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해지 후 재가입' 약관 안 읽어 평생 쓴다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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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계정은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흔히 이메일 계정에 자신의 생일이나 전화번호 등 의미 있는 숫자를 넣는 이유다.
공직자 통합메일 시스템(@korea.kr)과 관련해 장난삼아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다가 난처해 하는 공무원들이 있다. 별 생각 없이 재미로 만들었다가 수정할 수 없다는 걸 나중에 안 경우다. 공직생활을 그만두지 않는 한 한 번 만든 이메일 계정은 계속 써야 한다며 울상을 짓는 공무원도 있다. 이메일 계정이 발음상 좋지 않거나 직급이 올랐을 때 품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korea.kr을 관리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 계정은 바꿀 수 있다며 약관을 꼼꼼히 읽지 않아 비롯된 오해라고 해명했다.
◇오타·부정적 감탄사에 짱(zzang)·얼짱(ulzzang)까지… 만화경 공직자 통합메일
보통은 이메일 계정을 만들 때 자신의 영문 이름이나 머리글자(이니셜)를 활용한다. 가령 1974년생 홍길동이면 'hgd74' 식이다. 이름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이름이 '안상태'라면 자신의 이니셜 대신 영어단어 컨디션(condition)을 사용하거나 성만 떼어내 'annn'이라고 강조하는 경우다.
공무원 전용 메일주소인 @korea.kr도 대동소이하다. 업무적 연관성을 강조하는 사례가 눈에 띈다. 국토교통부 항공분야에 근무한다면 'air'나 'sky', 해양수산부에서 일한다면 'bada'나 'sea' 등을 메일 주소에 넣는 경우다.
그러나 자신의 이메일 계정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공무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메일 계정을 읽었을 때 발음이 좋지 않은 경우를 들 수 있다. 해수부에서 일하는 A씨는 메일 계정에 'jodo'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전남 진도군 조도면 인근의 섬 조도(鳥島)를 의미하는 것으로 A씨의 고향이다. A씨와 주변에선 메일주소를 읽을 때 발음에 유의해야 한다고 농을 던졌다. 경상도 사람이 된소리로 읽으면 이상하게 들린다고 부연했다.
B씨는 메일 주소가 'era21***c'이다. '시대'를 뜻하는 영어단어와 새 천 년에 대한 희망을 담았다. 하지만 의미를 모른 채 단순히 붙여 읽으면 발음상으론 실망감을 나타내는 감탄사를 연상시킨다.
재미 삼아 계정을 만들었다가 뒤늦은 후회를 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요즘은 별칭으로 쓰여 긍정적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원래는 청소년 사이에서 싸움을 잘하는 동년배를 부정적으로 가리키는 말인 짱(zzang)이나 '연예인이 아닌 얼굴이 잘생긴 일반인'을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 얼짱(ulzzang)을 쓰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혐오감을 주거나 미풍양속을 해치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나이도 들고 직급도 오를 텐데 그때도 메일 계정에 짱이나 얼짱 같은 인터넷 신조어를 쓰기에는 부담스럽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더 단순하게는 영문 오타도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 근무하는 박모씨는 메일 주소가 'parv***'로 돼 있다. 이는 박씨의 성씨인 'park'의 오타다.
이들 공무원이 다소 불편하게 느끼거나 오타가 있는 메일 주소를 계속 쓰는 이유는 @korea.kr 계정은 한 번 만들면 공직생활을 접지 않는 한 계속 써야 한다고 알고 있어서다. 공무원 C씨는 "수습 공무원 기간에 @korea.kr 주소를 신청했는데 장난삼아 써냈다가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아는 경우가 많다"며 "신청할 때 추후 수정 불가 등의 내용을 알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체부 "공무원들 약관 안 읽어… 해지 후 재가입 가능"
@korea.kr을 관리하는 문체부는 공무원들의 오해일 뿐이라는 태도다. 수정은 안 되는 게 맞지만, 공직생활 내내 마음에 안 드는 메일 주소를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메일 주소로 바꾸면 된다는 설명이다.
문체부 설명대로면 @korea.kr 공직 메일은 약관이 정한 대로 아이디(ID)를 부여한다. ID는 영문 또는 영문·숫자 조합으로 신청할 수 있다. ID는 원칙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 부득이한 사유로 변경이 불가피하다면 기존 ID를 해지하고 재가입해야 한다. 재가입할 때 해지된 기존 ID는 다시 쓸 수 없다.
문체부 관계자는 "민간 메일 서비스도 한 번 만든 계정을 수정할 순 없다"며 "약관이나 가입절차 등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지만, (공무원들이) 꼼꼼히 읽지 않다 보니 오해가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korea.kr 공직 메일 가입은 의무 강제사항이 아니라 선택사항"이라며 "가령 파출소에서 외근을 주로 하는 경찰공무원은 굳이 @korea.kr 계정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korea.kr 메일 계정은 70만개가 등록돼 있다. 이는 총가입자 수로, 정지 또는 6개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휴면계정을 포함한 숫자다.
@korea.kr은 2006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발급하는 GPKI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로그인할 수 있는 공직자 전용 통합메일 시스템이다.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무원 전용 메일 시스템을 만들어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당시 국정홍보처 주관으로 시스템을 구축했고 나중에 홍보처가 문체부와 합쳐지면서 지금은 문체부 정책포털과에서 관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