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 전 관장 부진, 서현 두 딸과 가장 먼서 추도식 참석
  • ▲ 홍라희 전 리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은 가장 먼서 이병철 회장 추도식에 참석, 20여부을 머문 후 자리를 떠났다.ⓒ뉴데일리경제
    ▲ 홍라희 전 리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은 가장 먼서 이병철 회장 추도식에 참석, 20여부을 머문 후 자리를 떠났다.ⓒ뉴데일리경제


17일 오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30주기 추도식이 열리는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 전국 대부분이 영하권으로 떨어져 쌀쌀한 날씨에도 추도식이 열리는 호암미술관 입구에는 삼성 임직원들과 취재를 위해 모인 취재진들이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지난 1987년 11월 19일 타계했지만 19일이 일요일인 만큼 17일로 앞당겨 졌다. 추도식은 삼성가 가족과 일부 임직원들만 입장이 가능해 보안 요원들에 의해 입구부터 철저히 통제가 이뤄졌다.

이미 2~3시간 일찍 도착한 임직원들은 입구 한쪽에 마련된 천막에서 모여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와병 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수감된 만큼 추도식 규모나 분위기도 예년에 비해 사뭇 다른 분위기었다. 이에 이번 추도식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촐하게 진행하게 됐다는 게 삼성측 설명이다.

이날 가장 먼저 추도식에 참석한 인사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 직계가족들이다.

홍 전 관장은 두 딸과 함께 오전 8시 50분경 입구에 들어섰으며 20여분 가량 머문 뒤 9시 14분 자리를 떠났다.

  • ▲ 10시 15분을 기점으로 30분에 걸쳐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속속 선영을 찾았다.ⓒ뉴데일리경제
    ▲ 10시 15분을 기점으로 30분에 걸쳐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속속 선영을 찾았다.ⓒ뉴데일리경제


  • 이후 10시 15분을 기점으로 30분에 걸쳐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속속 호암미술관 입구로 들어섰다. 통상 50여 명의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추도식을 찾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신임 사장단의 경우 삼성그룹의 맏형 격인 삼성전자 인사 이후 치러진 첫 공식행사인 만큼 의미도 남다르다.

    앞서 지난 16일 삼성전자는 역대 최대 규모의 2018년 정기 임원인사를 마무리했다. 지난 5월 96명을 포함할 경우 올 한해만 317명이 승진됐다.
     
    삼성 사장단은 약 1시간 가량에 걸쳐 참배 및 함께 식사를 한 후 일정에 따라 움직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오후에는 CJ·신세계·한솔 등 범 상성가가 각각 정해진 시간에 맞춰 선영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 ▲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
    ▲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


  •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은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설립한 뒤 사업영역을 넓히며 1969년 삼성전자를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선도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910년 2월 12일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호암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초석을 마련했다. 

    호암은 1930년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귀국 후 일제 강점기 시대에 민족경제 육성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무역업을 통한 사업보국의 뜻을 펼치기 위해 1938년 3월 대구에서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삼성상회의 성공에 힘입어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세워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했다. 1960년대에는 비료, 전자, 유통, 의료, 섬유, 국토개발산업에 뛰어들고 1970년대에는 수출증대와 함께 중화학 공업과 방위산업을 진행했다. 

    1980년대에는 전자, 항공, 정밀, 화학 등 기술산업을 육성해 대한민국 경제 근대화를 주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업적을 기려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기도 했다. 

    특히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삼성그룹 특유의 '신상필벌' 원칙도 호암에서부터 비롯됐다. 호암은 작은 공도 상 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대신 작은 잘못에 대해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