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먹거리 투자 닻 올렸는데...검찰 구속영장 청구에 또 다시 발목시스템반도체 18조 투자·AI·전장 등 신사업 추진 동력 위기M&A 등 의사결정 어려워 '실기' 우려도
  • ▲ 지난달 대국민 사과문 발표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지난달 대국민 사과문 발표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년 만에 다시 구속될 위기에 처하면서 삼성 내부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벌써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총수의 사법 리스크로 가뜩이나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 현안을 챙기고 미래사업을 준비해야할 핵심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우선 삼성은 지난 2017년 국정농단 사건을 시작으로 사법 리스크가 깊어지는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글로벌 경영환경을 마주하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삼성의 주력 분야에서 중국의 거센 추격이 시작된 것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의 잇따른 무역분쟁으로 이해득실을 다각도로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여기에 지난해에는 일본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쓰이는 핵심 소재 수출을 막아서면서 또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이 같은 대외변수로 고초를 겪던 가운데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팬더믹이 발생해 이제는 전 세계적인 차원의 경제위기가 현실화된 상황이다.

    삼성은 이 같은 사상 초유의 경영환경 위기를 사법 리스크라는 또 하나의 큰 짐을 짊어지고 헤쳐왔다. 특히 지난 2017년 2월 구속된 이 부회장이 이듬해 2월 1년 여만에 석방되면서 위기에 직면한 삼성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삼성은 앞서 몇 년 간 이 부회장 등 주요 임원들의 공백으로 추진력을 잃었던 미래 성장동력에 다시 불을 지폈다. 삼성의 독보적인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분야에서 기존 메모리 반도체에 더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133조 원 신규 투자를 선언한 것도 이 부회장의 석방 이후인 지난해 전격적으로 이뤄진 일이다. 반도체와 함께 인공지능(AI), 5G, 바이오, 전장부품 등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시작됐다.
  • ▲ ⓒ박성원 기자
    ▲ ⓒ박성원 기자
    하지만 이 부회장이 2년 여만에 다시 구속 기로에 처하면서 삼성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위기'라는 표현으로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삼성은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한치 앞을 전망할 수 없는 상황을 극복할 주역이 돼야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총수 공백으로 인한 경영 위기를 맞게 된 점을 한탄했다.

    이 부회장 등 주요 경영진들의 추가적인 경영 공백이 시작되면 당장 실행을 눈 앞에 둔 '포스트 코로나' 투자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최근 투자가 결정된 평택 극자외선(EUV) 파운드리와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계획은 삼성이 중국이나 대만, 미국 등 경쟁사들과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한시가 급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재계는 물론이고 관련업계에서도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과거 하만(Harman) 인수와 같이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한 퀀텀점프가 어려워진다는 점도 삼성에겐 뼈 아픈 부분이다. 이 부회장 같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전격적인 M&A 추진이 빠르게 변하는 IT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요건으로 꼽히는 분위기에서 삼성이 실기(失機)할 수 있다는 점은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삼성이 실기하는 동안 글로벌 경쟁자들이 막강한 자금력과 추진력을 앞세워 유망 기업 사냥에 나설 것임을 감안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실제로 미국의 애플은 올해 들어서만 가상현실(VR), 음성명령 기술 관련 스타트업 인수 3건을 성사시켰고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도 미래 유망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초기기업 투자는 물론이고 대규모 M&A 추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본격적으로 다시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좀처럼 M&A 시장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예년 같았으면 이미 여러 곳의 유망 기술 보유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경영권 인수 작업에도 여러 차례 성공했겠지만 올해 들어서는 단 1곳의 기업을 인수하는데 그쳐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변한 투자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거의 100조 원에 가까운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 이처럼 투자 제동이 걸리면 재계 전반의 미래 투자 분위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에서 선행적 투자 지표로 삼고 있는 삼성이 움직이지 못할 경우 해당업계는 물론이고 다른 주요 기업들도 투자 집행에 주춤하게 만들 수 있다"며 "대외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가뜩이나 쪼그라든 기업들의 투자 의지가 또 한번 꺾이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