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공전', 중기부 수수방관 근본 원인중고차 시장 인식, 허위매물·강매 등 부정적현대차·기아, 중고차 업계와 상생방안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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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업계에서는 대기업의 사업 개시를 최장 3년간 연기하라고 합니다. 사실상 현대자동차, 기아 등 완성차 업체에게 중고차 사업을 하지 말라는 거죠. 완성차 업계는 자체적으로 점유율을 제한하는 등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고 하는데, 정작 중고차 업계는 상생하려는 의지가 없는 겁니다.”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두고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이같은 심경을 토로했다.중소벤처기업부는 오는 28일 중고차 시장 진출에 관한 중소기업 사업 조정심의회를 개최한다. 중기부는 이번 심의회에서 결론을 낸다는 방침이지만 완성차-중고차 업계 간 갈등이 첨예한 만큼 매듭을 짓지 못할 가능성도 점쳐진다.대기업의 중고차 진출 문제는 지난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중고차 매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고, 2019년 2월 기간이 만료되자 중고차 업계가 재지정을 신청했다.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 기한은 2020년 5월이었지만 중기부는 2년 가까이 시간을 끌다가 올해 3월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 지정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중고차 업계가 지난 1월,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아달라며 사업조정을 신청했고, 완성차 업계는 조정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중고차 사업 개시를 미룬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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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고차 시장은 허위매물, 강매 등의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중고차 시장에 대한 인식’에 대해 79.9%는 ‘개선이 필요하다’, 8.9%는 ‘불필요하다’고 응답했다.또한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혼탁·낙후된 이유에 대해서(복수응답 가능) 54.4%는 ‘허위·미끼 매물’이라고 답했고 ▲가격산정 불신(47.3%) ▲주행거리 조작·사고이력 조작·비정품 사용 등에 대한 피해(41.3%) ▲판매 이후 피해보상 및 A/S에 대한 불안(15.2%)이 뒤를 이었다.게다가 지난해 5월에는 중고차 업체를 방문한 60대 남성이 허위매물을 구입한 후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남성은 300만원으로 화물차를 구매하기 위해 인천 서구 간석매매단지로 이동했지만 허위매물 딜러에 붙잡혀 200만원짜리 차를 대출 끼고 700만원에 구매해야 했다.고객들이 대기업의 중고차 진입을 통해 서비스 개선, 시장 투명성을 기대하고 있다. 허위매물이나 강매를 통한 피해 사례가 줄을 잇고 있지만 중기부는 수년간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중기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문제 해결은 커녕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 업계 간 갈등만 커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올해 1월 업계 관계자에게 이 사안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중기부가 중고차 업계의 표심을 우려해 결론을 내지 않을 것”이라며 “차기 정부가 들어서야 해결될 수도 있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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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시 만난 이 관계자는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은 허용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중기부 입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기업 프렌들리’ 기조를 감안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자신했다.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3월과 4월 중고차 사업방향을 발표했다. 양사는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중고차 관련 통합정보 포털을 구축하고 인증중고차를 시장에 공급한다는 방침이다.또한 중고차 업계와의 상생 방안도 제시했다. 양사는 5년, 10만km 이내의 자사 브랜드 중고차만 판매하고 인증중고차 대상 이외 매입 물량은 경매 등을 통해 기존 매매업계에 공급한다는 방침이다.게다가 연도별 시장점유율도 제한한다. 현대차는 2022년 2.5%를 시작으로 2023년 3.6%, 2024년까지 5.1%까지 자체적으로 제한한다. 기아도 2022년 1.9%에서 2023년 2.6%, 2024년 3.7%까지 제한해 중고차 업계와 상생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런 완성차 업계의 노력에도 중고차 업계는 “대기업의 사업 개시를 최장 3년 연기하고 그 이후에도 최장 3년간은 매입·판매 제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그동안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두고 정작 ‘소비자의 입장’은 빠지고 중기부의 눈치 보기가 이어졌다. 중기부는 시간만 질질 끌 게 아니라 대기업의 중고차 분야 참여를 통해 시장의 투명성이 개선되고 소비자들이 양질의 중고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