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 강원지사, 북에 원산~속초항 크루즈 이동 제안2002년 만경봉호 전례 있지만, 대북제재 변수… 해수부 패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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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산파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가 남한 방문 경로와 관련해 설레발을 떤 정황이 확인됐다.

    바닷길로 북한 선수단이 이동할 수 있게 크루즈(유람선)를 보내겠다고 제안하는 과정에서 대책도 없이 공수표를 띄우고 관련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패싱(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오는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을 열자고 지난 2일 북측에 제의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회견을 하고 "평창올림픽 참가문제 협의와 함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상호 관심사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 용의를 밝힌 지 28시간여 만에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알려진 바로는 이번 회담 제의에 앞서 남북 간 비공식 접촉이 있었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이 북측에 평창행을 타진했고,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등은 지난달 19일 중국 쿤밍에서 열린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우리나라 국군체육부대 격인 북한 4·25 체육단 문웅 단장(차관급)을 만났다.

    최 지사는 북측 선수단과 응원단 등이 내려올 수 있게 함경남도 원산항에 크루즈를 보내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 지사의 이런 제안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민감한 사안을 다루면서 북측에 공수표부터 날린 것과 진배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수부는 최 지사의 제안과 관련해 아는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의 책임을 물어 5·24 대북조치가 시행되는 만큼 남북한 선박의 해역 운항과 입항이 금지돼 있다는 설명이다. 북핵 위협과 관련해 정부가 독자적 대북 제재를 시행하면서 최근 1년 이내 북한을 들른 선박의 국내 입항도 불허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적 크루즈 출범이 유야무야된 가운데 최 지사가 어떤 크루즈를 보내겠다고 했는지도 불분명하다.

    강원도가 평창올림픽 기간 속초항에서 해상 숙박시설로 활용하려던 용선 크루즈를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겠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하지만 강원도가 추진하던 크루즈 숙박은 지난해 11월 말께 사업을 추진하던 미국 스포츠이벤트업체가 북핵 위협 등 불안한 국제정세를 이유로 용선을 포기하면서 물거품이 된 상태다.

    강원도 한 관계자는 "정박용 크루즈라서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호텔 허가를 내주기로 했지만, 사업자가 포기하면서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애초 강원도는 용선 사업자를 통해 중국 국적 크루즈 중 가장 큰 '스카이씨 골든 에러(7만t급)' 등 2척의 유람선을 빌려 관광객 숙소로 활용한다는 계획이었다.

    다른 강원도 관계자는 "최 지사가 (크루즈 용선이 무산된 이후였지만) 연장 선상에서 아이디어 차원으로 꺼낸 얘기가 아닌가 싶다"며 "당시 크루즈 용선과 관련해 중국측 여행업체를 대상으로 접촉하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문제는 올림픽까지 남은 기간과 관광객 모집 등을 고려할 때 용선 사업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강원도 한 관계자 "용선 업자로선 적잖은 돈을 들여 단기간에 2000~3000명을 모객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크루즈 용선은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게 맞다. 정박 크루즈가 없어도 숙박시설 확보에는 문제가 없다"고 귀띔했다.

    강원도는 올림픽 기간 2인1실 기준 3만실 이상의 숙박시설이 필요하다고 보고 현재 4만3000실쯤을 확보한 상태다.

    최 지사가 북측에 대책 없이 선심성 방남 수단을 제안하면서 관련 주무 부처인 해수부를 패싱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북측 응원단을 '만경봉'호에 태워 부산으로 내려왔고 이를 숙소로도 사용했다.

    하지만 해수부는 지금은 상황이 그때와 다르고 관련 기관·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신중한 태도다.

    최 지사의 바닷길 제안은 그동안 정부가 북한 선수단이 내려올 경우 방남 경로로 육로나 철로 등을 언급해왔던 것과도 차이가 있다.

    이희범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 등은 그동안 북한 선수단이 금강산 육로를 통해 입국할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북한 선수단과 임원단이 육로나 철로로 내려오는 등 특별히 의미 있는 구체적인 평화의 상징으로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최 지사의 크루즈 제안과 관련해 "너무 나갔다"며 "올림픽 재정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할 건가. 사재(私財)로 충당한다면 말리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