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업 철수 선언에도 ‘묵묵부답’…왜?한화, 현대백화점 등 “일단 지켜보자”
  • “슬그머니…버텨볼까?”

    ‘재벌 빵집 엄단’ 이명박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진 지 보름이 지났다. 청와대는 물론 각 부처 담당 부서는 모두 달라붙었다. 이미 현황 파악은 끝났고, 살생부가 작성됐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대기업들이 초긴장 상태다. 이 대통령 말대로 취미로 빵집·카페를 운영하던 재벌 2·3세 그룹으로 지목된 기업들은 서둘러 사업을 철수하는 발 빠른 대처를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버티는 재벌들이 있다. 늘 그래왔듯 “또 다른 이슈가 터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생각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빈스앤베리즈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한화 그룹’과 레스토랑 그리고 냉면과 초밥 업계까지 진출한 ‘현대백화점 그룹’이 대표적이다.

  • ▲ 한화그룹에서 운영하는 커피숍 빈스앤베리즈 전경 ⓒ 양호상 기자
    ▲ 한화그룹에서 운영하는 커피숍 빈스앤베리즈 전경 ⓒ 양호상 기자

    ◆ 재벌빵집 철수, 누가 했나?

    “재벌 2·3세는 취미로 할지 모르지만 빵집을 하는 사람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 단호한 말 한마디가  카페, 베이커리 등 서민사업에까지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하던 재벌들에게 칼을 빼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됐다. 이후 재계가 한차례 들썩이고 있다. 그동안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친기업)’ 정책 기조를 유지했던 이 대통령의 말이어서 그 무게는 더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전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이때 대기업들이 소상공인의 생업과 관련된 업종까지 사업영역을 넓히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진노한 한마디의 파급은 컸다. 그리고 반응도 빨랐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딸 이부진 사장이 운영하는 호텔신라는 26일 커피·베이커리 카페 ‘아티제’ 사업을 철수키로 했다. 아티제는 호텔신라의 자회사 ‘보나비’가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241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호텔신라 전체 매출(약 1조7000억원)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호텔신라는 홈플러스와 함께 만든 제빵업체 ‘아티제 블랑제리’ 지분 19%도 함께 정리하기로 했다. 아예 손을 떼겠다는 말이다. 호텔신라는 “대기업의 영세 자영업종 참여와 관련한 사회적 여론에 부응하고 상생경영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는 취지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도 구내 카페인 ‘오젠’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구자학 회장이 운영하는 아워홈도 순대·청국장 소매시장에서 철수한다. 아워홈은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 구자학씨가 회장을 맡고 있고 구 회장의 네 자녀가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외손녀인 장선윤 블리스 대표도 베이커리 업계에서 철수키로 했다.

    골목상권 침해라는 끝없는 비판에도 꿈쩍 않던 재벌들이 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신속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말의 파급이 심상치 않다. 실제로 재벌 빵집에 대한 실태조사를 지시한 상황에서 업체들이 끝까지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 이명박 대통령의 재벌빵집 엄단 발언에도 일부 대기업들은 여전히 사업 강행을 시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재래시장 한 빵집을 방문한 이 대통령 ⓒ 자료사진
    ▲ 이명박 대통령의 재벌빵집 엄단 발언에도 일부 대기업들은 여전히 사업 강행을 시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재래시장 한 빵집을 방문한 이 대통령 ⓒ 자료사진

    ◆ 여전히 버티는 몇몇 기업들…

    기라성 같은 재벌 빵집들의 철수가 이어지면서 이제 업계의 눈은 ‘철수하지 않은 기업’들에게 쏠리고 있다.

    이들 재벌들은 극도로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선뜻 철수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계열사 한화호텔앤리조트를 통해 베이커리 '에릭 케제르'를, 한화갤러리아를 통해 델리 카페 ‘빈스앤베리즈’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 36개 점포를 두고 있는 이 카페는 김승현 한화 그룹 회장이 대주주라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 2006년 여의도 63빌딩에 1호점을 낸 빈스앤베리즈는 커피, 샌드위치, 음료, 쿠키 등 메뉴로 갤러리아백화점과 주요 상권에 입점하고 있다. 특히 갤러리아는 빈스앤베리즈를 2015년까지 100호점 이상 늘린다는 계획이어서 ‘지역 상권 죽이기’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현대백화점 그룹은 계열사 현대그린푸드를 통해 베이커리 '베즐리', 회전초밥 '본가스시', '한솔냉면' 등의 외식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현대그린푸드는 지난해 말 연회 전문 브랜드 '아르드셰프'를 론칭하는 등 사업을 늘리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두 아들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회장과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사장이 각각 15.28%, 12.67% 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동종 업계에 진출한 재벌들이 속속 철수 선언을 하는 가운데 이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철수냐 진행이냐 결정된 바는 없다. 다만 여론의 추이나 정책의 방향이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면서도 “무작정 철수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