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미터 컨테이너 2만4000개 한번에 운반길이 400m, 폭 61m, 높이 33m… 아파트 133층 누운 꼴국산 스크러버 첫 장착… 조선 부활 청신호
  • ▲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HMM
    ▲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HMM
    "전에는 보통 국산화율이 80% 정도였는데, 이 배는 90% 이상으로 예상한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선박에 국내산 스크러버가 장착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11일 거제조선소에서 만난 이재곤 삼성중공업 파트장은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가 가진 경쟁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레퍼런스(실적 경험)가 중요한 만큼, 국산화율이 90% 이상인 이 배가 성공적으로 인도된다면 전반적인 업황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서 부활을 향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이날 오후 빗줄기는 굵어지고 있었으나 선박 안 막바지 작업으로 분주한 작업자들은 아랑곳없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는 20피트(약 6미터) 컨테이너 박스 2만4000개를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선박이다. 선박의 길이는 약 400m, 폭은 61m, 높이는 33.2m에 달한다. 이는 선박을 수직으로 세웠을 때 아파트 133층 높이에 해당한다.
  • ▲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 엔진.ⓒ뉴데일리 엄주연 기자
    ▲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 엔진.ⓒ뉴데일리 엄주연 기자
    실제로 배에 올라 브릿지(선박을 조종하는 공간)부터 기관실이 있는 선미까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반복해보니, 배의 규모가 실감이 났다. 습한 날씨 탓인지 숨은 턱끝까지 차올랐고, 등에 땀줄기가 흐르기 시작하자 마지막 단장에 한창인 선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브릿지에는 배를 한 눈에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빼곡했고, 기관실에서도 마지막 점검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선장실도 마지막 가구 배치 작업만을 남겨놓은 상태였다. 

    HMM이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발주한 2만4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초대형 선박은 대우조선해양에서 7척, 삼성중공업에서 5척이 각각 건조됐으며 현재 9호선까지 운항을 시작했다. 기자가 이날 올라탄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는 가장 마지막인 12번째 선박으로 삼성중공업에서 막바지 작업 중이었다. 

    이 배의 가장 큰 특징은 국산화율을 높인 것이다. 선박에 들어가는 기자재 가운데 90% 이상을 국내 기업들이 만든 것으로 장착했고, 특히 스크러버는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선박 가운데 처음으로 국산 스크러버를 장착했다. 업계 특성상 선주들이 굉장히 보수적인 만큼, 국산화율이 높다는 것은 레퍼런스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 파트장은 "LNG(액화천연가스)선이나 다른 선종의 경우, 선박에 들어가는 기자재들이 외국에서 들여온 것들이 많은데, 컨테이너선 특히, HMM이 발주한 이번 선박은 국산화율을 높이는데 신경을 썼다"면서 "여기에 들어간 기자재업체들이 기술적으로 문제없다는 것을 증명하면 앞으로 판로에도 도움이 되는 등 업황 회복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 스크러버.ⓒHMM
    ▲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 스크러버.ⓒHMM
    선미 부분에서는 거대한 원통 모양의 스크러버 3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연통 3개 가운데 가장 큰 스크러버가 약 8000마력을 뿜어 내는 11기통 메인 엔진과 연결돼 있다. 좌우 2개는 각각 그 방향의 발전기용이다. 타입은 하이브리드로 국내 조선기자재업체인 파나시아 제품이다. 직경은 6.5m, 높이는 19.9m 규모다.

    스크러버(황산화물 저감장치)는 선박 엔진에서 배출하는 연소가스에서 유황과 유해입자 물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일종의 배기가스 정화장치다. 스크러버 내부에서 황산화물이 통과하면서 장치 내 알칼리성 바닷물에 의해 황의 산성분이 제거된 뒤 배출되기 때문에 환경규제에 적합한 대응 수단으로 꼽힌다. 

    HMM은 초대형선 12척에 친환경 설비인 스크러버를 장착해 세계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또한 LNG 연료탱커를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돼 향후 LNG 추진 선박으로 교체도 가능하다. 

    이렇게 국산화율을 높이면서 코로나19 영향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선박이 인도되기 전 시운전을 진행할 때, 외국 기술자들이 직접 기기를 점검해야하는데, 코로나19 여파로 기술자들의 입국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 선박은 국산화가 잘 돼 있어 그런 부분에서 고충을 덜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 ▲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 브릿지에서 바라본 선박.ⓒHMM
    ▲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 브릿지에서 바라본 선박.ⓒHMM
    이 선박은 오는 23일 시운전을 진행한 뒤 9월 11일경 인도될 예정이다. 이후 부산, 닝보, 상해, 얀티안 등 아시아 항만을 기항한 후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으로 향할 예정이다. 로테르담, 함부르크, 앤트워프, 런던 등 유럽 주요 항만을 기항하고 노선을 일주하는데 총 12주가 소요된다.

    배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가기 전 "성공적인 인도를 의심치 않는다"는 삼성중공업 관계자의 말에서 우리 기술력에 대한 자긍심이 전해졌다. 이 기운이 HMM의 선박에도 깃들어 아시아를 거쳐 유럽 항만을 누릴 생각을 하니 잠깐 동안의 투어에서 느낀 고단함이 씻겨 나가는듯 했다. 

    HMM은 내년에는 1만6000TEU 8척을 현대중공업에서 건조해 인도받아 총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확보하게 된다. 글로벌 1, 2위 선사들의 초대형선 보유비율은 20%이다. HMM이 내년에 1만6000TEU 8척까지 모두 인도받게 되면 HMM의 초대형선 비율은 40% 이상으로 증가한다.

    HMM 관계자는 "2만4000TEU급 초대형선은 우리 기술로 만든 친환경·고효율 선박으로 HMM을 비롯한 국내 해운선사의 경쟁력을 크게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초대형선으로 운항할 경우, 현재 유럽항로 평균 선형인 1만5000TEU급 선박에 비해 약 15%의 운항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