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싸움 더 이상 못 두고 봐' … 주주 반발 확산이사회 감시 기능 강화 요구 … 내부거래위 재설치도진흙탕 주총 예고 … 투명한 지배구조 개편 요구 커져
  • ▲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왼쪽)과 아들인 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DB그룹
    ▲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왼쪽)과 아들인 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DB그룹
    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의 "부친에 맞설 생각이 없다"는 입장문이 던진 파장은 생각보다 길게 가고 있다. 창업주 실권과 오너가 갈등에서 그 불씨가 주주총회로 옮겨붙었다는 게 쟁점이다. DB손해보험은 20일, DB하이텍은 24일 정기주주총회를 연다. 이제 시장의 질문은 누가 집안의 승자인가가 아니다. 상장사가 왜 아직도 총수 1인의 질서 유지를 위해 흔들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번 사안을 더 민감하게 만드는 것은 DB 오너 리스크가 하루이틀 쌓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김준기 창업회장은 2017년 성폭력 의혹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2021년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김 창업회장은 "이제 80세를 바라보는 78세 병든 노인"이라며 선처를 구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진정으로 반성하는지 의문"이라며 1심과 동일한 형을 유지했다. 우려대로 김 회장은 같은 해 계열사 미등기임원으로 복귀하면서 창업주 영향력을 재차 과시했다. 시장이 이번 갈등설을 단순한 부자 불화가 아니라 지배구조 불안으로 받아들이는 배경이다.

    더 뼈아픈 대목은 두 회사가 실적 부진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DB손보는 2025년 당기순이익 1조5349억원을 기록했고, 중장기 자본정책상 K-ICS 비율을 200%~220% 구간에서 관리하며 주주환원율을 35%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DB하이텍 역시 지난해 매출 1조3972억원, 영업이익 2773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24%, 45% 늘었다. 돈을 못 버는 회사가 아니라, 돈을 벌고도 지배구조 때문에 할인받는 회사라는 점에서 지금의 DB는 더 민감하다.

    ◇행동주의가 파고든 곳은 실적이 아니라 이사회다

    가장 먼저 전면에 선 곳은 DB손보다. 얼라인파트너스는 공개주주서한을 통해 내부거래위원회 재설치와 감사위원이 되는 독립이사 2인 선임을 주주제안했다. 회사가 잘 벌고도 저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지배주주 중심의 거버넌스와 비효율적 자본배치에서 찾은 것이다. 실제로 DB손보 20일 주총 안건에도 감사위원 분리선출, 독립이사 관련 정관 정비, 내부거래위원회 신설이 포함됐다. 말 그대로 배당 논쟁이 아니라 이사회를 누가 감시할 것인가의 문제로 번진 셈이다. 

    행동주의가 겨눈 지점은 단순한 명분이 아니다. 얼라인은 2018년부터 2025년 3분기까지 DB그룹 금융계열사가 DB Inc와 DB FIS에 지급한 내부거래 대금이 6020억원, 상표권 사용료가 2203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계열사에서 벌어들인 이익이 주주환원보다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 쪽으로 흘러간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DB손보도 주총 설명자료에서 2월 27일 이사회가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내부거래위원회 신설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를 선제적 쇄신이라기보다 행동주의 압박에 대한 방어적 대응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더구나 DB손보는 이미 금융당국으로부터 이사회 운영과 사외이사 역할의 실효성 문제로 경영유의 조치를 받은 상태다. 이런 회사가 미국 보험사 포테그라를 약2조3000억원에 인수하는 대형 거래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 더 크다. 보험처럼 신뢰와 내부통제가 핵심인 업종에서 이사회 독립성 논란은 단순 이미지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 능력에 대한 의문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DB하이텍, 오너 리스크가 성장전략까지 흔드는 국면

    DB하이텍 주총 안건은 더 노골적이다. 회사 홈페이지에 공개된 제73기 정기주주총회 안건을 보면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이상목 선임 주주제안,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 삭제, 공정거래 특별 조사 신설, 내부거래위원회 신설, 위장 계열사 부당 거래 진상 규명을 위한 법원검사인 선임 신청 권고까지 상정됐다. 소액주주 불만이 단순 성명서 수준을 넘어 정관과 이사회 구조를 직접 바꾸겠다는 단계로 올라온 것이다.

    이 장면이 더 난처한 이유는 DB하이텍의 본업 실적이 오히려 개선 흐름에 있다는 점이다. 회사는 지난해 전력반도체 수요 증가 등에 힘입어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큰 폭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원래라면 성장 전략과 투자 방향이 시장의 중심 의제가 돼야 할 시점인데 정작 주총의 핵심 안건은 감사위원 후보와 공정거래 특별조사, 내부거래위원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잘 버는 반도체 회사가 기술이나 증설보다 오너 리스크와 내부통제 문제로 먼저 평가받는 장면 자체가 DB식 지배구조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 ▲ ⓒ각 사
    ▲ ⓒ각 사
    ◇문제의 본질은 집안싸움이 아니라 상장사 운영 방식

    DB그룹은 줄곧 갈등설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시장은 이제 그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너가 갈등이 실제 전면전으로 번지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이 상장사의 이사회와 자본배분, 내부거래, 주주환원에 어떤 흔적을 남겼느냐다. DB손보는 올해 핵심 과제로 주주환원 확대와 글로벌 사업 추진을 함께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외부 주주와 감독당국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독립적 이사회와 투명한 자본정책이다.

    업계에서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 회사들이 여전히 총수 1인의 판단과 의중에 지나치게 종속돼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시장은 실적이 좋다고 모든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특히 보험처럼 신뢰가 자산인 업종은 더 그렇다. 해명은 단기 방어가 될 수 있어도, 구조 개편 없는 해명은 결국 더 큰 불신을 부른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3월 주총은 김남호 명예회장의 반성문이 남긴 후폭풍을 넘어 DB그룹이 상장사다운 통제를 회복할 의지가 있는지를 묻는 심판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회사가 구조를 손대지 않은 채 해명으로만 버틴다면 시장 할인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