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발표→여당 발의→본회의 통과, 1주일내 '후다닥'혈세로 만든 기금으로 기업주식까지 취득…통제장치 없어설득력없는 기금채권 보증안, 기업 숨통 옥죌지 우려
  • ▲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 문재인 대통령과 노영민 비서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입장하고 있다.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조성을 발표했다.ⓒ청와대 제공
    ▲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 문재인 대통령과 노영민 비서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입장하고 있다.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조성을 발표했다.ⓒ청와대 제공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기업에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지원하는 법안이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도출된 정책으로 코로나19 사태로 대량실업이 우려되는 국가 기간산업 위기를 정부가 나서 돕겠다는 취지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40조원 규모로 위기 극복과 고용을 위한 기간산업 안정기금을 긴급 조성하겠다"며 "기간산업의 위기와 고용충격에 신속히 대처하고 국민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 경제가 일시정지되고 하반기 마이너스(역) 성장이 우려되는 가운데 항공·해운·자동차·조선 등 경제와 고용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기간산업에 자금을 수혈하는 긴급조치다.

    "정상화 이익 국민과 공유"…경영개입 의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발의된 '한국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산은법)'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40조원 규모의 기금을 설치해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기금을 활용한 기업지원은 대출, 지급보증, 주식연계증권(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 또는 우선주 매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기금은 5년간 한시적 운용되며 원칙적으로 법 시행후 1년내에만 자금지원 신청이 가능하다.

    문제는 정부가 이 기금을 운영하면서 지원받는 기업에게 강제에 가까운 의무조항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국민세금을 투입하는 대신 기업이 정상화될 경우 그 이익을 국민 모두와 공유하겠다는 명분이다.

    정부가 제시한 의무조항을 보면 고용유지, 경영성과 공유, 자금지원 목적외의 용도 사용제한 등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을 조건으로 부과할 수 있다.

    이를두고 재계에선 정부가 향후 갖가지 조건을 붙여가며 경영에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정부가 위기에 직면한 기업에 자금을 대고 이를통해 경영에 간섭하거나 국유화를 시도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발의된 개정안을 보면 산업은행이 지원하는 자금으로 기업의 주식을 취득할 수 있게 했다. 지원금액의 20%까지를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주식연계증권이나 우선주 등으로 지원가능하다. 다만 취득한 주식으로 의결권 행사는 하지 못하도록 단서조항을 달았다.

    개정안을 검토한 정무위 수석전문위원은 "정부 지원금으로 지분취득이 가능하도록 기업의 자율성을 제약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지원방식은 기업의 경영 자율성 침해의 정도가 적은 순으로 고려돼야 할 것이며 지분취득이 필요한 경우에도 비율을 필요최소한으로 유지하도록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원 미래통합당 의원도 "기금운용으로 취득한 주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CARES Act(기업구제 프로그램)나 독일의 '경제안정화기금(WSF)'의 경우 유동성 제공의 목적에 충실하도록 주로 대출, 신용보증의 방식으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 ▲ 개정되는 산은법 주요 내용ⓒ국회 정무위 검토보고서 자료
    ▲ 개정되는 산은법 주요 내용ⓒ국회 정무위 검토보고서 자료
    보증만 서서 만든 40조, 운용은 정부 마음대로?

    40조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 조성방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가 국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직접 조달하거나 한국은행이 자금을 푸는 방식이 아닌, 산업은행이 기금을 신설하고 정부가 원리금상환을 보증하는 기금채권 발행으로 가닥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위해 정부는 기금채권 국가보증동의안을 국회에 함께 제출했다.

    기업살리기에 정부재원을 직접 투자하지 않는 방식을 채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여러차례의 지난 경제위기 당시 공적자금 투입은 주로 정부 재정을 통해 이뤄졌다.

    정부 내부에서도 기금조성을 위해 직접 예산을 투입해 출자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하반기 경기반등에 대한 불확실성과 추가 경제대책 필요성을 염두해 정부는 보증만 서고 기금채권을 발행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기업에 여신을 한 사례는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 보증형식의 기금마련은 공적자금관리법상 운용에 대한 제한을 받지 않아 제대로 된 외부통제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 정부 재정을 출자해 자금을 조달하면 매년 국회 등의 통제를 받게돼 자금조달 및 집행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에대해 정부는 늘어나는 국가채무를 우려해 기금채권 발행을 결정했다고 설명하지만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정무위 검토보고서는 "기금을 기금채권으로 마련하는 재정외 운영을 한다해도 실질적으로는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오히려 채권을 발행하는 조달비용이 더 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기금채권 보증꼼수는 마련된 기금 40조원을 국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정부가 자유롭게 자금을 쓰기 위한 속셈이란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은 산은법 개정안에 산업은행 기금지원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해도 고의·중과실이 없을 경우 징계나 문책을 면제하는 조항을 달았다.

    또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을 심의하는 심의위원회에 대한 설치 조항도 구체적인 구성 및 운영방식은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규정했다.

    미래통합당 소속의 한 국회 기재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모든 경제주체가 흔들리는 이때 국가가 혈세로 마련한 자금이 기업의 숨통을 옥죄는 장치가 될 수 있다"며 "숙려기간 없이 1주일만에 마련된 40조원이 문재인 정부의 또다른 스튜어드십코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