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폭 '15%→7%' 축소로 제품가격 올랐는데…카톨릭관동대 홍창의 교수 "수혜자는 정유사"… '시대착오적 발상'정부 시장개입까지 거론… "현실성 떨어지고, 국제화 시대 어긋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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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자 단골 레파토리 마냥 이를 꼬집는 잘못된 반응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표적의 화살은 정유사를 향한다. 이번 휘발유, 경유 등 국내 석유제품 가격 상승은 정부의 '유류세 인하폭 축소'가 주요 원인이지만,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고 있는 것이다.

    원유가격으로 연동하자는 시대착오적인 제안은 국제석유제품 시장의 이해도가 1도 없는 제안이다. 원유가격 연동을 한다면 국내 정유3사가 2014년 4분기 조단위 적자를 기록하진 않았을 것이다. 영업이익률이 제조업 평균이하의 2-3%대를 거두는 정유사가 돈을 버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7일부터 유류세 인하폭을 기존 15%에서 7%로 절반 이상 줄였다. 지난해 11월 6일부터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하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8월 31일까지 기간을 연장하는 대신 인하폭을 축소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국내 휘발유 가격은 65원 가량 인상요인이 발생했다. 5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의 보통 휘발유의 ℓ당 평균 판매가격은 전주 대비 36.4원 오른 1496.4원을 기록하며 상승세가 시작된 지 3개월 만에 가장 큰 오름폭을 기록했다.

    갑작스런 가격 상승으로 시장 반응 역시 부정적이다. 실제 전국 주유소 제품가격 상승은 세금 인상분 대비 절반 수분에 그쳤지만, '국제유가 하락시에는 제품가격을 천천히 내리더니, 오를 때는 가격이 바로 반영하면서 서민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는 의견이다.

    정유업계는 정부의 세금 지원 축소분이 급격하게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지 않도록 적극 협조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내 한 대학교 교수(카톨릭관동대 홍창의 교수)는 언론 기고문을 통해 국내 휘발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쪽은 정유사라고 꼬집고 나섰다. 사실상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국내에서 안정적인 석유제품 공급을 담당해 온 업계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홍 교수의 기고문이 현실에 뒤떨어진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홍 교수는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팔아 큰 이익을 정유사가 보고 있으며, 급기야 국제유기 상승기의 경우 황금알을 낳는 투기 상품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정유사들이 휘발유가격 책정에서 기준으로 정하고 있는 싱가포르 국제시장 기준가를 원유 도입가로 변경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론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이미 한차례 '실패한 정책'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4년 휘발유, 경유 등의 국내 판매가격을 국제 원유가와 환율 변동에 연동시켜 조정하는 유가연동제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석유가격을 정부가 규제하면서 정유회사의 책임경영 저해나 자원배분의 왜곡 등 시장의 비효율 문제 등 부작용이 잇따랐다.

    급기야 시민단체들까지 반발하자 정부는 1997년 1월 유가연동제를 폐지하고, 원유 가격의 완전 자유화를 실시하게 된다. 이 때부터 정유업계는 싱가포르 국제가격 기준을 통해 유가를 결정짓고 있다.

    석유제품의 경우 환율은 물론 다양한 수급상황에도 영향을 받는데, 유가 기준으로만 가격을 책정한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소 한마리를 도축해 등심, 안심, 우둔살 등 부위별로 판매하는 데 '같은 소에서 분리한 것인데 왜 차이가 나느냐'는 수준이하의 논리밖에 안된다.

    문제는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업계는 원유를 정제해 단순 석유제품을 팔아 얻는 이익이 크지 않다. 당장 실적만 봐도 그렇다. 작년 정유4사의 전체 매출액 중 정유부문과 비정유부문(화학사업)의 비중은 '80:20'. 이중 정유부문 영업이익률은 2%에 불과하다. 오히려 화학 등 비정유부문의 비중이 8.9%에 달하며 이익 기여도가 높다.

    특히 작년 4분기의 경우 국제유가 하락과 맞물려 정유부분에서 손실이 확대되며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들어 1분기 흑자로 돌아서긴 했지만 화학, 윤활유 사업의 반등이 이뤄져 가능했다. 국내 정유사들이 화학사업에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 역시 휘발유를 팔아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국내 휘발유 가격 상승의 최대 수혜자가 정유사라고 지정하는 것은 과도한 표현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정부가 유가를 틀어쥐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국제화 시대에 어긋난다. 원유 가격과 제품 가격은 따로 움직이는 만큼 국제 가격을 기준으로 두는 것이 맞다. 

    일각에서는 휘발유 가격 인상과 관련 정부의 정책 실패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국제 유가가 내릴 때 정책을 시행하더니 오를 때 인하폭을 축소해 시장의 오해만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의 유류세 인하정책 시행 당시에도 유가도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던 시기였던 만큼, 적절하지 못한 대표적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여겨진다. 정부 세수가 지나치다 보니 세 수입을 줄이기 위한 사전 조치였다는 평가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당시 정부가 유류세를 인하하지 않았다면 작년 정부의 세수입은 25조4000억원을 한참 넘어 섰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내 정유사들은 전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오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일일 정제능력 103만5000배럴은 전세계 최고다. 나머지 정유사들도 대부분 60~80만배럴 규모며 대부분 단일공장 기준 '글로벌 톱10'에 포함될 정도다.

    가격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한 만큼 가장 싼 값에 제품 공급이 가능하다. 게다가 세계 최고 환경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수출까지 가능하다. 국내 정유사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황 함량 기준 '싱글 PPM' 수준이다. 선진국인 호주에서 한국산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다. 자국에 정제시설을 추가로 구축하는 것 보다 한국산을 수입해 공급하는 게 더 효과적인 판단을 내려 매년 수입량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국내 석유제품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제품가격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류세'가 주범이다. 국제유가가 올라 제품가격이 오르면 최대 수혜자는 정부다. 이번 유류세 축소에 따른 이익 역시 정유사가 아닌 '주유소'다. 서민들이 부담 없이 석유제품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것이지 '희생양'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