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국민 설문조사 결과… "장시간근로 해소 도움", '어려움 겪었다' 14.5% 그쳐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엔 긍정적… 보건의료·연구공학기술직 등 일부 직종 적용 유력政 "노사정 합의 통해 구체적 방안 도출"… 한국노총 "사회적 대화 복귀" 선언3개월간 대규모 조사 벌이고도 구체적 대안·적용 시점 등 빠져 맹탕 조사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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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최대 69시간' 근무제라는 비판 여론으로 인해 윤석열 대통령이 전면 수정·보완을 지시한 근로시간 개편안이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지만, 들인 시간과 국민의 관심도에 비해 뾰족한 성과가 없는 '맹탕'이란 지적이 나온다. 노동당국이 발표 시점을 여러 번 미룬 뒤 내놓은 방안은 기존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유연화하겠다는 정도에 그쳤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범위와 시점도 앞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차차 정하겠다는 수준이다.고용노동부는 13일 근로시간 개편 관련 설문조사 결과와 앞으로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설문조사는 지난 6~8월 국민 6030명을 대상으로 유례 없는 대규모로 이뤄졌다. 노동부는 애초 결과를 추석 연휴 전후로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이달로 한 차례 미뤘고, 이달 들어선 지난 8일에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가 재차 연기했다. 첫 개편안 공개 당시 국민의 비판 여론이 거셌던 만큼 거듭 신중을 기한 행보로 풀이된다.올 3월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안은 현행 주 52시간(법정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중 연장근로의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일이 많을 때 몰아서 집중적으로 하고 쉴 때는 길게 쉴 수 있도록 만들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를 두고 사실상 주 최대 69시간 근무라는 비판 여론이 일면서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윤 대통령은 노동부에 개편안을 전면 수정·보완할 것을 지시했고, 이후 노동부는 설문조사를 통한 국민 여론 수렴 절차에 들어갔다.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노사와 일반 국민 모두 동의한다는 응답에 더 힘을 실었다. 동의 응답이 높은 순으로 국민(46.4%), 근로자(41.4%), 사업주(38.2%) 등이었다. 비동의 응답은 국민·근로자 각 29.8%, 사업주 26.3%였다. 일반 국민 10명 중 약 5명이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해 동의한 셈이다.현행 주 52시간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응답이 대부분이었다. 응답자 중 절반쯤에 해당하는 국민 48.2%가 주 52시간제를 두고 '장시간 근로 해소에 도움이 됐다'고 답변했다. 근로자 45.9%와 사업주 45.2%는 '현 근로시간 제도로 업무시간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사업주들 역시 주 52시간제로 인한 제약을 크게 겪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근로시간 규정 탓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업주는 전체의 14.5%에 그쳤다. 나머지 85.5%는 '애로사항을 겪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정부의 원안인 주 최대 69시간 개편안이 당위를 내세울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동의 응답이 많았던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해서는 업종·직종별로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부 업종·직종에만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개편하는 방식에 대해 국민 54.4%, 사업주 47.5%, 근로자 43%가 동의를 표했다. 이들의 비동의 응답은 21~25% 선에 그쳤다. 개편이 필요한 업종·직종으로는 노사 모두 '제조업'과 '건설업', '설치·정비·생산직', '보건·의료직', '연구·공학기술직'을 꼽았다. 특히 제조업은 근로자(55.3%)와 사업주(56.4%)가 모두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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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원안 추진의 포기를 공언한 셈이다. 이에 대해 이성희 노동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3월에 발표했던 개편안을 폐기하는 방향보다는 기존 방향을 유지하되 노사의 수용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도출하려는 것"이라면서 "설문조사 결과에도 나타났듯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자는 의견에 다수가 동의했다"고 말했다. 주 최대 69시간까지 가능했던 원안은 철회하지만, 근로시간 유연화 자체는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다만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단계에 머물렀다. 노동부는 앞으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업종·직종을 대상으로 노·사·정 간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노사 모두 주당 상한 근로시간을 설정하거나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을 도입하는 방안 등도 검토한다. 어떤 업종·직종을 개편 대상으로 삼을지, 적용 시점은 언제인지 등에 대한 내용은 제시하지 않았다. 단순한 '차후 논의' 수준에 그친 것이다.다행히 이날 대통령 직속 노·사·정 대화기구인 한국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유일한 노동계 참여 인사였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지난 6월 경사노위 불참 선언 이후 전격 사회적 대화 복귀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브리핑 때까지도 노·사·정 간 소통창구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노·사·정의 소통을 통해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는 정부 발표에 현실성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노동부는 뚜렷한 해결 방안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였다. 이 차관은 관련 질문에 대해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이번 기회에 노·사·정 대화에 노사 단체가 적극 참여할 것을 정중하게 요청하고 기대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만일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재참여하지 않아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지 않을 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노동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차관은 "가정법으로 지금 말할 수는 없다"면서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한국노총에) 사회적 대화를 요청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노·사·정이 모두 대화에 응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렇게 지금 요청을 하고 있다"고 짧게 답했다.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들은 정부의 설문조사 결과 발표 이후 낸 입장문에서 "3월에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안에도 못 미치는 내용이다.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하지 않아 경영계로선 아쉬울 따름"이라면서 "정부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 등 제도 개선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지연될 시 기업 경쟁력 저하와 일자리 창출의 기반 약화가 우려되므로 이른 시일 내에 개선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