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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나 일본에서 우리나라 조선·해운 지원 정책을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고 있다. 항상 우리만 타깃이 되는데, 아직도 심각성을 모른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 기자에게 우리나라 조선·해운업 현실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최근 한국 정부의 조선·해운업 지원 정책을 두고 일본과 EU(유럽연합)가 강하게 불만을 나타내는데도 관련 부서가 쉬쉬하자 답답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추진한 데 이어 EU 집행위원회도 한국과 EU의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막대한 국고 보조금 프로그램으로 공정 경쟁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논리다.
일본과 EU 회원국들은 약 2년 전 한진이 붕괴된 이후 한국 정부가 조선소에 자본을 투입했고, 최근 들어 보조금이 인상됐다고 주장한다. 세계 1위 해운사인 머스크라인 회장 소렌 스코우도 "컨테이너 시장에서 정부의 존재는 불필요하다"며 한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비판하고 있다.
덴마크의 해운전문지에 지난달 실린 기사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현재 덴마크를 포함한 여러 기관들의 요청에 따라 조선소에 대한 한국 정부의 보조금을 조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의 보조금에 대한 내용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국제적인 항의가 거세지고 있지만 산자부는 여유로운 모습이다.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이 조선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항상 이런 이슈들이 있어왔고, 이번 일도 큰 건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로 조선·해운업계에서 일하는 관계자가 보는 시각은 다르다. 왜 우리나라만 항상 타깃이 되는지 우려감을 나타낸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런 문제에 계속 걸리다 보면 정부 지원도 위축될 수 밖에 없고, 당사자인 조선사들도 조심스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나라가 정부의 조선·해운업 지원으로 반발을 산 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9년 EU가 한국이 국내 조선업계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고, 그로부터 5년 뒤인 2003년 우리 측 승리로 끝이 난 적이 있다. WTO는 한국 정부가 개입한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정부의 보조금 지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번에도 승리할 수 있을까. 업계 관계자들은 "그들이 어떻게 나올 지 결과는 아무도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정부의 조선업 지원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문성과 조심성이 부족할 경우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정부는 지난달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현대상선을 비롯한 중소형 선사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조만간 정부 지원 방침이 정해지고 지원이 본격화되는 만큼 일본과 EU의 공세도 더 거세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의 추측이다.
산자부 관계자와 얼마 전 만났다는 한 해운업 종사자는 우리나라의 보조금 지원 문제를 묻자 "그게 문제면 벌써 문제가 됐겠죠. 지금은 그게 이슈가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이 말이 사실이기를, 우리 조선·해운업이 더이상 국제적인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