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동 전쟁 장기화에 러시아산 원유 도입 적극 검토LG화학이 확보한 러시아산 나프타 2만7000t 30일 도착 정부, 美서 '달러 외 결제 가능', '2차 제제 없다' 확인우크라 돕는 韓…러시아, 에너지와 외교·안보 연계 변수
  • ▲ 중동사태 여파로 석유화확 원료인 나프타 재고가 급감하면서 포장 용기 및 종량제 봉투 등 1회용품 포장재 품귀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나프타는 석유화학의 핵심 원료로 플라스틱과 타이어 등 주요 공산품의 기초가 된다. 사진은 27일 경기 광주시 한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 모습. 2026.03.27. ⓒ뉴시스
    ▲ 중동사태 여파로 석유화확 원료인 나프타 재고가 급감하면서 포장 용기 및 종량제 봉투 등 1회용품 포장재 품귀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나프타는 석유화학의 핵심 원료로 플라스틱과 타이어 등 주요 공산품의 기초가 된다. 사진은 27일 경기 광주시 한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 모습. 2026.03.27. ⓒ뉴시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는 가운데 정부가 대체 원유 확보 방안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도입한다. 고유가와 원료 수급 불안이 동시에 심화되면서 석유와 연관된 산업 전반의 생산 차질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원유가 본격 도입되면 4월 말~5월 초로 예상되는 석화 업계 '셧다운'을 일정 부분 늦출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외교적인 리스크가 부담 요인이었지만, 미국이 한 달간 러시아산 수출 통제를 완화하면서 일단 숨통이 트인 것이다.

    31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를 중심으로 러시아산 원유 및 나프타 도입 가능성을 포함한 다각적인 수급 안정 대책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한 달간 한시적으로 완화하면서 달러 외 통화를 활용한 결제 가능성이 열리자, 실질적인 도입 여건이 일부 확보됐다. 

    실제로 LG화학이 정부와의 공조를 통해 확보한 러시아산 나프타 2만7000톤(t)이 30일 국내에 도착했다. 해당 물량은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로 입항했다.

    이번에 도입된 러시아산 나프타는 국내 월평균 나프타 사용량(약 400만t)에 비하면 크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약 3∼4일가량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러시아산 나프타 도입은 정부와 민간이 적극 공조한 결과물이다. 미국이 한 달간 러시아산 수출 통제를 해제하면서 원유 도입 길이 열렸지만, 금융 결제와 2차 제재 문제가 명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산업부는 재정경제부를 통해 미국 재무부로부터 '달러화 외에 루블화(러시아) 등으로 결제가 가능하며 이에 따른 2차 제재도 없다'는 점을 확인받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다른 기업들도 러시아산 원유와 나프타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다. 

    러시아산 원유는 가격 경쟁력과 물량 확보 측면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공급원으로 꼽힌다. 서방의 제재 이후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아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데다, 기존에 한국 정유·석유화학 업계가 일정 부분 활용해온 공급선이라는 점에서 기술적·물류적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 및 나프타 확보는 현재 가장 큰 리스크로 떠오른 '나프타 셧다운'을 늦추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프타는 에틸렌, 합성수지 등 주요 석유화학 제품의 핵심 원료로, 공급이 끊길 경우 생산 라인 전반이 멈출 수 있는 구조다.

    현재 국내 나프타 공급 구조를 보면 약 55%는 국내 정유사가 생산하고, 나머지 45%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이 수입 물량 가운데 77%가 중동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정유사가 들여오는 원유의 70%도 중동산이다. 중동 지역 정세가 불안정해질 경우 즉각적인 공급 차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 사례를 보면 러시아산의 역할은 적지 않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인 2021년 기준 한국의 나프타 수입 가운데 러시아산 비중은 23.4%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후 러-우 전쟁이 터지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러시아산을 중동산으로 돌리며 공급 구조를 재편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중동 전쟁이 터지자 다시 러시아산 원유와 나프타 도입이 절실해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러시아산 도입이 현실화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수급 안정에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나프타 수출 제한, 내수 우선 공급 등 정부의 기존 조치와 병행될 경우 석유화학 업계의 붕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러시아가 원유 도입 문제를 외교-안보 문제와 연계 할 경우 상당한 부담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2023년 7월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비살상 군수 물자 지원과 전후 재건 지원을 약속했다.

    최근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로부터 '우크라이나 우선 지원 목록(PURL)'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PURL은 나토가 2025년 7월 신설한 우크라이나 지원 체계디.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장비 목록을 제시하면 나토 회원국과 파트너국이 그 대금을 미국에 제공하고 미국이 해당 장비를 우크라에 인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현재 대부분의 나토 회원국과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 중이며, 일본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한국이 PURL에 참여하면 보복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정부는 "다양한 지원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러-우 전쟁 관련 문제에 대해 유지해왔던 외교적인 입장보다는 국가 생존이 걸린 에너지 확보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이와 관련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9일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과 관련해 "미국이 한 달간 러시아산 수출 통제 풀어놓은 상황"이라며 "지금 검토 중이고 일부 협의도 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산 원유와 나프타 수입 물량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민간 기업들과 협력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