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후 한국을 ‘안전한 둥지’로 인식동북아 넘어 세계 첨단산업기지 기회 놓치지 말아야
  • 日 기업들의 한국행 러시

    일본의 첨단기업들의 ‘한국행’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지난달 김해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한데 이어 최근 도레이, 스미토모, 알박, 우베코산, 야스나가, 에어포르구 등 일본의 화학, 자동차부품, 전기전자, 정밀기계, 탄소섬유, IT기업들이 앞다투어 한국에 대한 투자를 계획하고, 공장 신축에 나서고 있다.

    최근 구미에서 산업용 탄소섬유 생산공장 착공식을 가진 도레이는 구미에 1조3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세계 굴지의 섬유기업인 도레이는 한때 한국과 대만의 값싼 섬유소재 때문에 눈물을 삼킨 기업. 1960년대에 외국 기업 최초로 구미 나일론 공장에 대규모 투자를 했으나 곧 한국과 대만의 값싼 제품에 두 손을 들었다.

    전화위복인지 도레이는 이를 계기로 첨단 소재 개발로 방향을 선회, 아무나 만들 수 없는 고품격 섬유를 만들기 위해 탄소섬유 개발에만 40년을 투자했다. 그리고 옛 명성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이런 도레이가 한국에 다시 첨단섬유 생산공장을 짓기로 한 것은 한국이 여러 모로 세계로 진출하는 전초기지로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왜 한국을 택하는가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쓰나미는 일본이 첨단공장의 입지로 결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노출시켰다. 여기에 한국 경제의 위상도 달라져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자리잡아 동북아의 경제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 일본 첨단기업의 한국행을 자극했다.

    도레이는 구미에 단순히 첨단소재 생산공장을 짓는데서 탈피, 2022년까지 원료 분야부터 중간가공 과정, 완제품 제조업체와의 협력까지 전후방 산업이 어우러진 10조원 규모의 ‘탄소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의 고급 생산기술을 구미에 대폭 이전키로 했다.

    일본 스미토모화학㈜은 삼성LED㈜와 함께 대구를 거점으로 LED 핵심소재를 생산할 합작회사 SSLM㈜의 법인등록 절차를 최근 완료했다. 이 회사는 오는 10월 말까지 성서5차 첨단산업단지 내 11만719㎡의 부지에 LED 소재인 사파이어 웨이퍼를 생산하는 공장을 짓고, 올해 안에 시제품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스미토모화학은 또 삼성그룹과의 합작으로 경기도 평택에 스마트폰 부품 공장을 짓기로 했다. 내년 가동 예정인 이 공장은 화면을 누르면 각종 기능이 작동하는 터치 패널을 생산한다.

    일본 굴지의 디스플레이 장비제조업체 알박의 한국 자회사인 한국알박은 경기도 평택시 본사에 부설 연구소인 한국초재료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동안 모회사인 일본 알박의 연구소에서 진행한 연구개발을 한국에서 수행키 위한 것이다. 이 연구소는 디스플레이, OLED, 태양전지, 박막리튬전지, 비휘발메모리 등 첨단 연구과제를 수행할 예정이다.

    이 연구소는 일본에 있는 알박 기술개발부ㆍ지바초재료연구소ㆍ쓰쿠바초재료연구소ㆍ반도체전자기술연구소 등에 이은 알박그룹의 5번째 연구소로, 해외에 세우는 첫 번째 연구소다.
    한국알박은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전자업체를 대상으로 LCD, OLED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화학소재 회사 우베코산(宇部興産)은 오는 8월 충남 아산에서 플라스틱 수지(樹脂) 공장 가동에 들어간다. 휴대전화 화면용으로 흔히 쓰이는 유리판 대신 휘거나 접을 수 있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신종 부품을 만들어 삼성전자 등에 공급할 예정이다.

    또 정밀기계 제조업체 '에어포르구'는 강원도 동해에, 도요타·현대차에 납품하는 자동차 엔진 부품 기업 야스나가(安永)는 전북 익산에 각각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화학업체 닛폰소다(日本曹達)는 한국의 남해화학과 공동으로 전남 여수산업단지에 총 430억원을 투자해 방제제(防除劑) 원료 공장을 건설한다.

    전자 부품회사 도쿄일렉트론도 경기도 화성에 연구·개발센터를 세워 내년 1월부터 가동할 예정이며 전자 부품회사 요도가와휴텍도 지난달 45억원을 투자해 평택에 자동차용 2차전지 핵심 부품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을 생산거점으로 삼는 이유는 전기료와 세금 및 인건비 등이 일본에 비해 싸다는 잇점과 함께 대지진 이후 산업입지로서 한국의 장점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 경제의 탄력성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좋은 사례가 있다. 스위스 UBS증권이 지난 27일 서울하얏트호텔 두 개 층을 통째로 빌려 코리아컨퍼런스를 열고 삼성전자 현대차 등 주요기업들로 하여금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IR를 열도로 했는데 이 자리에 외국 투자자들이 무려 350명이나 몰렸다.
    UBS증권 장영우 한국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기업의 이익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최근 주가 부진의 원인이던 글로벌 경기 하강 리스크는 '소프트패치'(일시적 후퇴)에 그칠 것"이라며 올 하반기 코스피지수가 2500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UBS증권 폴 도노반 글로벌 이코노미스트도 "글로벌 경제는 지난 2008년 80여년 만에 최악의 불황을 겪은 뒤 '추세적 성장(trend growth)'을 할 것"이라면서 "때문에 미국 증시도 2∼3개월이 지나면 상승세로 돌아서고 한국 경제도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추진하는 프로젝트 ‘동방특급’도 그 중심은 한국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의 벤처기업들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동방특급인데, 소프트뱅크는 현재 한국 127개 벤처기업들에 2억3,000만 달러를 투자했으며 향후 규모를 더 늘릴 계획이다.
    KT와 데이터센터 사업을 공동 추진키로 했으며 SK텔레콤, 삼성전자, LG전자, NHN, 엔씨소프트 등 한국 IT 기업들과의 협력 관계를 더욱 확대하면서 불안한 일본 보다는 안전한 한국에서 ‘세계 10대 기업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속내를 전하고 있다.

    세계 첨단산업의 중심지, 세계 경제 중심의 한 축으로 부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는 전적으로 한국에 달려 있다. 이 기회를 살리느냐, 놓치느냐는 바로 한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 '아류 선진국'에 머무느냐를 가름할 것이다.

    본사 부사장/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