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 질환으로, 1882년 독일의 세균학자 로버트 코흐(Robert Koch)가 결핵의 병원체인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발견하여 같은 해 학회에 발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전염성을 갖고 있는 결핵환자가 대화를 하거나 기침, 재채기를 할 때 결핵균이 섞인 타액이 공기 중으로 배출되어 돌아다니다가 주변 사람들이 호흡할 때 공기에 실려 폐 안으로 들어가면서 옮기게 된다.
이러한 막강한 전파력을 배경으로 과거 수없이 많은 유명인들, 즉 데카르트, 볼테르, 루소, 키츠, 칸트, 포우, 쇼팽, 파가니니, 우리나라의 시인 이상선생 등의 목숨을 앗아 갔다.
‘후진국 병’으로 알려져 있는 결핵은 최근 우리나라의 20~30대의 젊은 연령층 환자 및 집단 감염 형태로 발생되면서 국민보건을 위협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결핵 발생률은 10만명당 86명으로 OECD 회원국 1위이다.
2014년 기준 국내 총 결핵환자 중 81%가 과거 결핵 치료를 받은 적이 없는 새로운 환자(신환자)였고, 같은 해 결핵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천 명이 넘어, 작년에 국가적 재앙을 초래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비교해 볼 때 훨씬 심각하고 치명적인 현재진행형인 질병이다.
최근 3년 동안 결핵이 이렇게 급증한 것은 1989년 건강보험 실시로, 보건소 위주로 이뤄지던 관리가 민간 병·의원으로 넘어가면서 보건소처럼 철저하게 결핵환자를 추적, 관리하지 못했던 것도 원인으로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 결핵 관리의 최대 관건은 증상 없는 ‘잠복 결핵 감염자’로 전 국민의 3분의 1이 이러한 잠재적 결핵환자라는 우려가 있다.
결핵은 결핵균 감염자 중에서 10%만 발병해 결핵환자가 되는데, 그중 절반은 감염 후 2년 이내에 발병하고 나머지 절반은 평생 잠복상태로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발병한다.
최근 우리나라 결핵환자의 30% 정도가 20~30대임이 밝혀지고 청소년층 중에서는 고등학교 2·3학년 환자가 많다고 보고되면서,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 운동부족으로 인한 체력저하, 불규칙한 식사 등으로 면역력이 저하된 청소년들이 집단 밀집생활 등 열악한 생활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주요 대학병원과 어린이집 등 집단 시설에서 결핵환자가 잇따라 나오면서 결핵에 대한 관심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남을 의식하지 않은 채 마구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는 등 잘못된 공중위생 습관도 개선이 필요하다.
환자들이 발병 사실을 떳떳이 드러내놓고 치료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은 탓이 크다.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은 결핵이 고도성장이라는 외피 속에 숨겨진 병든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진단하며 지나친 경쟁 속에서 피곤에 찌든 일상과 스트레스, 콩나물시루 같은 빽빽한 교실에서의 집단생활, 빨리빨리·대충대충 문화 속에서 느슨해진 안전의식, 철저하지 못한 환자 관리 등 한국적 특수성이 발병과 전염을 가속시킨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핵은 증상이 기침 가래 미열 피로감 등으로 감기와 비슷하다. 이에 따라 환자들은 대부분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자각하지 못하거나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므로 부지부식 간에 병을 옮기기 쉽다.
결핵 치료의 골든 타임은 ‘초기 2주’다. 가래에 결핵균이 나오는 환자라도 2주 정도 결핵 약을 복용하면 전염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자신 뿐 아니라 남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결핵의 완치를 위해서는 6개월간 규칙적으로 약을 먹어야 한다. 약 복용 후 2주가 지나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약 복용을 중단하거나 불규칙적으로 먹을 경우 일반 결핵약이 듣지 않는 다제내성 결핵으로 재발할 수 있고 이럴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
국민보건을 위한 결핵 관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전 예방이 최선이다. 기침이나 재채기 등 호흡기 질환 증상이 있을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이러한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될 경우 적극적으로 결핵검사를 받아야 한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는 휴지를 이용하여 입과 코를 가리고 하며, 손을 철저히 씻는 등 개인 위생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결핵 예방의 지름길이다.
/적십자병원 병리과장 (MD, P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