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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3분의1을 인보사에 투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이하 인보사)'의 국내 판매허가를 목전에 뒀던 2017년 4월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한 발언이다.이날 이 전 회장은 인보사를 생산하는 코오롱생명과학 충주공장에서 19년 만에 양산을 앞둔 인보사의 성인식을 치렀다. 여기서 이 전 회장은 인보사의 의미를 칠판에 적는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해 '나에게 인보사는 981103'라고 밝혔다. 인보사 사업 검토 보고서를 처음 받은 날짜를 뜻하는 숫자였다.
인보사 개발은 지난 1998년 이 전 회장의 고교 동창인 이관희 인하대 교수가 시작한 연구에서 시작됐다. 이 전 회장은 취임 초기인 1999년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을 설립해 20년간 1100억원 이상 쏟아부었다. 이 전 회장의 과감한 투자 끝에 인보사는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로 지난 2017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았다.
이 전 회장의 '뚝심'의 상징이었던 인보사는 2년도 채 안돼 허가가 취소되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식약처는 지난 28일 인보사의 품목허가 취소를 결정하고 코오롱생명과학을 형사고발하기로 했다. 인보사의 주성분이 허가 당시 기재된 성분이 아닌데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제출한 자료가 허위로 밝혀진 데 따른 조치다. 이로 인해 코오롱생명과학·티슈진의 명운이 뒤흔들리는 것은 물론, 코오롱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특히 인보사 개발사인 코오롱티슈진은 인보사가 사실상 유일한 신약이었기 때문에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인보사 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3조원대였던 시가총액은 지난 27일 종가 기준으로 565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인보사의 판매·유통을 담당해온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의 매출액 비중이 전체의 5%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당장 상폐 위기는 면했지만, 연구개발비를 전부 손실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무엇보다 제약·바이오 기업의 생명인 신뢰성에 큰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 돌이키기 힘든 타격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 허위 자료를 제출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신뢰성이 생명인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코오롱생명과학이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코오롱그룹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어 제약·바이오 업계 안팎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인보사에 대해 '넷째 자식'이라고 칭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왔기 때문이다.
인보사는 이 전 회장의 넷째 자식이자 코오롱그룹의 미래였다. 인보사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인보사는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로서 일본, 중국 등으로 1조원 규모로 기술수출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 전 회장이 거리낌없이 인보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왔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인보사 사태가 터지기 약 4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말 돌연 경영에서 물러나 퇴직금으로 411억원이나 챙겼다. 당시에도 갑작스러운 해임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난무했다. 이 전 회장이 인보사 사태를 미리 인지하고 퇴직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이 전 회장이 인보사 사태를 예견하고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면 배임죄에 해당된다.
여기에 이 전 회장이 코오롱생명과학·티슈진에서 보유 중인 지분율을 고려해보면, 이 전 회장의 책임론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코오롱그룹의 지주회사인 ㈜코오롱은 코오롱티슈진의 지분 27.26%, 코오롱생명과학의 지분 20.35%를 각각 보유 중인 최대주주다. 이 전 회장은 ㈜코오롱의 지분 45.83%를 갖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초유의 사태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코오롱생명과학·티슈진에 대한 '꼬리 자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인보사 사태 이후 주주들과 환자들은 공동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회장의 무대응이 과연 적절할까. 더구나 넷째 자식이라고 할 정도로 인보사에 대한 애정을 강조해왔으면서, 인보사 사태가 터진 이후로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가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