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만기물량 2조원 육박경기둔화 더해 투심위축 우려도
  • ▲ 자료사진. 기사와 무관. 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 ⓒ한국전력공사
    ▲ 자료사진. 기사와 무관. UAE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 ⓒ한국전력공사


    건설사들의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금리 인상, 부동산 규제 강화, 입주물량 급증 등 비우호적인 업황에다 해외 사업장의 추가 부실 우려가 재발하면서다. 전년대비 20%가량 늘어난 상반기 만기도래 물량 상환이 쉽지 않아 보인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들은 연내 총 2조2900억원 규모의 공·사모 회사채를 상환해야 한다. 상반기 9200억원, 하반기 1조3700억원이 만기가 도래한다. 삼성물산이 9700억원으로 가장 많고 이어 △대림산업 3350억원 △SK건설 3150억원 △현대건설 1900억원 △롯데건설 1700억원 등 순이다.

    연초만 하더라도 대형건설사 회사채의 훈풍 기류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몇년간 이어진 부동산 경기 활성화로 주택사업이 호조를 보였고, 해외 부실사업장 회계처리가 차례로 마무리됐거나 준공을 앞둬 추가손실 우려도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지난해 AA급과 A급 구분 없이 대체로 자금조달에 성공했으며 올해 1분기 역시 기관투자자들을 기반으로 회사채 시장이 활황을 기록하는 등 수급도 우호적이었다.

    4월11일 1000억원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있는 현대건설은 최근 회사채시장에서 오버부킹(초과 청약)에 성공했다. 총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지난 1일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총 4배가 넘는 6400억원이 몰렸다. 이에 현대건설은 발행액을 늘려 3년물 1200억원, 5년물 1800억원 등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또 이수건설은 지난달 30일 총 99억원 규모의 회사채(1년6개월물)를 발행했으며 한화건설도 지난 1일 300억원어치 회사채(1년물)를 찍어냈다. 이수건설과 한화건설은 올해 각각 500억원·27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하지만 대우건설 매각 무산 여파로 건설업 전반에 깔려있던 해외 부실사업장 손실 우려가 다시 불거졌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4분기 모로코 사업장에서 발생한 손실 3000억원을 선반영하면서 영업이익이 적자전환됐고, 이에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호반건설은 인수를 포기했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대우건설을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올렸다.

    건설업의 경우 경기에 민감하고 변동성이 심하다는 이유로 회사채 시장에서 기피 업종으로 꼽히는 데다 업계 전반에 해외 사업장에 대한 잠재 위험이 여전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투자심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기준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이자 부담이나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 등 비우호적인 사업 환경도 부담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해외부실이 있어도 국내 주택 호황이 '쿠션' 역할을 했지만, 정부 규제 강화로 이마저도 쉽지 않아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림산업·포스코건설·SK건설 등 A급 건설사 상당수가 증권사 IB들과 조달 관련 협의를 진행하는 등 공모채 발행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상황이 급변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해외사업 비중이 높은 이들 A급 건설사의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A급 건설사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시각이 다소 우호적으로 바뀌면서 올해 기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며 "하지만 대우건설이 대규모 해외손실을 발표하면서 투자자들의 우려가 다시 커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도 건설사들은 당장 대규모 회사채 상환 또는 차환에 대응해야 할 상황이다.

    상반기 만기 도래하는 건설사들의 회사채 규모는 10대 건설사를 포함해 모두 1조196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조원 수준이던 지난해에 비해 20%가량 많다.

    올해는 하반기로 갈수록 미국 금리인상을 비롯해 각국 금리 상승세가 예상되는 만큼 예정된 시기보다 회사채 발행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도 만기일보다 두 달가량 먼저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포스코건설 등 일부 건설사도 만기에 앞서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용등급이 우수한 현대건설의 경우 오버부킹에 성공하는 등 자금조달에 무리가 없었지만, 삼성물산(AA+)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등급이 BBB~A에 그쳐 수요예측을 장담할 수 없는 것도 우려된다.

    때문에 공모채를 발행하기보다는 자체 보유현금이나 단기차입금 형태로 만기 회사채를 상환하는 경우도 있다. GS건설은 지난 5일 회사채 600억원의 만기가 돌아왔지만, 새로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고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다른 업종에 비해 금리를 더 얹어야 하는 건설사 입장에서 금리 상승기인 요즘 회사채 발행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 회사채를 공모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경기 불확실성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수요를 이끌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