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줄기 끝에 활짝 핀 한 송이 연꽃

    이집트는 나일의 선물이다. 기원전 5세기 옛 그리스의 역사가로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린 헤로도토스가 그의 저서 『역사Historial 』에 남긴 말이다. 이 한 마디가 이집트를 가장 잘 대변해준다. 그의 말대로 이집트는 곧 나일 강이며 고대 이집트 문명은 곧 나일 문명이다.
    나일 강이 없으면 이집트는 예나 지금이나 불모의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
    동북 아프리카의 광대한 사막을 유유히 흐르는 나일 강은 그 길이가 6,695㎞로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강을 이테르Iteru라고 불렀다. 고대 이집트어로 「큰 강」이라는 뜻이다.
    이테르에 지명사를 붙인 나 이테르를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어로 부르면서 나일이 된 것이다.
    혹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강의 신 닐루스Nilus에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한다.

    나일 신 하피 (세티1세 신전-아비도스).

    백 나일White Nile...청 나일Blue Nile
    하늘에서 본 나일 강은 마치 세 개의 뿌리를 가진 잎 없는 외줄기 끝에 활짝 핀 한 송이 연꽃과 같다. 줄기 부분이 나일계곡 지대이고 꽃 부분이 나일델타 지대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은 하늘에서 발원하여 지하에 있는 명계冥界: 죽은 자의 세계의 나일 강을 거쳐 아스완의 엘레판티네 섬 부근에서 지상으로 솟아올라와 남과 북으로 갈라져 흐른다고 생각했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아프리카 적도의 오지에 있는 빅토리아 호에서 발원한 백나일White Nile과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한 청나일Blue Nile이 수단의 수도 하르툼Khartoum부근에서 만나 여기에 아트바라Atbara강이 합류하여 하나의 큰 강, 나일 강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시작된 나일 강은 6군데의 물살이 센 급류지대cataract를 지나 이집트로 흘러 들어온다.
    거기서부터 카이로까지 사막지대를 나일 강은 도중에 합류하는 지류 하나 없이 외줄기로 강변에 좁다란 나일계곡의 농경지대를 형성하면서 북류한다. 카이로를 지나면서 나일 강은 몇 갈래로 갈라져 대평원 나일델타를 이루며 지중해로 흘러 들어간다.

    옥토 만드는 홍수...수위 차이 최고15배
    예나 지금이나 이집트는 비가 오지 않는 불모의 사막지대이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살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나일 강의 풍부한 물, 그것도 해마다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수해 아닌 수해를 안겨다준 나일 강의 범람의 덕분이었다.
    6월부터 9월까지 에티오피아 고원 일대에 내린 집중호우로 크게 불어난 청나일의 강물이 6월 말에는 나일 강 상류의 아스완, 7월 중순에는 하류의 델타지대에 도달했다. 하늘은 쾌청한데 나일 강은 마치 엊그제 쏟아진 폭우로 홍수가 일어난 것처럼 강물이 불어났다. 이렇게 불어나기 시작한 강물로 8월이 되면 나일 강은 범람하고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수위가 절정에 이르렀다. 이때 나일 강의 수위는 가장 낮은 6월보다 8배~15배가 높아졌고 강폭은 15~20배가 넓어졌다. 강 주변의 농경지는 물론 인접사막까지 물에 잠겨 얕은 호수처럼 변했다. 마을과 약간 높은 언덕은 외딴 섬처럼 되어 사람들은 배로 다녀야 했다.
    강물이 불어나면서 나일 강은 나일 실트Nile silt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오지의 기름진 앙금을 실어다 줬다. 11월 중순부터 강물이 빠지면 기름진 검은 흙이 쌓여 사막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비옥
    한 땅이 만들어 졌다. 나일 강 유역은 뜨거운 햇볕, 기름진 검은 땅, 그리고 풍부한 물이 어우러져 씨를 뿌리기만 하면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천연의 온실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다음해 2월까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시기이며 3월부터 6월까지가 농산물이 자라고 걷어 들이는 시기였다. 그때가 되면 나일 강 유역은 온통 푸르름으로 뒤덮이고 풍요로움이 넘쳤다.

    '검은 땅'에서 자라는 문명의 꽃
    검은 땅으로 뒤덮인 나일 강 유역은 농사짓기 좋고 물과 먹을 것이 풍부한 지상의 낙원이었다.
    검은 땅의 바로 바깥은 붉은 땅인 사막지대로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기조차 어려웠다. 그들은 죽은 후에도 재생·부활하여 내세에서 이 세상에서와 똑같은 삶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했다. 그들의 이러한 간절한 바람이 고대 이집트 특유의 내세신앙, 장례풍속, 재생·부활·영생의 사생관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것이 고대 이집트 문명의 바탕을 이뤘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이 범람하는 리듬 속에서 싹 트고 자라서 찬란한 꽃을 피웠던 문명이다.
    그뿐만 아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강물이 불어나는 것을 미리 알기 위해 천문학, 물이 불어났다가 빠지면 농토의 경계선을 다시 긋기 위해 측량기술,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저장해 두기 위한 저수지와 관개시설을 만들기 위해 건축기술, 토지의 면적이 얼마나 되고 곡식을 얼마나 걷어 들였는지를 알기 위해 수학이 발달했다. 또한 범람의 시기를 알기 위해 달력을 만들어 사용했다.

    수위 측정 '범람의 집'
    더욱이 고대 이집트인들은 강물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나일 강변의 90군데에 「범람의 집」이라고 불린 나일로 미터Nilometer를 설치했다. 나일로 미터는 나일 강변의 돌 벽에 눈금을 표시하여 만들었으나 일부 나일로 미터는 계단식이나 우물식으로 만들었다. 카이로의 로다 섬이나 아스완의 엘레판티네 섬에는 계단식, 그리고 콤 옴보의 신전에는 우물식 나일로 미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또한 나일 강은 교통수단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막에는 모래뿐이고 도로라고는 아예 없었던 그 옛날에 나일 강은 상류와 하류를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축제에 참가하는 파라오의 거룻배. (람세스 3세 장제전-룩소르 서안)


    계곡은 '돌의 나라'...'돌의 문명' 생산공장
    나일 강이 없었으면 그 넓은 땅을 파라오가 다스릴 수 없었고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석조기념건축물을 만들 수 없었다. 또한 사막지대인데도 나일계곡의 곳곳에 사암·석회암·화강암·규암 그리고 흰 앨러배스터설화석고 따위 돌들이 풍부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들의 나라를 「돌의 나라」, 그들의 문명을 「돌의 문명」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거대한 석조기념건축물을 그토록 많이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일 강 유역에 풍부한 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일 강 늪지대에서 자란 파피루스는 종이의 원료가 되어 일찍부터 기록을 남길 수 있게 해줬다.

    나일의 신 하피 축제
    이처럼 나일 강은 하늘이 이집트에 내린 최고의 선물이었고 이집트는 사막 속에 신이 내린 축복의 땅이었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 강을 나일의 신 하피Hapy로 신격화하여 왕조시대 내내 중요한 신으로 섬겼다. 그들은 해마다 나일의 강물이 불어 날 때가 되면 하피 신을 위해 축제를 열고 「나일의 찬가Nile Hymns」를 부르며 신을 찬양했고 신의 은총에 감사했다. 그들은 강물이 불어나 풍년이 오는 것은 하피 신의 축복 때문이고 강물이 줄어들어 가뭄이 오는 것은 그의 불만 때문이라고 믿었다.

    태양력 탄생...1년 365일, 하루는 24시간, 4개월씩 3계절
    고대 농경 문화권에서는 자연의 규칙적인 변화 곧 비가 오는 때나 씨를 뿌릴 때를 알기 위해 태양력이 발달했다. 반면에 어로 문화권에서는 바닷 물의 움직임으로 물고기가 많이 잡힐 때를 알기위해 태음력이 발달했다. 전형적인 농경사회였던 고대 이집트도 일찍부터 태양력을 만들어 사용했다. 다만 그들은 태양의 운행보다는 나일의 강물이 불어나는 주기를 기준으로 한 해를 정하고 나일 강의 물이 불어나기 시작하는 날을 새해 첫날로 정했다. 그날은 바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소티스Sothis라고 불렀던 가장 밝은 항성 시리우스Sirius가 70일 동안 하늘에서 사라졌다가 아침에 동쪽 하늘에 태양과 함께 다시 나타나는 날이었다. 지금의 달력으로 7월 19일 전후이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에서는 시리우스가 다시 나타나는 하늘의 현상과 나일의 강물이 불어나는 땅의 현상을 합쳐서 태양력을 만들어 사용했다.
    고대 이집트의 태양력에 따르면 1년은 12개월, 1개월은 30일, 여기에 추가일 5일을 보태서 1년을 365일로 정했다. 1년은 나일 강의 수위를 기준으로 4개월씩 묶어 3계절로 나누었다. 강물이 불어나는 계절은 범람기로 고대 이집트어로 아크헤트akhet, 씨를 뿌리고 농작물이 자라는 계절은 파종기로 페레트peret, 농산물을 걷어 들이는 계절은 수확기로 셰무shemu라고 불렀다. 하루는 24시간으로 밤과 낮을 각각 12시간씩으로 나누었다. 고대 이집트의 태양력은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에 카이사르가 만든 율리우스력Julian Calender과 그레고리 13세가 이를 개량하여 만든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1년을 365일 6시간으로 하고 4년마다 하루씩 윤날을 둔 그레고리력Gregory Calender의 기초가 되었다.

    '현대의 피라미드'  길이 485㎞ 아스완댐-나세르 호 
    1902년의 아스완 댐의 완공에 이어 1970년에 「현대의 피라미드」라고 일컫는 아스완 하이 댐이 완공되었다. 나일 강 상류의 사막 속에 길이 485㎞의 거대한 인공호수 나세르 호가 탄생했다.
    그 결과, 홍수의 예방과 안정된 농업용수의 공급이 이루어져 1년에 두 번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일의 범람이 없어지면서 농지, 공업용지, 주택지, 전력 생산이 크게 늘어나 이집트의 경제성장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그러나 두 댐의 완공은 5천년 넘게 나일 범람의 리듬에 맞춰 살아온 이집트인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줬다. 나일 강이 범람하면서 실어다 준 기름진 흙은 더 기대할 수 없고 이제는 화학비료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많은 신전유적들이 침수되고 일부만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구제되었다. 뿐만 아니다. 신전이나 대스핑크스는 염해鹽害가 심해져 언제 파괴될지 모르는 심각한 국면에 부딪히고 있다. 이처럼 나일 강은 이집트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일 시인 헨리 리 헌트는 「나일 강을 생각 함A thought of the Nile」이란 시의 첫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나일 강을 읊고 있다.

    오랜 세월 이집트와 사막 사이를
    조용히 흘러온 나일 강
    위대한 꿈을 이루려는 위인처럼
    모든 시대에 그리고 모든 것에
    찬란하고 영원한 생명을 줘 왔다.

    이처럼 이집트의 생명의 젖줄이며 이집트 문명의 산실인 나일 강은 찬란했던 문명의 유산과 숱한 역사의 사연을 안은 채 오천년의 시공을 초월하여 광대한 모래 바다 속을 오늘도 묵묵히 흐르고 있다. 나일 강은 참으로 위대한 강이며 영원한 생명의 강이다.

    기파랑(02-763-8996) 펴냄 <이집트의 유혹> www.guipar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