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 양 기관·단체 리더 물갈이 예정
  • ▲ ⓒ한국감정원
    ▲ ⓒ한국감정원


    감정평가업계 가족인 한국감정원과 한국감정평가사협회(감평협)가 나란히 수장 선출 문제를 놓고 시끄럽다.

    감정평가사 출신의 지역 정치인 내정설이 돌았던 감정원은 최근 감정원 출신 지원자가 다크호스로 거론되는 가운데 과거 법인카드 유용과 욕설 시비로 보이콧 움직임마저 보인다.

    감정원에선 내부 출신 인사가 원장으로 낙점되길 바라는 분위기가 많다. 하지만 감정원 변혁을 위해선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사 수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평협은 이달 차기 회장을 뽑는 선거가 예정돼 있다. 역대 선거가 네거티브하게 치러져 왔고 올해는 이렇다 할 이슈도 없는 상황이어서 후보자 간 물고 물리는 흑색선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압축 후보 중량감 떨어져… "외부 전문가 영입해야" 지적도

    1년 가까이 수장이 공석인 감정원은 공모 지원자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지적과 노조의 내부 출신 부적격자 반대 움직임 속에 전문성을 지닌 외부 인사를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등 어수선하다.

    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에서 한국철도공사와 함께 감정원의 기관장 인선 안건이 상정, 처리됐다.

    감정원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는 지난해 2월 공모를 통해 퇴직한 국토교통부 A실장을 비롯해 5명을 추천했다. 감정원장은 옛 건설교통부 주택도시국장을 지낸 장동규 원장을 비롯해 내리 4명이 전 국토부 관료 출신이어서 A실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됐었다.

    하지만 정권 교체와 맞물려 공운위 심사가 보류됐고 재공모가 이뤄졌다. 지난해 11월6일까지 진행한 재공모에는 총 10명이 지원했다.

    임추위는 서류·면접심사를 거쳐 추린 5명을 공운위에 넘겼다. 압축한 후보 명단에는 정기철 민주당 대구시당 노동위원장, 변성렬 원장 직무대행, 황종철 한국토지주택공사 전 부사장과 감정원 상무이사를 지낸 김남중, 김학규씨가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초반 세평은 정 위원장 내정설이 돌았다. 하지만 노조 등에서 정치인 낙하산이라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는 김남중 전 상무가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다는 설이 돈다. 노조는 김남중 전 상무가 과거 재직 당시 집 근처 주점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해 2000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질타를 받았다며 부적격 인사라는 평가다.

    노조 관계자는 "과거 김남중 전 상무는 평소에도 욕설 등으로 직원들에게 상처를 줬던 인물로 알려졌다"며 "부적격 후보의 임명 강행은 결사반대다"고 강조했다.

    감정원 내부 분위기는 내부 승진 인사가 신임 원장이 되길 바라는 눈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감정원 관계자는 "외부 낙하산보다 덕망 있는 사람 중에 내부 승진으로 원장이 오길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현재 압축 후보 중에선 김학규 전 상무가 내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귀띔이다. 다만 김학규 전 상무의 업무추진력은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감정원 내부 바람이 내부 승진을 원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그동안 감정원장 자리가 국토부 퇴직 관료의 전유물로 전락한 가운데 서 전 원장의 불명예 해임으로 이미지가 실추된 데 따른 반발이 꼽힌다.

    또한 수장이 거의 1년이나 공백이었던 데 비해 재공모로 압축된 후보군의 중량감이 떨어져 감정원 홀대론이 팽배한 실정이다.

    감정원 한 관계자는 "내정설이 돌았던 정 위원장도 지역 정치인으로 국회의원 출신이 아니어서 대외교섭력이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견해가 많다"며 "일부에선 감정원의 지위가 떨어져 자존심이 상하고 자괴감이 든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감정원이 타성에 젖어 변화를 거부한다며 조직혁신을 위해 외부 낙하산 수혈이 필요하다는 쓴소리도 제기된다.

    업계 한 소식통은 "감정원 노조가 정 위원장을 정치인 낙하산으로 규정해 반대하지만, 정 위원장은 정치인 이전에 감정평가사로서 20년 이상 업무를 봐온 전문가"라며 "노조는 정 위원장이 국회의원 출신이 아닌 것도 탐탁지 않겠지만, 그를 배척하는 근본적인 배경은 감정원 출신이 아닌 감정평가사협회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감정원은 환골탈태 의지 없이 고액 연봉을 받는 공공기관 노동자로 안주하고 싶은 것"이라며 "외부 감정평가사 출신인 정 위원장이 감정원장으로 오면 조직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정 위원장의 전문성은 가리고 정치인 낙하산으로만 몰아가는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 ▲ 감정원법 관련 집회 삭발식 모습.ⓒ감정평가사협회
    ▲ 감정원법 관련 집회 삭발식 모습.ⓒ감정평가사협회


    ◇딱히 이슈 없는 선거… 흑색선전으로 번질 우려

    감평협은 현 국기호 회장의 2년 임기가 이달 말 끝난다.

    현재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합동연설회 등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선거는 오는 22일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입후보자는 김유동(대화감정평가법인 북부지사), 양기철(하나법인 본사), 김순구(대화법인 본사) 등 3명이다. 국 회장은 출마하지 않았다. 회장은 1회에 한해 중임할 수 있지만, 연임 가능 조건의 해석이 모호한 점도 불출마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선출되는 회장부터 임기가 현재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다.

    역대 회장을 보면 정일법인(3대 서부지사·4대 본사), 경일법인(10대·14대 본사)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형 감정평가법인이 돌아가며 회장을 맡는 분위기다.

    하나법인은 김태환 회장이 13대 회장을 지낸 바 있다. 대화법인은 아직 회장을 배출한 적 없다.

    대형법인 차례상으로는 대화법인에서 차기 회장을 배출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대화법인 소속으로 2명의 후보가 나와 경합을 벌이는 모양새여서 감정평가사들의 표심 향방이 어찌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나법인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 선거에선 감정평가 수수료 자율화 저지가 세 후보의 공통된 공약이다. 수도권에 전체 감정평가사의 70%가 모여 수입의 80%를 담보평가에 의지하는 상황에서 국토교통부가 수수료 하한을 없애 자율화하면 수입기반이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견해다.

    한 감정평가사는 "수수료를 자율화하면 지방에 있는 감정평가사는 좋을 수도 있지만, 수도권은 매출이 반 토막 날 수 있다"며 "수수료 자율화는 은행의 최저가 입찰로 이어질 수 있어 감정평가사 생계 기반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토부는 규제 개혁 차원에서 관련 기획단(TF)을 꾸려 수수료 하한선 폐지에 관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수수료 자율화 저지 외에는 이렇다 할 쟁점 사안이나 각 후보가 선점한 차별화 공약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감정평가사는 "이번 선거 공약은 대동소이하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도 "(선거 공약 등을 봐도) 이번 선거에서는 특별한 이슈가 없는 듯하다"고 부연했다.

    한 달 가까이 진행되는 선거 기간에 선거 양상이 대형 법인 간 대리전 양상을 띠면서 후보자 간 헐뜯는 흑색선전으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실제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선거가 네거티브하게 흘러간다"고 전했다.

    다른 감정평가사는 "지금껏 한 번도 네거티브 선거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면서 "올해 선거만 유독 그런 것은 아니다. 일각에선 오히려 올해 흑색선전이 덜한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감평협 내부에선 선거 관련 함구령이 내려졌다. 선거가 흑색선전으로 흐를 경우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할 협회가 구설에 오를 수 있어서다.

    협회 관계자는 "협회 임직원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발언이 외부에 왜곡돼 전달될 수 있어 선거와 관련해선 일절 함구령이 내려진 상태"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