 내놨다. 용기에는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광고문구까지 찍었다.

     

    일련의 과정 전반을 보고받고 지시한 장본인이 신현우(68) 당시 옥시 대표였던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흡입 독성실험을 생략한 배경으로는 원가 절감 압박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검찰은 본다. 10억∼20억원대에 불과한 가습기 살균제 시장 규모에 비춰 3억원 안팎인 흡입 독성실험 비용에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PHMG 공급자인 SK케미칼이 형사처벌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검찰은 전날 SK케미칼 관계자를 소환해 PHMG를 CDI에 공급할 때 흡입 독성을 얼마나 충실히 설명했는지 조사했으나 이렇다 할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 관계자도 현 상황을 기준으로 "SK케미칼측이 피의자로 입건될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SK케미칼은 원료 공급과 함께 화학물질의 안전한 사용·관리를 위해 주요 성분과 주의사항을 담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정상적으로 제공했다는 입장이다.


    당시 첨부된 MSDS에는 '흡입 독성 자료 없음'이라고 표기돼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흡입하는 제품에 사용하려면 흡입 독성실험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제품 안전성을 담보할 의무와 이를 지키지 않은 책임은 옥시측에 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