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된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여론조사에 부치는 무책임 행정삼성‧SK 960조 투자한 용인 반도체 산단 "지방 이전" 황당 발언알고보니 용인 산단에 예산 늘려 물길 터주는 고시에 직접 서명뒷 수습은 기후부 공무원들 … 언제 시한폭탄 터지나 연일 노심초사
  •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 ⓒ뉴시스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 ⓒ뉴시스
    '전성무의 정책 인싸이드'는 세종 정부부처를 출입하는 기자가 사람과 주요 정책에 대한 깊이있고 통찰력 있는 분석 기사를 제공합니다. '인싸이드'는 인싸(inside)와 insight(통찰력)의 합성어입니다. 국민 생활에 밀접한 현안을 기자의 시각으로 풀어내 독자에게 진실을 전달하겠습니다. [편집자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요즘 세종 관가와 에너지 업계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으로 여겨진다.

    "신규 원전은 여론조사로 결정하겠다", "용인 반도체 산단을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 등 그의 발언으로 국가 운명을 좌우할 에너지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기후부와 관련 업계는 우왕좌왕하며 대혼란에 빠진다. 

    문제는 김 장관의 발언이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방송 등에 출연해 즉흥적으로 '툭' 던져놓는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김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커지면 기후부 해당 부서 실무진들이 부랴부랴 수습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그가 친 '사고'를 수습하고 있다.

    김 장관은 노원구청장 시절이던 2017년 "탈원전 정책 기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원전은 더는 짓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2024년에는 언론 인터뷰에서 "원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은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고 대한민국 산업과 경제를 망치는 길"이라고도 했다.

    이 때문에 김 장관은 이재명 정부에서 대표적인 탈원전론자로 통한다. 그는 지난해 기후부 장관 취임 이후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SMR(소형모듈원전) 건설 계획을 국민 여론조사와 토론회에 부치며 보류시켰다.

    신규 원전 건설은 지난해 2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확정된 사안이다. 기후부가 리얼미터와 한국갤럽에 의뢰해 약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신규 원전 건설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약 65%로 나왔다. '원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85%에 달했다. 결국 정책 혼선만 초래하고 원전 건설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은 취임 직후 재생에너지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원전은 홀대하는 모습을 보여 우려를 낳았다. 그러다 원전 없이는 AI(인공지능) 산업 확대에 따른 미래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을 뒤늦게 직시하고 출구전략으로 여론조사와 토론회를 제안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에너지 주무부처의 장관이 국가 에너지정책의 핵심인 원전 건설 여부를 여론조사에 맡긴 것은 에너지의 정치화를 넘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무부처 장관이라면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국익을 위한 정책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일이 최근에 또 벌어졌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지원 계획을 골자로 하는 고시에 자신이 직접 서명하고도 이를 뒤집는 발언을 한 것이다. 

    김 장관은 지난달 5일 '국가수도(水道)기본계획 부분 변경' 고시에 직접 서명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당초 계획보다 4543억원 증액된 총 2조2143억원을 투입해 기존보다 30만8000㎥ 증가한 107만2000㎥ 규모 용수 공급 시설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한 수원으로는 소양강댐, 충주댐, 화천댐이 동원된다.

    용인 반도체 산단은 삼성전자(360조원)와 SK하이닉스(600조원)가 약 960조원 규모를 투자해 건설을 추진 중이다. 올해 착공해 2031년 완공할 계획이다. 그런데 김 장관은 3주 뒤인 지난달 2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입주하면 두 기업이 쓸 전기가 원전 15기 분량"이라며 "전기가 많은 쪽(지방)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예산을 대폭 늘려 용인 반도체 산단에 물을 공급해주겠다는 고시에 서명해 놓고는 느닷없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반도체 산단을 호남으로 이전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대혼란이 벌어졌고,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은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업들의 배치 문제는 정치권에서 부탁한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교통정리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앞서 청와대도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일축했다.

    기후부도 "김 장관의 발언 취지가 잘못 전달된 측면이 있다"며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지난 기후부 장관의 용인 산단 지방이전을 고민하고 있다는 발언의 취지는 지역별 전력수급 여건 차이로 인한 대규모 송전망 건설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지산지소형 전력망 구축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력과 용수를 담당하는 주무장관으로서의 고민을 설명한 것"이었다고 했다.

    전국에 전력망을 구축하는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도 김 장관이 중간에 끼어들면서 표류될 위기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시급한 하남 동서울 변전소 증설 사업은 주민 반대로 하남시가 인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장기간 멈춰있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0월 이 사업을 국가 기간 전력망으로 지정하고, 인허가 절차를 60일로 단축했다. 하남시 반대에도 사업을 추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김 장관은 이 결정을 내린 위원회의 정부 측 위원이다. 

    그런데 김 장관은 최근 하남시 주민들과 간담회을 가진 뒤 한전에 "주민들이 제안한 대체 부지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한전은 인허가 신청을 미루고 주민 의견을 수렴 중이다. 

    이에 대해 기후부는 "동서울 변환소 건설 예정지 인근 주민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제안에 따라 대체부지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진정성 있는 소통과 검토를 기반으로 주민 수용성에 기반한 전력망을 구축하여야 하는 정부의 당연한 책무"라고 주장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꼬일대로 꼬였다는 말도 나온다. 기후부는 지난 5일부터 '연간 저공해 및 무공해자동차 보급 목표 고시'를 시행했다. 최근 5년 내 신차의 50%를 전기·수소차 같은 친환경차로 채우지 못할 경우 대당 150만~300만원의 기여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는 전기차 보급에 앞장섰던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내연차 퇴출에 속도 조절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만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터져 나왔다.

    기후부는 또 산업계에서 "48% 감축도 어렵다"는 호소에도,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53~61% 감축한다는 계획을 일방적으로 밀어 붙였다. 그러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드는 비용 추계와 재정투자 계획은 공개하지 않아 졸속 논란이 일었다. 온실가스 2위 배출국인 미국은 지난 7일(현지시간)엔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탈퇴했다.

    김 장관은 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현재의 3배인 100GW까지 늘려야 한다고 했지만, 최근 만난 에너지 전문가들은 "국토를 태양광으로 도배할 생각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 에너지 정책이 정치에 오염되면 국익을 위한 합리적인 결정은 뒤로 밀리게 된다. 그리고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피해는 모두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에너지 업계와 기업, 기후부 공무원들은 김 장관이 다음엔 어떤 말을 할 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연일 노심초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