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기 양산 전망 … 2027년 본격 개화SKC, 세계 최초 양산 … 적자 탈출 시험대삼성, 전자·전기 계열 총동원 … 생태계 구축LG이노텍, CTO 조직 중심 기술 확보 … 추격 예고
-
- ▲ 반도체 클린룸 전경ⓒ삼성전자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소재로 꼽히는 '유리기판' 시장이 본격적인 개화를 앞두고 있다. 기존 플라스틱(유기) 기판과 실리콘 인터포저의 한계를 동시에 넘을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받는 유리기판이 차세대 AI 칩 구현의 핵심 소재로 떠오르면서 삼성·SK·LG 등 국내 대기업들이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경쟁에 본격 돌입했다.23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유리기판 시장은 이르면 내년부터 초기 양산 단계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SKC 자회사 앱솔릭스를 필두로 삼성전기, LG이노텍이 잇따라 상용화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2027~2028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양산과 램프업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전망에 따르면 유리기판 관련 시장은 향후 연평균 50% 이상 성장해 2035년에는 42억 달러(약 6조)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유리기판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AI 반도체의 구조적 변화가 있다. AI·서버용 반도체는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하면서 고집적·고성능 패키징이 필수 요소로 떠올랐다. 반도체 성능은 단순히 칩 미세화만으로 끌어올리기 어려워졌고, 칩과 칩을 연결하는 패키징 기판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졌다. 기존 플라스틱 소재 기판은 크기가 커질수록 휘어짐이 발생해 성능 저하로 이어지는 한계를 안고 있다.이에 따라 실리콘 인터포저가 대안으로 활용돼 왔지만 비용 부담과 대면적 구현의 어려움이라는 또 다른 한계가 지적됐다. 유리는 이러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소재로 평가받는다. 열에 강해 휘어짐이 적고, 표면이 매끄러워 초미세 회로 구현이 가능하다. 전기 신호 손실이 적어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전력 효율도 크게 개선돼 발열이 심한 AI 반도체에 적합하다는 평가다.다만 유리기판은 장점만큼이나 기술적 난제도 분명하다. 외부 충격에 약한 '취성' 특성으로 인해 제조 공정 중 파손 위험이 크고, 수천~수만 개의 미세 구멍을 뚫는 TGV(Through Glass Via) 공정과 균일한 도금 공정이 까다롭다. 수율 확보가 최대 관건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 때문에 단일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상용화가 어렵고, 소재·장비·공정 기업을 아우르는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국내에서 가장 앞서 있는 곳은 SKC다. SKC는 2021년 반도체 유리기판 전담 자회사 앱솔릭스를 설립하고, 미국 조지아주 코빙턴에 유리기판 생산시설을 구축했다. 앱솔릭스는 AMD,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고객사를 대상으로 시제품을 공급하며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 유리기판 양산과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SKC는 유리기판 투자 여력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SK엔펄스 흡수합병을 통해 확보한 현금과 자산을 포함해 향후 유리기판 생산설비 확대에 재원을 투입할 가능성이 거론된다.SKC에게 유리기판 사업은 단순한 신사업을 넘어 실적 반등의 분수령으로 꼽힌다. 전기차 시장 캐즘으로 주력 동박 사업이 부진한 가운데 SKC는 최근 3년 연속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비핵심 사업 매각과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 안정성 확보에 나섰지만 뚜렷한 실적 개선 신호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유리기판 사업이 본격 궤도에 오를 경우 SKC가 적자 탈출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유리기판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전방위적인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삼성은 유리기판을 활용한 패키징 서비스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기존 고가의 실리콘 인터포저를 유리 인터포저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며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 내부에서는 AI 반도체 수요 증가와 맞물려 유리기판 상용화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판단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삼성전기의 행보도 빠르다. 삼성전기는 세종사업장에 유리기판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시제품 생산에 돌입했으며 일본 스미토모화학과 유리기판 핵심 소재인 글라스 코어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도 추진 중이다. 시제품은 글로벌 고객사에 전달돼 성능 검증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최근에는 도금 공정 기술 강화를 위해 금속 표면처리 전문 기업 익스톨에 투자하며 공급망 확보에도 나섰다. 유리기판은 도금 과정에서 금속과의 밀착력 확보와 보이드 억제가 핵심 난제로 꼽히는데 삼성전기는 핵심 공정을 내재화해 수율 안정성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정기 인사에서도 반도체 기판 분야 핵심 인력을 전면에 배치하며 유리기판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후발주자인 LG이노텍은 CTO 조직을 중심으로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R&D 센터 내에 시제품 설비를 구축해 개발을 진행 중이며 고객사 수요가 확인되면 사업부 단위로 확대하는 중장기 전략을 세웠다. 유리 가공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과의 협력과 투자를 통해 기술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한편, 글로벌 경쟁 환경도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이비덴, DNP 등 전통적인 기판·소재 강자들도 유리기판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미국과 대만 진영 역시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대형 반도체 기업들이 초기 R&D 단계부터 기판 업체와 협력하며 사실상 표준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유리기판 시장은 단순한 소재 경쟁을 넘어 생태계 주도권 싸움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업계 관계자는 "유리기판은 AI 서비스 확산에 따라 고성능 반도체 구현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되고 있다"며 "누가 먼저 양산 안정화와 수율 확보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향후 수십 년간 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주도권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