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수주액, 30% 위축… 신규수주 없고 그룹 물량만 가득건설사들, 해외 사업부 재정비… 정부는 정책자금 지원 나서
  • ▲ 자료사진. 파나마 콜론 복합화력발전소 전경. ⓒ포스코건설
    ▲ 자료사진. 파나마 콜론 복합화력발전소 전경. ⓒ포스코건설

    새해 초부터 해외건설 수주량이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든 데다 내용도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수주 대부분이 기수주한 물량의 기성이 반영된 것일뿐더러 신규수주 물량도 그룹 물량 등 관계사 공사에 그치고 있다.

    이에 건설사들도 실적 회복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해외사업 조직을 확대하고 인력을 확충하며 공격적인 수주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해외 인프라 사업 수주 확대를 위해 정책자금을 조성, 지원한다. 국내 주택건설 경기가 위축되면서 저조했던 해외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이 펼쳐지는 것이다.

    22일 해외건설종합정보서비스 분석 결과 올 들어 이날까지 국내 건설기업의 신규 해외수주액은 모두 34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51억달러에 비해 33.2& 줄어들었다.

    업체별로는 GS건설이 총 15억달러로 가장 많이 수주를 기록했다. 이어 삼성물산과 현대중공업이 각각 9억달러와 3억달러를 수주했고 △하이엔텍 △리트코 △현대엔지니어링 △은성오엔씨 △삼성엔지니어링 △포스코건설 등이 5000만~1억달러 규모를 수주했다.

    지난해 연간 신규수주액 탑 10에 들었던 SK건설, 대우건설, 쌍용건설, 대림산업, 현대건설 등은 아직 2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부진을 보이고 있다.

    수주가 줄어든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신규수주가 극히 적다는 점이다. 수주 통계에는 새로 계약한 것과 기존 계약 건의 공사비 증액분이 포함돼 있다. 현재까지 수주한 34억달러 중 올해 새로 계약된 건은 3.50%인 1억2093만달러에 불과하다.

    여기에 해외수주이긴 하지만, 사실상 국내 기업 물량이 대부분이라는 점도 문젯거리다. 건설사들이 수주한 공사의 절반 이상이 국내기업, 특히 그룹 계열사가 해외에서 짓는 공장 신설 일감인 것이다.

    GS건설의 수주량 15억달러 중 약 9억달러는 LG디스플레이의 중국 광저우 공장 건설과 베트남 하이퐁 공장 건설 건이다. 싱가포르에서 수주한 4억6000만달러짜리 터널 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물량도 한 때 가족이었던 LG그룹의 물량이다.

    삼성물산의 수주도 마찬가지다. 7억달러 규모의 삼성전자 중국 반도체 공장 건설을 비롯해 미국, 베트남, 인도 공장이 포함됐다. 여기에 삼성디스플레이 베트남 공장, 삼성전기 필리핀 공장 등 그룹 계열사 물량을 다 합하면 전체 수주액의 98.2%인 9억4600만달러가 그룹 물량이다.

    현대ENG는 전체 수주금액보다 많은 7300만달러가 그룹 계열사 물량이다. 과거 계약한 베트남과 알제리의 석유화학 플랜트 공사에서 오히려 계약금 감액이 생기면서 전체 수주액은 6300만달러에 그쳤다.

  • ▲ 자료사진. 베트남 흥하교량 전경. ⓒHDC현대산업개발
    ▲ 자료사진. 베트남 흥하교량 전경. ⓒHDC현대산업개발

    상황이 이렇자 건설사들도 해외수주 역량 강화에 맞춰 조직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해외사업 조직을 확대하고 인력을 확충하면서 공격적인 수주에 나설 채비로 분주하다. 특히나 국내 주택건설 경기가 위축되면서 저조했던 해외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말 정진행 현대자동차 전략기획담당 사장이 부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해외수주를 담당하는 조직인 글로벌마케팅본부를 강화했다. 종로구 계동 사옥 5층에 있던 이 본부는 최근 정진행 부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15층으로 자리도 옮겼다.

    정 부회장은 연초 신년사를 통해 건설명가를 재건하기 위해 힘쓰겠다고 강조한 바 있으며 취임하자마자 중동으로 출장을 떠나기도 했다.

    현대건설 측은 "해외 네트워크에 강한 정 부회장이 직접 글로벌마케팅본부를 챙긴다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며 "올해 국내외를 포함해 잡은 수주 계획이 24조원인데, 7조원 안팎이었던 해외수주 비중을 더 늘리는 것이 회사 목표"라고 설명했다.

    롯데건설도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아 해외수주 역량을 강화하는데 전력을 쏟겠다고 했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해외수주 관련 운영하던 TF를 연초 해외주택영업 부문으로 격상하고 현재 10여명의 인력을 확충하고 있다.

    앞서 하석주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국내 건설시장은 정체 또는 축소가 예상되기 때문에 해외시장을 선별적으로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동남아 시장으로 추가 진출해 현지 사업을 빨리 안정화하는데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대우건설도 해외수주 역량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두고 조직을 개편했다. 지난해 말 사내 기업가치본부 아래 수주심의실을 설치해 수주심의를 지원하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했다.

    대우건설 측은 "최근 전략기획본부 아래 해외인프라개발팀과 신사업개발팀을 설치하고 흩어져 있던 마케팅 업무를 한 곳으로 모아 글로벌 마케팅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 ▲ 투르크메니스탄 '에탄 크래커 및 폴리에틸렌·폴리프로필렌 생산플랜트. ⓒ현대엔지니어링
    ▲ 투르크메니스탄 '에탄 크래커 및 폴리에틸렌·폴리프로필렌 생산플랜트. ⓒ현대엔지니어링

    정부도 올 상반기부터 최대 6조2000억원 규모의 정책자금 지원에 나선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 상반기 56조원 규모 금융 공급을 개시하는 등 전방위 지원할 것"이라며 "국내 기업이 참여한 780억달러 규모 47개 주요 프로젝트 수주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책자금 지원은 투자 리스크가 큰 고위험 국가에 집중한다. 정부는 올 상반기 중 한국수출입은행과 1조원 규모 특별계정을 조성해 이라크와 같은 'B+' 이하 초고위험국 인프라 사업 수주를 지원하기로 했다. 원래 이들 국가의 사업은 리스크 때문에 자금 지원이 어렵지만, 관련 법령을 고쳐 지원할 수 있도록 바뀐다.

    터키,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BB+' 이하 고위험 국가를 위한 수은과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정책자금도 연내 2조원 확대한다. 또 중위험 국가용 글로벌 플랜트·건설·스마트시티 펀드도 3조원 규모로 조성한다. 이 중 1조5000억원은 상반기 중 조성을 마치고 연내 자금 지원을 시작한다.

    이와 별도로 상반기 중 한-아세안 펀드와 한-유라시안 펀드를 각각 1000억원 개설해 연내 지원한다. 신북방·신남방 정책을 위한 것으로, 올해 최소 550억원 수준의 민간 투자금과 재정을 확보했고, 2022년까지 계속 늘려 나간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정부 지원의 실질적 효과가 나타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고 영향도 제한적"이라면서도 "금융지원에 대한 구체적 수치를 제시한 만큼 긍정적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