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기획평가원 "규모 줄이고 보급선 역할 해라" '멘붕' 해수부 "차라리 예타 다시 진행하자"
  • ▲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연합뉴스
    ▲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연합뉴스

    해양수산부가 제2의 아라온호를 모토로 야심 차게 추진했던 제2 쇄빙연구선 건조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단계에서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예타를 통과해 추진된다 하더라도 사업규모는 반 토막 날 것으로 보인다.

    북극 연구와 탐사 활동에 필요한 투자라는 의견과 아직 대형선박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상충하면서 예타만 1년여를 끌고 있는 상황이다.

    ◇1만2천톤급 제2의 아라온호 건조

    2일 기획재정부와 해수부에 따르면 제2 쇄빙선 건조사업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기관인 극지연구소 주관으로 추진되고 있다.

    2009년 띄운 국내 첫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전체 연구 수요의 60% 정도만을 소화하면서 늘어나는 북극 연구와 탐사 활동을 위해 제2 쇄빙선 건조의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해수부는 제2 쇄빙연구선을 건조해 북극 연구수요를 맡기고 기존의 아라온호는 남극 연구를 전담하도록 한다는 구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총사업비 2856억원이 투입되는 제2 쇄빙선은 총 톤수 1만2000톤, 승선 인원 120명(승무원 30명·연구원 90명) 규모의 중대형선이다. 7487톤, 승선 인원 85명으로 중형선에 해당하는 아라온호보다 1.6배쯤 크다. 쇄빙능력도 2배 강화했다. 아라온호는 두께 1m의 평평한 얼음 덩어리를 3노트 속도로 연속해서 깨부수며 나아갈 수 있다(Polar 10). 제2 쇄빙선은 두께 2m 평탄빙을 3노트 속도로 쇄빙하는 능력(Polar 20)을 장착할 예정이다.

    시추기능 강화를 위해 선체 중앙부에 문풀(Moon Pool·원통형 공동 설비)과 최첨단 지구물리 탐사장비도 장착한다.

    해수부는 오는 2022년께 제2 쇄빙선을 띄우면 북극 연구 항해 일수가 기존 27일에서 140여일로 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제2 쇄빙선 사업 반 토막 우려

    제2 쇄빙선 건조사업은 지난해 하반기 기재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사업으로 선정됐다. 기재부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기평)에 연구·개발(R&D) 예산 예타를 맡겼다. 과기평은 올해 1월25일부터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문제는 애초 6개월쯤 예상했던 예타가 지연되면서 사업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한다는 점이다. 해수부와 극지연구소는 예타가 늦어도 11월까지는 통과할 것으로 보고 내년 예산에 설계비 45억원을 반영할 생각이었다. 현재 이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예타를 통과하지 못하면 국비를 지원받을 수 없어 사업추진 자체가 어렵다.

    과기평은 제2 쇄빙선 규모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태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알려진 내용을 종합하면 과기평은 제2 쇄빙선을 애초 1만2000톤급에서 5000톤급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견해다. 용도도 연구전용선보다는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 물자 등을 보급할 수 있는 다목적 쇄빙선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다.

    5000톤급이면 현재 아라온호보다도 작은 준중형급이다. 배 크기가 작아지면 탑재할 수 있는 연구장비도 줄일 수밖에 없어 사업규모가 거의 반 토막 수준으로 축소되는 셈이다.

    해수부는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2만톤급의 대형 쇄빙선은 아니어도 1만톤급 이상 중대형선 건조가 세계적인 추세인데 아라온호보다도 작은 규모로는 활용도가 떨어진다"며 "건조하면 20~30년은 써야 하므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기평이 사업 축소 견해를 고수하면서 해수부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해수부는 최악에는 차기 정부에서 예타를 다시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유력한 안은 9000톤급으로 사업규모를 축소하는 것이다. 이 경우 사업비는 2800억원대에서 1900억원대로 줄어든다. 과기평이 요구하는 대로 제2 쇄빙선의 용도를 연구전용에서 다목적 선박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협의가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해진 바로는 과기평은 기존 아라온호와 동급인 7000톤급 선에서 최종 절충안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과기평 관계자는 "최근 해수부에서 추가 자료를 보내와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언제까지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결론을 빨리 내려고 하며 오래 걸릴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7000톤급 다목적 쇄빙선으로 잠정 결론을 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해수부 "선제적 투자" vs 과기평 "과잉사양, 축소해야"

    해수부는 과기평의 접근법에 불만을 토로한다. 자원개발과 북극항로 선점을 위해 세계 각국의 북극 진출 경쟁이 심화하는 '콜드 러쉬' 상황에서 선제적 투자를 근시안적 견해로 부정적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해수부 한 관계자는 "과기평은 가까운 일본과 중국의 사례를 들어 제2 쇄빙선 투자에 부정적"이라며 "콜드 러쉬에 선도적으로 대비해야 하는데 다른 나라 사정이나 살피다 보면 늦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은 남극용 쇄빙선 1척과 북극용 내빙선(얼음에 부딪혀도 견딜 수 있는 배) 1척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과기평은 경제 대국인 일본도 쇄빙선을 1척만 보유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북극 연구전용 쇄빙선을 갖출 필요가 있느냐는 견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수부 관계자는 "일본 쇄빙선이 1척인 건 맞지만, 일본은 쇄빙연구선 대신 위성으로 북극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직접적인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중국 사례도 비슷한 맥락이다. 과기평은 중국이 현재 건조 중인 배까지 포함하면 총 2척의 쇄빙연구선을 보유하게 되지만, 기존 배는 쇄빙화물선을 전환한 것이므로 엄밀히 말해 쇄빙연구선은 이제 처음으로 건조하는 단계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중국이 연구선으로 전환한 화물선은 1만5000톤급으로 규모부터가 아라온호와는 비교가 안 된다"며 "새로 건조하는 쇄빙연구선도 규모가 1만2000톤급으로 사실상 2척의 중대형 쇄빙연구선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수부 일각에서는 제2 쇄빙연구선은 지난 2013년 정부 차원에서 7개 부처·청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공동 참여해 마련한 '북극정책 기본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미래 비전 사업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2013년 북극분야에 대한 정책 기조를 담은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기본계획에는 해수부와 미래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참여했다. 이 계획에는 11개의 과학조사·연구분야 과제가 담겼고 그중 하나가 제2 쇄빙연구선 건조였다.

    당시 정부는 아라온호에 대한 수요가 이미 공급을 초과한 상태라며 중국과 독일의 제2 쇄빙연구선 건조를 예로 들어 북극권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지구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 항로가 생겨나고 남·북극 해저자원 개발 등으로 극 지역의 경제·지정학적 가치가 급등하면서 각종 차세대 쇄빙선 건조 경쟁이 불붙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