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구간 지하화로 보상비 3천억 절감… 전라지역 등 노선 다변화로 수요 늘리기김현미 장관 "도로·철도 건설 재정사업 우선해 시행"… SOC 축소로 민자 딜레마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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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TX 산천.ⓒ연합뉴스

    정부의 공공성 강화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축소 기조에 국토교통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머리와 몸통이 따로 노는 모습도 연출된다. 여당의 도로·철도 공공성 강화 요구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호응했지만, 실무 부서에선 확대해석을 경계하며 민자사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실정이다.

    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열린 국토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김 장관은 민자도로·철도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질문에 "교통 인프라의 공공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화답했다.

    이날 최 의원은 "국민에게 과도한 이용료를 부담케 하는 민자도로, 민자철도 사업을 중단하고 앞으로는 필요한 교통만을 재정으로 건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이에 "철도·도로 사업은 저희가 지금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국도로)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추진하는 방안을 우선하여 검토해 시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최 의원이 "재정 건설을 원칙으로 한다는 거냐"고 확인하자, 김 장관은 "재정 부담은 민자나 공단이 했을 때 차이가 없다"면서 "(사업)주체를 민자가 아닌 공사·공단이 한다"고 답했다.

    최 의원은 "민자사업으로 국가가 당장 건설비를 절감하는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운영·유지에 재정을 부담하고, 국민도 과도한 이용료를 문다"며 "재정으로 건설해 싼 요금 등 교통 공공성을 확보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토부 내부에선 민자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선로 용량이 포화상태인 평택~오송 고속철도 복복선화 사업을 예로 들 수 있다.

    국토부는 지난해 현대산업개발이 제안한 '평택~오송 고속철도 민간투자사업'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성이 낮다고 결론 내렸음에도 사업설계를 변경해 올 6월 기획재정부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했다.

    KDI는 민자적격성조사에서 비용편익분석(B/C)이 0.30에 그쳐 사업성이 없다고 봤다. B/C는 1.0보다 커야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국토부는 사업제안을 물리는 대신 애초 제안과 달리 46.3㎞ 전 구간을 지하화하는 방식으로 사업계획을 새로 짰다.

    우리나라가 산이 많아 터널과 교량 연결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아예 지하화로 방향을 틀었다. 국토부는 이를 통해 사업비를 낮춰 B/C를 높인다는 복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토지보상 규정에는 지하 40m까지 내려가면 보상비 지급 비율이 기준가격의 영 점(0.) 몇 %에 불과해 보상비 3000억원쯤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성을 높이기 위한 국토부의 노림수는 또 있다. 애초 민자제안이 소위 황금노선인 서울(수서)~부산·목포에 한정됐던 것을 여수·전주 등으로 다변화해 수요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선로 용량에 맞춰 운행노선을 다변화하면 KTX 전라선 확대나 수서발 고속철(SRT) 공급을 주장하는 전라 지역 요구에도 부응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 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업 설계 변경 등으로 B/C 1.0을 넘길 것으로 기대하나 예타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워 두고 봐야 한다"면서 "시급한 철도건설 사업의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아 사업 타당성을 미리 확인하는 단계이므로 지금 민자사업이다 재정사업이다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김 장관의 국감 발언은) 공공성을 초점을 맞춰 되도록 재정사업을 우선 검토한다는 뜻으로, 앞으로 민자사업을 전혀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재원에 한계가 있으므로 (민자사업은) 고려사항이다"고 덧붙였다.

    평택~오송 고속철 복복선 건설은 4조원을 투입해 선로용량이 포화상태나 다름없는 평택~오송 구간에 고속철도를 신설하는 사업이다.

    국토부로선 적잖은 사업비를 투입해야 하는 만큼 민자사업 카드를 버리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재정 당국이 SOC 예산을 감액하는 추세인 것도 민자 제안사업에 미련이 남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중 SOC 관련 예산은 17조7000억원이다. 올해보다 20%(4조4000억원)나 줄었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철도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국토부로선) 철도 이용객에 대한 적기 편의 제공이라는 공공성과 이용료 부담 경감이라는 공공성의 가치가 상충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며 "SOC 투자 감소와 맞물려 딜레마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한편 국토부가 신청한 예타 결과는 내년 3월께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이 확보되면 정부 고시 민자사업 추진 여부도 이때쯤 윤곽이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