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세 협상 진척 없자 '줄 건 주고 실익 챙긴다'여한구 "전략적인 판단 해야" … 농축산물 개방 시사한우협회 "또 희생양? 전국의 농축산인들이 분노" 반발정부 관계자 "업계 피해 안 되도록 최선, 공청회 등 검토"
  • ▲ 최근 미국산 소고기 가격이 평년보다 30% 이상 급등한 것으로 알려진 2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소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 최근 미국산 소고기 가격이 평년보다 30% 이상 급등한 것으로 알려진 29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소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 완화를 비롯한 농축산물 시장 개방이 정부의 대미 관세 협상 카드로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8월 1일 상호관세 부과를 앞두고 있지만 그간 수차례에 걸친 한미 고위급 통상 협의에서 진척이 없자 정부가 내어 줄 건 내어주고 실익을 챙긴다는 현실적인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08년 광우병 사태를 겪은 미국산 소고기는 물론, 농축산물 개방 문제는 민감한 문제여서 정부가 관련 업계를 어떻게 설득시킬 지 주목된다. 

    15일 산업통상자원부 등 통상당국은 미국이 부과한 상호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농축산물 시장을 일부 개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기조는 지난 4일(현지시간)부터 10일까지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한미 관세 협상을 진행한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에게서 관측됐다.

    여 본부장은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농산물도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면서 "분명 우리가 지켜야 할 부분이 있지만 또 우리의 제도 개선이나 경쟁력 강화, 어떻게 보면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도 유연하게 볼 부분은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민감한 부분이어서 지킬 것은 지키되 협상 전체의 틀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서 "농축산물은 미국뿐 아니라 동남아 등 어떤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를 진행해도 고통스럽지 않는 부분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 확대를 검토 중이라는 사실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 시간)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관세서한'을 통해 이달 9일로 예정됐던 한국산 수입제품에 대한 25%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8월 1일로 3주간 연기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비관세장벽 철회를 요구했다.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대표적인 항목이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금지 해제'다.

    한국은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지금까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 외에도 미국산 소고기에 월령 제한 규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정도다.
  • ▲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통상 협상을 위해 출국했던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0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07.10.ⓒ뉴시스
    ▲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통상 협상을 위해 출국했던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0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07.10.ⓒ뉴시스
    정부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한우협회가 즉각 행동에 나섰다.

    전국한우협회는 15일 '이 정부는 또다시 성명을 통해 농축산물을 희생양 삼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정부가 농축산물 수입장벽을 추가 완화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농축산업의 고통과 희생을 당연한 전제로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농축산업의 고통과 희생 속에 타 산업들은 성장했지만 농축산업은 퇴보해 갔다"며 "각국과의 통상협상에서 한우산업은 매번 희생양만 되어 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우협회는 여 본부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전국의 농축산인들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한우협회는 지난달 30일 열린 '한미 관세 조치 협의 관련 공청회'에서도 반대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이에 대해 정부 핵심 관계자는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농업 부문은 민감하기 때문에 미국 측에도 그 민감성을 계속 얘기하고 있다"며 "우리 업계에 피해가 안 되도록 우리 나름대로, 국가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청회 등을 통해 한우협회 의견을 수렴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일본 등 관세 협상을 벌이는 국가에 쌀을 비롯한 농산물 시장 개방을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로선 쌀 시장 개방은 넘어선 안되는 일종의 '레드라인'으로 보고 있지만 통상당국은 미국산 사과 수입 개방, 감자 등 유전자변형작물(LMO) 수입 허용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선 미국산 사과의 경우 검역 과정에서 병해충 확산 우려가 해소되지 않아 수입 개방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LMO 감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체 안전성 검사만 남아 수입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밖에도 구글맵 관련 고정밀 지도 위치정보 데이터 반출 허가 문제도 관세 협상 주요 의제로 거론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개별 품목에 대한 협상 진행 상황은 전략 노출 문제 등으로 확인해 드리기 어렵다"면서도 "전체적인 틀 내에서 협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