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너 해석’ 자존심 상처? 29일 최후변론 후 배심원단 평의절차 돌입
  • ▲ 애플-삼성전자 특허재판이 펼쳐지고 있는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지법ⓒ
    ▲ 애플-삼성전자 특허재판이 펼쳐지고 있는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지법ⓒ

     

    2조원 규모의 청구금액이 걸린 애플-삼성전자 특허 소송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1차 재판에 이어 이번에도 비전문가들이면서 책임도 없는 배심원들이 ‘아메리카 애국심’ 평결을 내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세계 IT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배심원들이 글로벌경제 시대에 자유무역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애국 평결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법 새너제이지원에서 애플과 삼성전자는 29일(현지시간) 2시간씩 최후변론을 펴게 되며, 배심원단은 이어 결론을 내리기 위한 평의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배심원단 평결은 이르면 이달 말 또는 내달 초에 배심 평결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장은 이를 바탕으로 양측 이의제기 절차를 거쳐 1심 판결을 내리게 된다.

     

    이달 초부터 ‘삼성이 5개 특허를 위반했다’는 애플의 강한 공세에 대해 삼성과 구글의 정교한 반론 작전으로 전세는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펼쳐지는 듯 했다.

     

    그러나 28일 열린 변론에서 재판장인 루시 고 판사가 삼성전자가 ‘반칙’을 저질렀다고 격노하는 일이 발생했다. 양측의 최후 변론을 하루 앞두고 발생한 사건이어서 삼성전자는 상당히 당황해 하고 있다.

     

  • ▲ 애플-삼성전자 특허재판이 펼쳐지고 있는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지법ⓒ

    루시 고 판사는 특히 원고 애플과 피고 삼성전자 양측이 신청한 평결불복법률심리(Judgment as a Matter of LawㆍJMOL)를 모두 기각시켰다.

     

    그는 “모든 쟁점은 배심원단이 판단토록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미국 민사소송제도에서 JMOL은 재판부가 재판 도중 법령이나 증거에 입각해 합리적인 결론이 명확하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배심원단이 특정한 평결을 하도록 지시하거나 혹은 배심 평결을 뒤집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삼성측 변론 전문가와 변호사들을 향해 책상까지 치면서 크게 화를 내면서 진술을 중단시키고 증거 능력을 무효화시키고, 평결불복법률심리를 기각시킨 것은 다분히 최근의 ‘포스너 해석’과 관련 있는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자신이 1차 재판에서 애플 측에 유리하게 판결했으나, 지난 25일 상급심인 연방항소법원이 포스너 판사의 1심 판결 중 애플에 불리한 판단(포스너 해석)을 내림에 따라 새너제이 법원도 이 부분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해져 있는데, 삼성측 변론에 나선 전문가가 이 부분을 파고들자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심하게 화를 내는 상황으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쟁점의 판단을 배심원단에 미룬 것도, 배상금액 일체를 배심원단이 결정케 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나오든 자신이 직접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재판 전부터 의도한 행동은 아니었겠지만, 루시 고 재판장이 이날 삼성측 증인의 문제를 삼아 격노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배심원단들은 중립적인 시각에서 평결을 하기 보다는 애플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계 변호사는 “미국 재판에서 판사가 격노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이날 루시 고 판사의 행동은 그동안 자신이 내심 애플 편을 들어왔는데 지난주 상급심에서 본인의 생각과 다른 결론이 나자 매우 화가 쌓였고, 이날 재판에서 폭발한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며 “향후 공정한 결론이 나도록 재판을 이끌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의 IT업계 전문가들도 이미 특허 논란에 휘말린 5개 특허 중 4개가 구글 것인 만큼 미국 배심원들이 이성적 판단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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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재판정에서 무슨 일이...
     
    루시 고 판사는 28일 증인신문 과정에서 삼성전자 측 전문가 증인 케빈 제피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의 진술을 갑자기 중단시켰다. 이유는 제피 교수가 재판 전에 법원에 제출한 감정 보고서와 다른 내용을 법정에서 진술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이라면 소송절차 위반이다.

     

    제피 교수의 발언은 이번 재판의 막판 변수로 지목된 애플의 미국 특허 제5,946,647호(이하 647 특허)에 관한 것이었다. 이 특허는 컴퓨팅 기기에 입력을 받아들여서 이를 저장한 후 데이터를 검색해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제시하는 방법에 관한 것으로, 흔히 ‘데이터 태핑’ 특허라고 불리고 있다.
     
    문제는 다른 법원에서 이 특허에 대한 몇 가지 정의가 나왔는데 새너제이지원에서 그간 해석해온 것보다 기술 범위가 좁은게 문제였다. 

     

    지난 2012년 ‘애플 대 모토로라’ 사건 1심에서 일리노이북부 연방지방법원 리처드 포스너 판사는 이 특허에 대해 특정한 해석을 내렸는데, 지난 25일 항소심 결정에서 연방항소법원도 이 해석을 유지했던 것.
     
    고 판사는 이로 인해 ‘재해석이 필요하다’며 재판 일정 연기했고, 28일 양측이 최후 변론 대신 증인을 내세워 ‘647 특허’를 놓고 공방을 벌인 것이다.
     
    제피 교수는 이날 “나는 당초 포스너 해석을 그간 판단 근거로 삼았으나 새너제이지원 재판부(고 판사)가 이를 언급하지 못하게 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러자 고 판사는 “보고서에 그런 부분은 없었다. 제피 교수의 이번 증언은 증거 채택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제피 교수가 이런 발언을 하도록 부추긴 것 아니냐”며 책상을 치며 20여분에 걸쳐 삼성전자 측 변호인들을 강도 높게 추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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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제의 647 '데이터 태핑' 특허란?
     
    647특허는 1996년 2월 애플이 낸 것으로, '컴퓨터 생성 데이터의 구조에 관해 액션을 취하는 시스템과 방법'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데이터 태핑 특허'로도 통칭된다.

     

    화면에 링크를 표시하고 클릭이나 '태핑'(두드리기)을 통해 다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이 특허의 주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부 아이콘을 클릭하면 전화번호가 뜨고, 이 전화번호를 두드리면 전화가 걸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특허에는 시스템의 일부로 '애널라이저 서버',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 '유저 인터페이스', '액션 프로세서' 등이 포함돼 있으며, '감지된 구조들에 행동을 링크함'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쟁점은 647 특허 청구항에 나오는 '애널라이저 서버'라는 말과 '감지된 구조들에 액션을 링크함'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다.

     

    2012년 6월 일리노이북부 연방지방법원 리처드 포스너 판사는 '애플 대 모토로라' 사건의 1심 판결에서 이 두 표현에 대해 특정한 정의를 내렸다.

     

    포스너 판사는 647 특허에서 '애널라이저 서버'라는 표현은 당연히 클라이언트와 별도라는 뜻을 함축한다고 판단했다. '서버-클라이언트' 관계라는 말이 쓰이는 통상적인 전산학의 맥락을 고려한 것이다.

     

    포스너 판사는 또 '감지된 구조들에 액션을 링크함'이라는 표현에서 "'링크함'이라는 말은 '지정된 연결을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며, 단순히 '관련을 짓는다'는 뜻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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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25일(현지시간) 연방지구 연방항소법원은 이 사건의 항소심에서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1심 판결의 일부를 유지하는 판단을 내렸는데, 유지된 부분 중에 '애널라이저 서버'와 '감지된 구조들에 액션을 링크함'이라는 표현에 대해 포스너 판사가 내렸던 해석이 포함돼 있었다.

     

    애플은 '애플 대 모토로라' 1심의 용어 해석이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그릇됐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대체하는 용어 정의를 제안했으나 항소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새너제이에서 진행되고 있던 제2차 '애플 대 삼성전자' 재판에서는 '애널라이저 서버' 등 표현의 정의를 재판부가 따로 내리지 않고, 원고 애플과 피고 삼성전자가 각자 유리한 정의를 배심원들에게 제시하던 상황이었다.

     

    한편, 애플은 특허 5건, 삼성은 특허 2건을 근거로 상대편이 특허를 침해한 데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해왔다.

     

    애플의 본소 청구금액은 21억9000만 달러(2조2700억원), 삼성의 반소 청구금액은 623만 달러(64억6000만원)다.

     

    삼성측은 애플의 청구액이 과다하며, 만약 삼성이 배상 책임을 지더라도 청구액의 57분의1 수준인 3840만 달러(399억원)이 적정하다는 입장이다. 애플은 삼성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제1차 애플-삼성 소송에서는 삼성이 애플에 9억2900만달러(9900억원)를 배상토록 명하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1심에서 나왔으며 쌍방이 이에 대해 항소한 상태다.

     

    종착지를 향해 달리는 애플-삼성전자의 특허전쟁.

     

    세계 IT업계는 배심원들이 국가적 감정에 편승하기 보다 '솔로몬의 지혜'를 내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