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불안 지속에 금리 동결 '고육지책'저성장 경고등… 재정 정책 역할 더 커져추경 불가피론 확산… "내수·고용 안정 시급"
  •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새해 첫 금리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0%로 동결하면서 하방 압력을 크게 받고 있는 경기가 더 침체할 거란 관측이다. 한국 경제가 1%대 '저성장 쇼크'에 직면한 상황에서 당장 금리 인하가 어렵다면 재정 확대를 통해서라도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전날 기준금리를 3%로 동결한 것은 계엄·탄핵 쇼크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이 겹치면서 최근 환율 불안이 극심해지자 예상을 깬 결정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환율 불안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미국 달러당 원화 환율은 최근 외환위기급에 이르는 1450원을 웃돈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물가 상승은 투자와 고용에도 악재라는 점에서 환율 불안은 방치할 수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기 상황만 보면 금리를 내리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라면서도 환율 변수가 금리 동결의 주요인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계엄으로 30원 정도 올랐다는데 외환 시장 안정을 위해 국정 안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정하며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도 한은의 동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 이후 미국 내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미 국채 금리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도 주된 변수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리를 섣불리 인하하면 외국 자본 유출과 원화 약세가 심화될 우려가 커질 수 있다.  경기 '부양' 보단 '안정'에 좀 더 방점을 두는 한은으로서는 이번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고육지책'일 수밖에 없다.  

    ◇ "조기 재정 집행만으론 한계… 추경은 빨리 편성돼야"

    설령 금리를 인하했더라도 지금 같은 저성장 국면에서 금리 정책만으로는 경기 부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2024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대부분의 기관에서 1%대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1.9%, 국제 투자은행들은 평균 1.7%를 제시했으며, JP모건은 최근 1.3%까지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이같은 분석은 한국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에 빠져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재정의 역할이 절실해졌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올해 정부 예산이 여야의 정쟁 끝에 감액예산으로 출발한 만큼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으로 보강이 불가피해졌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창용 총재도 전날 "추경은 빨리 편성되어야 하며 15조~20조 원 규모가 적절하다"며 "일시적으로 경기에 대응하기 위해 단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차별적 지원보다는 자영업자 등을 타깃해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리 동결로 경기 부양을 위한 여지가 줄어든 만큼 재정 정책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내수 부진과 함께 고용 시장에서도 건설 및 제조업 취업자 수가 급감하면서 경제 전반의 활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상반기에 예산의 70%를 조기 집행해 내수를 진작하겠다고 밝혔으나 전문가들은 조기 집행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 인하만으로는 경기를 단시간에 부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내년 초에 추경을 통해서 재정지출을 늘리는 대책을 빠르게 세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 추경에 건설 투자, 골목상권 지원 등 담아야… 민생법안 해결도

    만약 추경이 실행된다면 건설 투자, 골목상권 지원, 중소기업 세액 공제 확대 등의 방안을 포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 진작 효과가 그 무엇보다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국회에 막힌 각종 민생 법안들도 통과시켜야 부양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정치적 이해를 떠나 추경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상존한다. 경기·고용 침체가 발등의 불이 된 상황에서 경기 회복의 마중물 삼을 추경 편성을 지체하게 된다면 경기를 살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은은 지난 1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추경 등 주요 경제정책을 조속히 여야가 합의해서 추진함으로써 대외에 우리 경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모습을 가급적 빨리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여야 간 대립을 넘어 협력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 등은 복합위기에 처한 한국을 향해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정화에 집중할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