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건 법안처리에서 빠져재계 읍소에도 … 민주당 '미적'노동계 "예외안돼" 강경 모드내년으로 미루거나 반쪽짜리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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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각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수적인 ‘반도체특별법’ 제정이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주 52시간 적용 제외와 같은 일부 조항을 두고 여야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업황 둔화 등 불확실한 경영환경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현실화될 전망이다.

    26일 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인공지능(AI) 기본법 등 민생·경제 법안 110여 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다만 지난 제21대 국회에서부터 계류됐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은 이번 본회의에서도 추진되지 않는다. 동일하게 지난 국회 때부터 강조돼 온 인공지능(AI) 기본법이 국회 문턱을 넘는 것과 대조적이다.

    반도체특별법은 여당인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발의한 것으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직접 보조금 지원’과 ‘주 52시간 적용 제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달 21일 첫 심사에 돌입했으나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여파로 한 달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여야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 등 재정 지원 근거를 담는 데에는 사실상 합의했지만 특별법의 또 다른 축인 주 52시간 적용 제외를 두고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특정 업종에만 예외 조항을 만드는 것은 안 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현행 유연근로제를 활용해 근무시간을 조절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신기술 연구개발 노동자는 지금도 재량근로제·선택근로제·특별연장근로제·탄력근로제를 이용해 주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있다.

    노동계 또한 법안 통과로 인해 산업계 전반으로 노동시간 유연화가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날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는 입장문을 내고 반도체특별법안의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과 관련해 “경쟁사를 구실 삼아 이윤을 최우선시하며 노동을 경시하는 발상일 뿐 아니라, 근로기준법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를 소수 인력으로 축소·정당화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경영계와 반도체 업계는 주 52시간 예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업종이나 직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주 52시간제가 오히려 반도체 연구개발(R&D) 속도를 더디게 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법이 허용하는 유연근로 방식은 실제 반도체 R&D 현장에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컨대 탄력근로제의 경우 3개월 초과 적용시 주별 근로시간을 근로자 대표와 합의해야 하는데 R&D 업무의 경우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지난 18일에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포함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 경제 4단체 회장들이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반도체특별법과 같은 무쟁점 법안을 연내 통과시켜줄 것을 호소했다. 최근엔 삼성전자 고위임원들까지 국회를 찾아가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예외조항을 포함해 줄 것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이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핵심인력이 근로시간 한도 탓에 출근을 하지 못해 최신반도체 제품 개발이 1년 6개월이나 늦어지기도 했다. 

    현재 국내 반도체 업계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을 등에 업은 미국 엔비디아와 대만 TSMC 등이 승승장구하며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범용 D램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중국 기업과 반도체 부활을 목표로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일본 기업도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은 확정됐지만 내년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지경학적 불확실성 증대가 예상되며, 업황 둔화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법안 통과가 내년으로 넘어가거나 핵심 사안이 빠진 ‘반쪽’ 법안이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적용제외가 아닌 특별연장근로 사용요건 완화 등의 방안이 점쳐진다.  

    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대만 TSMC는 노사가 합의하면 하루 근무시간을 12시간까지 늘릴 수 있어 핵심인재들이 근로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기술개발에 매달리고 있다”면서 “반도체는 개발기간이 상당히 중요해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상황에 따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