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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지역에서의 수주 위축과 플랜트 부문 발주 감소 등으로 올해 해외수주액이 300억달러에 못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건설기업들에게는 사업기획‧설계‧시공기술‧프로젝트 관리 등 기업 역량 제고를 위한 투자가, 정부에는 외교‧금융 등 국가결집을 통해 해외수주 전략의 근간을 구축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5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설기업들의 신규 해외수주액은 225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22억달러에 비해 1.48% 늘어나는데 그쳤다.
상반기(175억달러)까지만 하더라도 지난해보다 7.44% 증가하면서 연간 실적이 지난해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으나, 발주물량 감소 등으로 증가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 해외건설 수주는 2010년 716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2015년 461억달러로 급격히 줄어든 이후 2016년(282억달러)부터는 300억달러에도 못 미쳤다. 지난해 290억달러로 전년대비 반등세를 보이면서 올해는 300억달러 이상 수주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특히 2015년 배럴당 30~40달러 수준의 국제유가가 올 들어 상승세를 보이면서 80달러 선으로 뛰었다. 국제유가 상승은 중동 산유국의 발주량 확대를 불러와 국내 건설기업들의 중동 지역 플랜트 수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기대감이 더해졌다.
하지만 300억달러 달성은커녕 지난해보다 수주액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 경우 국내 건설업계는 2006년 이후 12년 만에 3년 연속 300억달러를 하회하게 된다.
이 같은 수주 부진은 그동안 수주텃밭이었던 중동 지역의 수주실적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 수주액은 76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5억달러에 비해 26.9% 감소했다. 수주 건수 기준으로는 50건에서 35건으로 30% 줄었다.
게다가 지난 6월 일부 건설사들이 이란 프로젝트 계약을 해지하는 등 수주 후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일부 대형건설사들이 중동에서 수주를 이어가고 있지만, 예상보다 실적이 나아지진 않고 있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같은 전통적 수주 강세 지역은 발주량 자체가 크게 줄어든 데다 최근 국내 건설기업들이 공을 들여온 이란 시장까지 막히면서 목표치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며 "업계 전체로 봐도 300억달러도 버거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중동 외 지역들이 지난해보다 나은 실적을 기록하면서 중동에서의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 수주액은 120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3억달러보다 16.6% 늘어났다.
또 중남미·아프리카 지역의 수주도 올 들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중남미는 2억달러에서 7억달러로, 아프리카는 2억달러에서 6억달러로 각각 183%, 144%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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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 수주가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건축·토목 부문 수주가 많아진 것도 수주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플랜트 수주액은 116억달러로 지난해 동기 154억달러보다 24.6% 줄어들었다. 반면 건축 부문은 18억달러에서 45억달러로 146% 뛰었으며 토목 부문은 38억달러에서 53억달러로 40.2% 증가했다. 수주 건당 평균 수주액은 플랜트의 경우 3억달러인 반면 토목은 1억달러, 건축 부문은 2269만달러에 불과하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중동 국가에서 우리나라가 강세를 보이는 플랜트 사업보다는 도로, 교통 등 SOC 사업에 대한 발주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유가 상승이 해외건설 발주량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자 국내 건설기업들이 수주역량 강화가 당면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 국내 건설시업들의 수주경쟁력 약화는 국내연구기관의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건설기술연구원이 올해 초 발표한 '건설산업 글로벌 경쟁력 종합평가'에서 지난해 우리나라는 20개국 중 9위로, 1년 전보다 세 계단 하락했다.
손태홍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인프라 투자의 확대를 수주 기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기"라며 "외교와 금융 등 국가 역량 결집을 통해 해외수주 전략을 구축하고 기획·설계·시공·관리 등 기업 역량 제고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세밀한 지원사격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세계 건설시장은 단순도급형 발주에서 민관협력 투자개발형(PPP)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다. PPP 사업은 민간기업이 공공인프라를 건설하고 운영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사업 시작부터 시공자의 금융동원능력이 중요해졌다.
우리 정부도 지난 7월 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를 설립했지만, 아직까지 효과가 미미한 수준이다.KIND가 PPP사업에 지원할 수 있는 최대 자금이 600억원에 불과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현재 국내 해외수주는 기획재정부의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코이카 공적개발원조(ODA) 등으로 나뉘어 산업별로 따로 악전고투 중"이라며 "경쟁력을 위해 산업부, 국방부, 기재부까지 합한 종합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전 산업의 종합적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국내 주택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해외수주를 위해 노력했지만, 사업 초기 자금 확보가 어렵고 위험 부담이 큰 만큼 수주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정부 지원을 받는 다른 나라 경쟁사와 경쟁률에서 크게 밀리는 상황인 만큼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