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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로 인해 서민들이 싼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사실 혜택을 보는 이는 극소수일 뿐이다.
여전히 신용이 낮은 8등급 이하 저신용자들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중금리를 통해 제도권 금융에서 수용하길 원했던 저축은행, 인터넷전문은행도 이들을 외면하긴 마찬가지다.
새정부 역시 공약으로 서민금융 활성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지나도 콘트롤타워 역할을 책임질 서민금융진흥원의 역할조차 재정비하지 못하고 있다.
◆신용 되찾아도 또다시 빚쟁이 신세 -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 상황’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채무불이행자 수는 104만1000명에 달한다.
이는 전체 가계차주의 5.6%에 해당하는 것으로 90일 이상 장기연체 중인 차주는 70만1000명, 채무구제진행 중인 차주는 34만명이다.
한국은행 측은 채무불이행자 수와 관련해 2013년 국민행복기금 출범 등 정부의 적극적인 구제 노력 등으로 105만명 내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2014년 신규 채무불이행자 중 현재 신용을 회복한 차주는 전체의 48.7%로 집계됐다. 이중 68.4%는 채무변제, 20.1%는 채무조정제도에 의해 신용을 회복했다.
그러나 이렇게 신용 회복을 기회를 갖고도 다시 채무불이행자가 되는 경우도 3.6%로 집계됐다.
결국 쳇바퀴 돌리듯 빚 구렁텅이에서 못 빠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원인은 신용이 낮은 이들이 기댈 수 있는 금융기관이 제2금융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채무불이행자 중 저축은행, 신용카드, 대부업, 할부‧리스 등의 대출을 보유하고 있는 차주의 신용회복률은 41.9%에 불과하다.
이외 금융기관의 신용회복률이 71.4%에 달하는 것은 감안하면 채무불이행자가 신용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적은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역시 금리 때문이다.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은행의 경우 3.2%, 상호금융 3.9%로 낮은 수준이지만 저축은행은 14.%, 대부업은 23.5%에 달한다.
이는 평균금리일 뿐 실질적으로 저신용자들은 금리 20% 이상 구간에 61.8%가 분포돼 있다.
여전히 은행 문턱은 높고,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은 돈을 쉽게 빌릴 수 있지만 이자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고립 된 중신용자…은행에선 NO
신용 4~6등급에 분포된 중신용자들도 요새 갈 곳이 없다.
금융당국에서 금리단층을 해소한다며 중금리 대출상품을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은행에선 받기 껄끄러운 손님이 돼 버렸다.
은행권의 중신용자 신용대출 규모는 약 20조5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시중은행들은 리스크관리 강화, 주택담보대출 수요 확대 등으로 중신용자 신용대출 규모가 11조7000억원 감소했다.
실제 2분기 기준 은행권의 고신용자 비중은 47.9%로 5년 전과 비교해 약 16%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신용자 비중은 43.5%에서 35.3%, 저신용자 비중은 24.6%에서 16.8% 줄었다.
은행에서 거부당한 중신용자들은 결국 저축은행과 신용카드를 찾았다.
은행으로부터 대출수요 이동 등에 따라 신용카드사 및 저축은행 중심으로 비은행금융기관의 중신용자 신용대출은 17조6000억원 증가한 것이다. -
중신용자들이 2금융권에서 돈을 빌린다고 해도 금리가 싼 것도 아니다.
중신용자 신용대출의 74.2%가 금리 5~20% 구간에 분포돼 있다. 20%를 상회하는 금리구간에 해당하는 대출도 13.5%에 달한다.
이는 은행 및 상호금융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고 소득 증빙이 구비된 중신용 차주를 대상으로 낮은 금리의 대출을 공급하는 반면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의 경우에는 신용도가 낮은 중신용 차주를 대상으로 높은 금리의 대출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최근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도 저신용자를 외면하긴 마찬가지다.
출범 전 인터넷전문은행은 중신용자, 중금리 대출시장을 수용하며 서민금융의 안전판 역할을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출고객 중 고신용자 중심으로 영업이 이뤄지고 있어 사실상 일반 시중은행과 차별화된 대출행태를 보이고 있지 않다.
오히려 8월말 기준 인터넷전문은행의 중신용자 대출 비중은 11.9%로 국내은행(17.5%)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
반면 고신용자 비중은 인터넷전문은행이 87.5%로 국내은행(78.2%)보다 더 높다.
◆서민금융진흥원 출범 1년, 여전히 역할 ‘애매모호’
서민들의 대출길이 좁아졌지만 이들을 위해 땀을 흘려야 할 서민금융진흥원은 여전히 무색무취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은 4대 서민 정책금융상품인 미소금융, 햇살론, 국민행복기금, 바꿔드림론 등을 하나로 통합해 서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러나 상품만 관리할 뿐 주요 업무까지 통합하지 못하고 각자가 따로 노는 형국이다.
실제 김윤영 신용회복위원장이 서민금융진흥원장을 겸직하고 있음에도 두 기관이 지원하는 사업이나 상품의 총괄·실행이 기관 구분 없이 중복되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이 자활·재기지원의 일환으로 실행하고 있는 ‘자영업자 컨설팅 서비스’만 봐도 신용회복위원회의 ‘중소기업인 재창업지원’ 사업과 성격이 비슷하지만 고객 상담부터 분리돼 있어 종합적인 상담이 힘들다.
자영업자 컨설팅 서비스는 대출 연체 징후 등이 있는 대출 신청자들이 전문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매출을 올리도록 돕는 상담을 받는 서비스다.
반면 중소기업인 재창업지원은 연체가 한 달 이상이거나 다중채무자인 개인사업자 등이 채무감면이나 유예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예로 식당을 운영 중인 사업주가 대출 감면과 사업 재기를 위해 금융서비스를 받고 싶지만 원스톱으로 지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서민금융진흥원 상담센터 관계자는 “신용회복위원회는 엄연히 다른 기관이기 때문에 중소기업 재창업지원에 대해서는 해당 기관에 물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서민금융진흥원이 중심을 잡아야 향후 서민들의 금융 사각지대가 커질 때를 대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서민금융진흥원은 채무조정이나 일자리 지원을 비롯해 일부 사업이 신용회복위원회와 겹치거나 소멸시효완성채권 매입 등과 같이 아직도 타 기관이 나눠서 추진하는 사업들이 꽤 있다”며 “진흥원이 스스로의 역할을 총괄 컨트롤타워로 할 것인지 실행까지 아우를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