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권고기준 수용한 듯, 경제위기시 예외 등 강제성 옅어홍남기 "중장기 재정여건, 복지 수요지출 감안 유연 적용"임기 5년간 나랏빚 급증시켜놓고 준칙적용은 차기정부부터
  • ▲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2017년 국가재정전략회의ⓒ자료사진
    ▲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2017년 국가재정전략회의ⓒ자료사진
    정부가 오는 2025년부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 이내로, 또 통합재정수지는 -3% 이내로 관리하도록 하는 재정준칙을 마련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채무와 수지 준칙을 결합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하고자 한다"며 "국가채무 기준은 60%, 통합재정수지는 -3%를 기준으로 하되 한쪽이 기준치를 넘더라도 다른쪽이 하회하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상호보완적으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60%와 -3% 수치 설정에 대해서는 "현재 국가채무비율과 중장기 재정여건, 복지지출증가 수요 등을 감안했다"며 "통합재정수지가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만큼 이를 기준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내용은 EU가 권하는 재정준칙과 흡사한 내용이다. EU 역시 국가채무는 GDP 대비 60% 이내로, 재정수지 적자율은 연간 3%를 한도로 설정했다.

    IMF가 1985년부터 2015년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선진국 29개국을 비롯해 33개의 개발도상국과 23개의 저소득 국가까지 총 85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해 과도한 정부의 재정남용을 제한하고 있다.
  • ▲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2017년 국가재정전략회의ⓒ자료사진
    하지만 한국형 재정준칙에는 코로나19 등 경제위기에는 준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예외조항을 적용하고, 5년 마다 한번씩 기준을 재검토하도록 하는 등 변경 여지가 많아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프랑스의 경우 재정준칙을 법률로 정하고 있고, 독일은 아예 헌법에 명시했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 등으로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그동안 펼친 확장재정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1990년대 이후 재정수지 적자가 -3% 이상 났던 경우는 1998년 IMF 경제위기 때와 코로나19 타격이 덮친 올해가 전부다. 굳이 준칙을 제정하지 않더라도 재정수지 -3%는 암묵적인 룰로 인식돼 왔다는 얘기다.

    코로나19 같은 재정준칙 면제 상황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경기둔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도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1%p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홍 부총리는 "경제위기·경기둔화 대응 등 필요한 재정의 역할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심각한 경제위기 등에 해당할 경우 준칙 적용을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며 "이에 따른 채무비율 증가분은 한도 계산시 1차 공제 후 3년에 걸쳐 점진 가산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재정준칙 도입 시기를 2025년부터로 뒤로 미룬 것도 논란이 예상된다. 국가 장기재정운용 전망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시작된 2017년 국가채무비율은 36%였지만, 다음정부가 첫 예산을 짜는 2023년에는 54.6%, 2024년에는 58.3%에 달할 전망이다.

    박근혜정부 임기(4년)동안 상승한 국가채무비율은 3.4%p에 불과하지만 문정부는 무려 18.6%나 올린 셈이다. 자신들의 임기에는 재정을 펑펑 썼으면서도 다음정부에는 재정준칙이라는 족쇄를 채우는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문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국가부채비율 40%를 마지노선이라고 강조하며 정부를 비판한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고 했다.

    기재부는 이번에 마련한 재정준칙을 입법예고 등 절차를 걸쳐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