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수은 합병' 발언 후폭풍수은 불쾌감, 기재부도 손사래존재감 과시… 금융위원장 견제론 솔솔
  • ▲ 사진은 이회장이 기자간담회후 기자들의 질문을 듣는 모습.ⓒ산업은행
    ▲ 사진은 이회장이 기자간담회후 기자들의 질문을 듣는 모습.ⓒ산업은행
    추석 직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정치권과 정부에게 던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통합' 문제가 여전히 여의도와 정가를 달구고 있다. 정권실세인 이 회장이 보란듯 금융권에 화두를 던졌지만 금융위원장과 기획재정부 1 차관이 손사래를 치면서 모양새가 빠지는 모습이다.

    이 회장은 취임 2주년을 맞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작심한듯 "정책금융의 역활이 많은 기관에 분산돼 있어 이제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합병론'을 언급했다. 질의응답과정에서 튀어나온말이 아니라 모두 발언에서 한 말이어서 철저하게 준비된 발언들로 보였다.

    그는 "앞으로 면밀히 검토해 산은과 수은의 합병을 정부에 건의해 볼 생각"이라며 "산은과 수은이 합병함으로써 중복 투자를 줄이고 더 강력한 정책금융기관이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기업금융 지원과 구조조정 등 분야에서 두 기관의 기능은 일부 겹친는 항목이 없지 않다. 이때문에 인력과 예산을 줄이고 투자할 돈을 더 늘리자는게 이 회장의 구상이다.

    그는 합병 필요성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도 "정부와 협의가 안 된 사견"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각 기관의 인력과 제도를 감독하는 금융위원회나 예산을 주는 기획재정부와 물밑 교감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문재인 정부 금융위원장 1순위 후보로 계속 거론 될 만큼 금융권의 대표적 '친문(친문재인) 인사'로 중량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여의도 금융가에서는 이회장이 신임 금융위원장에게 보란듯이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설 들이 파다하게 퍼져있다. 이 회장이 금융위원장도 감히 언급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쾌도난마식으로 풀어 던지면서 몸값을 키웠다는 것이다.
  • ▲ 사진은 은 위원장이 17일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제조회사 아이원스에서 열린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 현장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연합뉴스
    ▲ 사진은 은 위원장이 17일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제조회사 아이원스에서 열린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 현장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연합뉴스
    ◇ 은성수 "산은·수은 합병은 이동걸 회장 사견" 불쾌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은 위원장은 16일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전자증권제도 시행 기념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합병은 이동걸 산은 회장의 사견일 뿐으로,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은 위원장은 "(산은과 수은의 합병은) 이 회장이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한 것"이라며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언론에서 논란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합병은)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라며 "(이 회장이 말한 대로) 사견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갑자기 통합의 대상이 된 수은 내부에서도 불쾌감이 흘러나왔다. 두 기관의 역할이 다를 뿐 아니라, 국제금융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반대 논리도 벌써 나온다.

    수은 관계자는 "수은이 축적해 온 대외거래 전문성이 침식될 우려가 있다"며 "오히려 산은의 대외금융 부문을 수은에 넘기는 게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특히 수은이 산은에 합쳐질 경우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공적 수출신용기관(ECA) 지위가 위협당하고, 자칫 수출 보조금 지원 대출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CA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유일하게 허용되는 중장기 수출금융 기관인데, 수은이 산은에 합쳐지면 유럽과 일본 등 경쟁국에서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은 관계자는 "독일의 경우 기존의 기관에서 ECA를 분리했다"고 전했다.

    수은은 이 회장이 일방적으로 합병을 공론화한 것도 부적절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수은은 전직 행장(은성수)이 금융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수장 공백 상태다.

    수은 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이 회장에 대해 "현 정권에 어떤 기여를 해 낙하산 회장이 됐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정책금융 역할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노조는 "이 회장은 (두 기관의) 업무영역과 정책금융 기능에 관한 논의로 본인의 경영능력 부재와 무능력을 감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 ▲ 사진은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활력 보강 추가대책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내수활성화 및 수출활력 회복방안 등을 설명하는 모습.ⓒ연합뉴스
    ▲ 사진은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활력 보강 추가대책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내수활성화 및 수출활력 회복방안 등을 설명하는 모습.ⓒ연합뉴스
    기재부도 김용범 제1차관이 17일 기자들에게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산은과 수은은 고유 핵심기능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김 차관은 "정부가 2013년 마련한 정책금융기관 역할 재정립 방안에 따르면 산은은 대내 금융 특화기관이고 수은은 ECA"라며 "정책금융기관의 지원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각 기관이) 보유한 핵심기능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수은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 차관이 언급한 것은 2013년 금융위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내놓은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이다.

    금융위는 당시 이 방안에서 산은, 수은, 기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등을 망라한 정책금융기관 재조정 방안을 제시하면서 정책금융공사를 산은에 합쳐 대내 전담으로, 수은은 무보와 함께 양대 ECA로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