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경기 회복 위한 2차 추경, 인플레 '딜레마' 중동 분쟁 격화에 물가 상승 압력 빚어질 우려감 금리 인하·집값 상승세, 물가 불안 자극할 가능성
  • ▲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최근 잠잠했던 물가가 가공식품과 외식비를 중심으로 눈에 띄게 오르면서 비상이다. 추가경정예산에 따른 시중 유동성 확대, 통화정책 완화, 중동 위기 격화로 급등하는 국제유가로 물가 자극할 일이 줄을 잇는 상황이라 물가 안정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은 새정부의 물가 관리 역량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통계청의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6.27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 올랐다. 5개월 만에 상승률이 1%대로 내려왔지만,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다. 

    축산물(6.2%), 수산물(6.0%). 가공식품(4.1%), 외식물가(3.2%)의 상승률이 두드러졌다. 특히 가공식품과 외식의 소비자물가 상승 기여도는 각각 0.35%포인트(P), 0.46%P로 두 부문을 합하면 0.81%P에 달한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1.9% 중 절반 가까이가 가공식품과 외식이 견인한 셈이다. 

    최근 식품을 포함한 전반적인 생활비 상승에 국민들의 부담감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실시한 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60.1%)이 새 정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물가 안정책을 꼽았다.

    이같은 체감물가 부담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구매력 평가를 고려한 물가 수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식료품과 비주류 음료 가격은 2023년 기준 OECD 평균보다 47% 높았다. 이는 OECD 38개국 중 스위스(16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이에 정부가 먹거리 물가 안정을 위해 6~7월 농·축·수산물에 46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할인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고등어와 계란 가공품 등 가격 상승이 뚜렷한 품목에는 할당관세를 확대 적용해 부담을 덜어준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유류세·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도 연장했다.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물가 안정 대책이다.

    이같은 대책에도 물가 불안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20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이 본격적으로 집행되면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에서 "경기 회복과 소비 진작을 위해 추경을 속도감 있게 편성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추경을 통한 경기 활성화와 물가 억제는 동시에 이루기 어려운 과제인 만큼 물가 관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불거진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급 확대 없는 재정 투입은 단기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는데, 내수 경기를 살리겠다고 돈을 풀게 되면 물가를 밀어올릴 수 있어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는 무역 의존도가 75%에 달할 정도로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식품 수입 확대, 수입품 관세 인하 등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 ▲ 정부가 오는 30일 종료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2개월 더 연장하기로 한 1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되어 있다.ⓒ뉴시스
    ▲ 정부가 오는 30일 종료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2개월 더 연장하기로 한 16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되어 있다.ⓒ뉴시스
    이란과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로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면서 수출입 물가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물가 불안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한은의 '2025년 5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는 134.63으로 전월 보다 3.7% 떨어졌다. 4개월 연속 하락이자 1년 6개월 만에 최대 낙폭이다. 수입물가 하락세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원유 등 광산품 등이 크게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까지 하락한 영향이 컸다. 하지만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향후 유가 등에 영향을 줄 우려가 나온다. 

    iM증권 리서치본부는 "중동의 지정학적 갈등 지속될 시 관세에 이어 유가 급등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마진 압박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특히 식품 기업들은 관세 및 유가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점도 물가 불안 요소로 꼽힌다. 금리 인하가 물가와 가계대출,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경계요인이다. 

    한국은행이 공개한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들은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경기 하방압력을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으나 주택가격을 자극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부추길 가능성을 경계했다.  

    현행 물가 지수에 주거비 항목이 과소 반영돼 체감 물가와 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국내 물가는 누적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오른게 임대료로, 집값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며 "물가 통계에 자가주거비가 포함되지 않고 있어 체감물가와 통계 간 괴리가 발생하는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물가 상승의 원인은 부동산, 인건비, 기후변화, 유통구조 등 업종별로 다르지만 공통된 큰 축은 부동산과 인건비"라며 "물가를 체계적으로 안정시키려면 근본적 원인인 부동산 시장 안정부터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식품 기업들의 낮은 영업이익률이 가격 인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자동화·규모화 지원 등 총비용을 줄여줄 수 있는 방향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며 "긴급 상황 발생 시 관세 대응 조치가 자동으로 발동될 수 있는 유연한 대응 체계 마련과 함께 저율관세할당(TRQ) 구조 개선, 상시 무관세 품목 확대 등도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김 실장은 "원재료 가격뿐 아니라 환율과 운송비까지 포함한 3대 변수를 동시에 모니터링하고,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급등하면 유연하고 신속한 정부 대응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