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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케미칼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던 미국 루이지애나 주(Louisiana state) 에탄베이스(ethane-base) 에틸렌(ethylene) 생산 기지 건설이 드디어 첫삽을 떴다.
2019년부터 미국의 저렴한 천연가스(셰일가스)를 활용, 에틸렌을 뽑아낼 이 생산시설은 롯데케미칼의 북미 진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미국 진출 초석이 될 이번 생산기지 기공식에 회사 대표인 허수영 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가 확대되면서 그룹 주요 임원들의 출국이 금지됐고 허 사장 역시 지난 13일 미국으로 출국하려던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현재 검찰은 롯데케미칼이 원료를 들여 오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나프타(naphtha) 등 석유화학 원료는 국제가격에 의해 투명하게 움직이는 만큼 쉽게 비자금 조성에 활용될 수 없다고 말한다.
원료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쉽게 조성할 수 있다면 롯데케미칼 외에도 모든 석유화학기업들이 검찰의 수사망에 올랐을 것이다.
허 사장의 출국 금지 외에도 이번 검찰 수사는 롯데케미칼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롯데케미칼은 유가의 하락에 따른 저성장 시기에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서려 했지만 검찰 수사 확대라는 걸림돌로 투자 타이밍을 놓쳤다.
롯데케미칼은 미국의 석유화학사인 엑시올(Axiall Corporation)을 인수하려다 이내 포기했다. 대외적으로는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서라고 설명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엑시올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롯데그룹의 캐시카우(cash cow) 역할을 해 온 롯데케미칼이 엑시올 인수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장기적으로 올 수도 있는 그룹 유동성 위기를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정부는 기업의 신용을 보증하고 은행은 정부의 신용보증을 기준으로 대출금과 이자를 정한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한 롯데 계열사에게 호의적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규모 투자를 위해서는 은행 대출이 필요하며 이 과정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경우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롯데케미칼이 엑시올 인수를 위해 쌓아 둔 현금을 아껴 둘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엑시올은 나프타 대비 값이 싼 가스를 이용해 생산한 에틸렌을 활용해 폴리염화비닐(PVC)을 생산하는 업체로 롯데케미칼과 이번 루이지애나 에틸렌 공장 건설에 공동으로 투자한 회사다.
공급과잉 상황인 PVC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 확보하려는 엑시올과 안정적 에틸렌 판매처 확보가 필요한 롯데케미칼에게 이번 M&A는 매우 중요했다.
롯데케미칼은 엑시올 자체를 인수해 미국의 천연가스로 에틸렌을 생산하고 이를 활용해 석유화학제품인 PVC까지 생산함으로써 일관 생산 체계를 갖추려 했던 큰 그림이 그룹 전체에 걸친 전방위 수사로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