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비중 높은 자동차, 전자업종 가장 큰 타격 예상정유화학·제약·방산업종, 수혜 가능성 높아 '긍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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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을 깨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사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보호무역 강화가 한국 산업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산업의 흐름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으로,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공화당은 트럼프에 엄청난 힘을 실어 줄 것으로 예상된다.  

     

    9일 트럼프의 당선이 한국 산업계에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동차와 IT, 철강 등은 큰 피해가 예상된다. 정유화학과 제약, 방산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을 것이란 전망이다. 건설과 이통업계는 중립적인 상황이다.

     

    우선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산업의 타격이 가장 우려된다. 트럼프는 공약으로 보호무역 강화를 외쳐왔다. 이에 따라 FTA 재협상이 가장 먼저 예상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게 될 경우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완성차와 부품업체들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미국의 자동차 시장 문을 걸어 잠그고, 한국 시장의 문을 더 넓히라고 요구할 것”이라며 “픽업트럭 시장의 경우 3~4년내에 닫아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차의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고 연비가 낮다. 배기량 기준으로 부과하던 세금을 가격 및 연비 등의 기준으로 바꿀 경우 미국차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게 된다. 김 교수는 이같은 세제 개편 움직임도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수표가 많은 디트로이트를 위한 자동차 산업 부흥 정책이 쏟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채희근 현대증권 팀장은 “미국 자동차 빅3(GM, 포드, 크라이슬러)에 대해 비상식적인, 현재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도 있다”며 “이로 인해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 커다란 변화가 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연비 규제 역시 그 속도나 기준이 상대적으로 둔화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친환경차 우대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탄소배출권을 비롯한 기후문제에 있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 정책이 약화될 것이란 얘기다.

     

    리콜 문제 관련해서도 징벌적 보상으로 인해 국내 자동차 업체에 불똥이 튈 가능성도 제기된다. 폭스바겐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약 11조원을 보상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도 미국에서 리콜 관련 보상 문제가 논의 중이다.

     

    특히 최근 가동을 시작한 기아차의 멕시코 공장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멕시코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되면 기아차는 너무나 피해가 크다”며 “기아차 이외에 글로벌 메이커들 역시 멕시코에서 공급 과잉이 생겨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경우 올해 1~3분기 미국 공장에서 생산·판매된 차량은 30만1000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 늘어났다. 미국 현지에서 판매한 차량은 58만8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했다. 기아차는 올해 상반기까지 미국 공장에서 19만4000대를 생산·판매했다.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했다. 현지에서 판매된 실적은 32만8000대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한 수치다.

     

    수출 비중이 높은 ICT업계에도 부정적일 것이란 관측이다. 스마트폰,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ICT업계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트럼프는 대선 공약 가운데 ICT 관련 정책을 한 차례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전통 산업 육성과 미국인의 이익에 우선을 두는 무역협정 재검토 정책을 수차례 강조했다.

     

    이에 따라 NAFTA, TPP, 한미 FTA에 대한 재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대미 ICT 수풀 물품 대부분은 ITA대상 품목으로 선정돼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WTO 탈퇴 가능성을 내비친 만큼 변수 가능성도 있다.

     

    멕시코의 35% 관세부과 공략은 멕시코에 TV 및 생활가전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국내 전자업계에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멕시코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NAFTA에 따른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지만, 멕시코 관세부과가 실현되면 직접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반덤핑관세에 따른 어려움도 예상된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중국에서 생산된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WTO의 판정이 남아있으나 트럼프가 보호무역기조를 강화한 만큼 통상마찰 심화가 우려된다.

     

    국내 철강업계도 고심이 깊어졌다. 반덤핑, 상계관세 등 향후 강한 수입제재가 예상됨에 따라 국내 철강사들의 대미국 수출 감소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2015년 대미국 철강재 수출은 전년대비 30.7% 감소한 395만5000톤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철강재 수출(3155만톤)의 약 13%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트럼프의 무역 정책을 예상해 볼 때 향후 현 수준의 수출 규모를 유지하기 어려울거라는게 대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간접적으로 철강재 수출에 미칠 영향도 주목하고 있다. 자동차 등 철강재가 쓰이는 수요산업 수출이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철강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심상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보호무역이 강화되면서 한미FTA 재검토 등 전체적인 산업에 압력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철강산업은 열연강판, 냉연강판 등 주요 품목이 무역 규제를 받고 있어 추가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운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법정관리 중인 한진해운이 사실상 청산 절차를 진행 중이고, 현대상선도 자율협약을 겨우 벗어난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은 악재로 평가된다.

     

    교역을 중심으로 운영이 되는 해운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불공정성을 주장하는 트럼프가 당선됨으로서 대미 교역에 제한이 생길 것이란 관측이다
     
    조봉기 선주협회 상무는 "그동안 트럼프가 외쳤던 보호무역주의, 반세계화, 미국 우선주의 등의 성격만 봐도 해운 운송 업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봤을때 교역이 불균등해지면 국내 해운업계에도 불리한 상황이 닥칠수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도 화물 수요가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원·달러 환율 강세(원화약세)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여객수요 감소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반덤핑, 상계관세 등 향후 강한 수입제재가 예상됨에 따라 국내 국적항공사들의 대미 항공화물 수출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미주 노선은 국내 전체 항공물량에서 차지하는 파이가 큰 편이다. 지난해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사이를 오간 항공화물은 모두 54만7429톤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국제항공화물 250만8804톤의 21.8%로 우리나라의 교역국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항공화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 수출 품목들이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하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되면서 대미 항공화물 위축이 우려되는 것이다.

     

    ◇ 에너지·제약·방산업계, 호재 요인 더 많아

     

    트럼프 당선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업종도 있다.

     

    에너지업계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태양광과 바람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재생에너지 사업이 위기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화석연료 사용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기후 변화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탄소 배출로 인해 기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 석탄, 정유, 석유화학업계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량 증가에 따라 유가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자신의 공략에 제시했다. 미국 셰일가스(shale gas) 개발 확대와 캐나다 오일샌드(oil sands) 수입 확대 등을 유가 상승 대비책으로 내걸고 있는 트럼프다. 그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주도하고 있는 원유(crude oil) 가격 선정에 대해 미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카드로 셰일가스와 오일샌드를 활용할 계획이다.

     

    트럼프의 이러한 정책은 국내 에너지업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유로 사업을 하고 있는 국내 정유사들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원유 수입을 통해 석유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한화토탈 등의 기업들에게는 트럼프의 당선이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석탄 가격 상승을 견인하면서 석유화학사들과 정유사들의 수익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환경 이슈로 위축됐던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란 얘기다. 석탄화학업체가 집중된 중국이 트럼프의 당선으로 화학제품 생산 부진을 겪을 경우, 국내 석유화학사와 정유사가 가장 큰 반사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제약업계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는 제약사에 유리할 것이란 관측이다. 

     

    트럼프는 의약품 가격에 대해 정부의 규제보다 시장의 자율 경쟁에 맡겨야 된다고 주장했다. 약가 인하‧해외 의약품 수입 제한을 완화해 소비자들의 약값 부담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녹십자‧LG생명과학 등의 제약사가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글로벌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가 미국에서 시판할 수 있게 되면서 미국 시장 진출의 물꼬를 텄다. 

     

    국내제약사 중 해외수출비중(매출액 대비 40%)이 가장 높은 LG생명과학 관계자는 “환율 상승으로 인해 수출비중이 많은 제약사의 실적을 높이는 밑바탕이 될 것”이라며 “미국 의약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기업들은 수입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방산업계의 경우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군력 감축 및 방위비 분담 증대를 강력히 주장해온 만큼, 향후 국내 국방비 예산 증대 및 국내 개발 투자 등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관계자는 "이번 트럼프 당선에 따라 방위 분담금은 늘어날 것으로 보여진다"며 "반면 국방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운영비에서 나가는 부분이지만 이 비중이 늘어나면 아무래도 예산 자체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경우 방위 예산을 지금보다 더 늘려야 되는 것 때문에 어떻게든 국내 방위산업체들에게는 기회가 생길 것 같다"며 "주한미군 장비, 병력 철수에 따른 국내 무기 개발 및 투자 등의 수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건설·이동통신업계, 큰 영향 없지만 '예의주시' 

     

    건설업계와 이동통신업계는 중립적인 관점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건설기업 가운데 미국 현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적다보니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이란 경제제재가 불완전하게 해제된 상황에서 중동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트럼프가 이란 시장의 활성화에 또 다른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이란 등 중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트럼프가 집권하게 되면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 단계에 그쳤던 프로젝트들이 그대로 멈춰 버릴 가능성이 높다"며 "국제유가 하락세에도 이란시장에 대한 기대로 일말의 여지를 남겨뒀으나, 트럼프가 당선되면 이란시장 역시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경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이통업계도 미시적 시장 변동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이통 업체들은 내수시장 공략을 주로 하기 때문에 트럼프 정권으로 인한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

     

    다만 최근 이통사들이 앞다퉈 공략하고 있는 IoT 북미 진출 계획에 영향을 미칠까 예의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이통업계의 경우 현지 기업들과 활발한 업무제휴를 통해 북미 사물인터넷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외 기업들의 상륙을 꺼려하는 트럼프가 국내 이통사들에게 혹시나 불이익을 주진 않을까 염려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이번 트럼프 당선으로 IoT 시장 진출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섣불리 예상하기는 어렵다"며 "현재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AT&T-타임워너 합병에 꾸준히 반대 기조를 보인 트럼프가 합병 승인 과정에서 암초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 국내 '방송+통신' 융합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