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확대·장기화에 국제 유가 또 급등나프타는 수출 불가, 하위 석유 제품은 수출 가능정부 "석화 제품도 깊은 고민 중, 종합적으로 판단"
  • ▲ 경기 평택항. ⓒ뉴시스
    ▲ 경기 평택항. ⓒ뉴시스
    정부가 나프타에 한정해 시행한 수출제한 등 수급안정 조치가 석유화학 관련 품목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동 전쟁 확대 및 장기화에 따라 국제 유가가 계속 치솟으며 수급 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료인 나프타 수출은 제한하면서도 이를 활용해 생산되는 에틸렌, 합성수지 등 하위 제품은 여전히 수출이 가능한 구조여서, 공급망 왜곡을 차단하기 위한 추가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30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지난 27일 0시를 기해 나프타에 대해 수출제한과 내수 우선 공급을 골자로 한 수급안정 조치를 시행한 뒤 이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원유와 나프타 수급 불확실성이 커지자 선제적으로 산업 핵심 원료를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나프타는 반도체, 자동차, 섬유, 플라스틱 등 거의 모든 제조업의 출발점이 되는 기초 원료로, 국내 수요의 약 4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동산 비중이 77%에 달해 지정학적 충격에 취약한 구조다.

    문제는 이번 조치가 '나프타 단일 품목'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나프타를 원료로 생산되는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과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합성수지는 여전히 수출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나프타를 국내에 묶어두더라도, 이를 가공한 제품 형태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우회 수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나프타를 제한하면 당연히 크래킹을 통해 생산되는 하위 제품으로 수익을 보전하려는 유인이 커진다"며 "결과적으로 정부가 의도한 내수 공급 안정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석유화학 산업은 '원유→나프타→기초유분→합성수지→완제품'으로 이어지는 연쇄 구조를 갖고 있어 특정 단계만 통제할 경우 다른 단계로 물량이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하기 쉽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 때문에 정부가 조만간 규제 대상을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에틸렌, 벤젠, 자일렌 등 기초 유분과 합성수지 제품군이 1차적인 검토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품목은 국내 산업 전반에 공급되는 동시에 수출 비중도 높은 만큼, 통제 시 파급력이 크다.

    정책적으로도 확대 명분은 충분하다. 이번 중동 전쟁에 예멘의 후티 반군까지 참전을 선언하면서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해협에 이어 홍해까지 봉쇄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 국제 유가가 급등한 상황이다.

    29일(현지 시각)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은 3.50% 급등한 배럴당 103.10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브렌트유 선물도 3.05% 급등한 배럴당 116.1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홍해의 세계 원유 수송 비율은 약 12%로, 20%인 호르무즈해협에 비해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정부는 나프타 수급 안정 조치를 통해 매점매석 금지, 재고 관리, 생산·출하 조정 등 전방위 대응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원료 단계만 관리할 경우 정책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기준을 하위 제품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동일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지난 27일 한 플라스틱 제조업체와 가진 간담회에서 "정부 차원에서 나프타는 수출이 금지됐는데, 석화 제품도 굉장히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포장지나 용기가 전달 경로가 굉장히 복잡하게 돼 있고 제품 구조와 종류도 굉장히 다양해서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나프타로 에틸렌, 합성수지 등을 만드는데 그것들은 수출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국내로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박 실장은 "빠르게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다만 수출 제한 확대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수출 비중이 높은 대표적인 산업으로, 제품 수출까지 막힐 경우 기업 실적 악화와 설비 가동률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미 글로벌 공급과잉과 수요 둔화로 석화 업계 구조개편이 진행 중이고, 이번 중동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이 전쟁 전 80% 수준에서 50~60%까지 떨어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 규제가 더해질 경우 석화 업계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상 마찰 가능성도 변수다. 특정 품목에 대한 수출 제한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과의 충돌 소지가 있어, 조치 범위와 방식에 따라 외교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정부의 고민이다. 

    이와 관련 김민석 국무총리는 29일 범부처 비상경제본부 첫 회의에서 "물품 수급 위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국민 부담과 불편은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 될 것"이라며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에 대한 대책을 면밀히 수립하고 적기에 이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관계 부처에는 "중동발 물품 수급 차질이 국민 생활 필수 품목에 미치는 영향을 시나리오별로 분석하고 단계별 대응 방안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