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참사 "조류 충돌 후 조종사가 정상작동 엔진 꺼" 결론유족들 "죽은 새와 조종사에 책임" 엉터리 조사라며 반발ICAO, CVR 외부공개 금지 … 사조위 "국제규정 맞춰야"
  • ▲ 제주항공 사고기 엔진 ⓒ연합뉴스
    ▲ 제주항공 사고기 엔진 ⓒ연합뉴스
    지난해 12월29일 발생한 무안공항 참사 원인에 대해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이후 조종사가 정상 작동하는 엔진을 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유족들은 조류충돌 및 관제탑과의 교신내용, 엔진 데이터 등 핵심 내용은 빠진 채 '엔진 결함은 없었다'는 내용만 앞세운 엉터리 조사결과라고 반발했다.

    21일 국토부에 따르면 사조위는 지난 19일 오후 3시 전남 무안공항에서 엔진 합동 정밀조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유족들의 반발로 취소됐다. 

    앞서 사조위는 현장에서 수거한 엔진 2개를 5월 엔진 제작사인 프랑스 CFM 인터내셔널에 보냈고,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와 프랑스 사고 조사 당국 등이 참여한 조사를 진행했다. 

    사조위가 유가족에게 공유한 사고 중간결과 보고서에는 "조종사가 조류 충돌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오른쪽 엔진을 꺼야 했는데, 작동 중이던 왼쪽 엔진을 잘못 껐다. 그 결과, 왼쪽 엔진이 출력을 완전히 잃으며 랜딩기어(착륙 바퀴)도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조종석 녹음 장치(CVR)에는 "2번 엔진(오른쪽 엔진)을 끄자"는 내용이 녹음돼 있는데, 비행 데이터 기록 장치(FDR)에는 1번 엔진(왼쪽 엔진)이 꺼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조종사가 비상 절차를 수행하던 중 고장난 엔진 대신 멀쩡한 엔진을 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유가족들은 이런 내용의 브리핑을 들은 후 "죽은 새와 조종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이어 유가족 측은 사조위가 소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블랙박스 음성기록장치(CVR), 비행기록장치(FDR), 관제 기록을 비롯해 프랑스에서 실시한 엔진 정밀조사 보고서 등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으나 사조위가 국제 규정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김유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엔진 손상 부위를 비롯해 여러 근거를 첨부해 유가족을 납득시켜야 하는데 결론으로만 설명하고 근거 자료는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며 "세계적인 전문가가 조사한 보고서를 공개해 달라고 하는데 (정부는) 사고 결과만 통보했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에 따르면 사조위 측은 4월 관제탑과 조종사 간 교신 내용 일부를 공개할 때도 사조위 단장이 내용을 낭독한 뒤 별도 질문 등을 받지 않았다.

    제주항공 조종사노동조합도 전날 성명서를 내고 "항철위의 일방적인 발표와 이를 여과 없이 인용한 언론 보도에 강력히 분노하며, 조종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악의적 프레임 씌우기를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특히 "사조위가 국토부 산하 조직으로 편제돼 있어 사고 규모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 둔덕 문제에 대해서는 긴급 안전권고 등의 경고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사고조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조위 측은 국제 규정에 따라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조종실 음성기록이 담긴 CVR을 외부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사조위는 내년 4월 최종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 6월 중 최종 결과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라 항공사와 국토부 등 책임 소재가 갈릴 수 있는 만큼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ICAO 규정을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확실한 입장과 설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