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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 사내이사(등기임원) 연임에 실패하면서 재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로 대기업 총수가 주총에서 사내이사에 선임되지 못하는 첫 사례가 됐다.
이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들은 조 회장이 경영권이 박탈됐다 혹은 회장직이 박탈됐다며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의 부결로 등기이사 자격을 상실했다. 때문에 대한항공 대표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나게 된다. 대표이사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선임되며, 사내이사가 아닌 이상 대표이사도 당연히 박탈되는 것이다.
기존에 대한항공 이사회는 조양호 대표이사 회장을 비롯해 조원태 대표이사 사장, 우기홍 대표이사 부사장, 이수근 부사장 등 4명의 사내이사와 임채민 감사위원, 정진수 감사위원, 김동재 감사위원, 김재일·안용석씨 등 5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었다.
이번 주총에서 임기가 만료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과 김재일 사외이사 대신에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의 신규 사외이사 안건이 상정됐다.
표대결 끝에 조 회장의 안건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고, 박남규 교수는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즉, 조 회장은 대한항공의 사내이사(등기이사) 및 대표이사 자격을 박탈한 것이다. 법적 책임을 묻는 자리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렇다고 경영권이 박탈됐거나 회장직이 박탈됐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대한항공은 오랜 경험과 연륜을 갖춘 조 회장을 미등기 임원으로 유지하며 경영에 참여하도록 할 방침이다. 특히 조 회장은 한진그룹 지주사이며 대한항공을 지배하고 있는 한진칼의 지분 17.84%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조 회장의 연임 실패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이로 인해 횡령과 배임 등 여러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 총수들 가운데 등기임원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룹 오너로서 경영권을 행사하고 회장직을 유지하는 경우는 많다.
이재현 CJ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SK 최태원 회장 등이 과거에 구속 수감됐을 때 주력 계열사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경영권이 박탈됐거나 회장직이 박탈됐다고 하지 않았다.
최대주주 및 그룹 회장으로서 역할과 위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과 김 회장은 아직까지 등기임원으로 복귀하지 않았고, 최 회장은 사면을 받은 덕에 SK(주) 등기임원으로 복귀했다. 지난 27일 주총에서는 재선임도 됐다.
물론 일부 대기업 총수들도 그렇게 했으니 조 회장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조 회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주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가치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통렬한 자기반성도 뒷받침 돼야 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갑질 총수라는 주홍글씨가 낙인 찍힌 조 회장이지만, 의미 부여는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최종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그 결과에 따라 합당한 죄값을 치르면 된다.
민간기업에서 경영권과 회장직은 본인이 물러나지 않는 한 박탈되지 않는다. 본인이 지분을 모두 매각하지 않는 한 달라지지 않는다.
사상 초유, 주주들의 반란으로 기억될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정부, 국민연금, 대기업을 비롯해 조양호 회장도 예외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