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일 국세청 고시 개정안 시행불법 리베이트가 공정 경쟁 해친다는 목소리 높아일각서 자영업자 부담 높아져 소비자가 인상 가능성도
  • ▲ 서울 광진구 한 주류 판매 업소에 하이트진로 테라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임소현 기자
    ▲ 서울 광진구 한 주류 판매 업소에 하이트진로 테라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임소현 기자

    주류 판매장려금 제한을 골자로 하는 고시 개정안 시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주류업계 사이에서는 공정한 시장 경쟁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한편, 소비자가 인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자영업자 등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 위임 고시’ 개정안을 다음달 1일 시행한다.

    이번 국세청 고시 개정안에 따르면 주류거래와 관련한 장려금·수수료·대여금, 에누리·할인·외상매출금 경감 등 그 형식 또는 명칭이나 명목 여하에 불구하고 금품과 주류 및 용역 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그간 주류도매업자가 주류회사에 대량의 주류를 주문할 경우 판매량에 따라 추가량을 더해주는 관행이 수십년간 이어져왔다. 도매상은 이 추가로 받은 물량을 가격에 적용해 소매상에 판매해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주류회사가 도매상에 제공할 수 있는 금품 한도는 1% 이내, 소매상에는 3% 이내로 제한됐다.

    금품을 제공받은 도매상이나 소매업자도 모두 처벌 대상이 되는 리베이트 쌍벌제를 도입하고, 과태료 부과 방식을 동일인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해도 시간과 장소 등이 다르면 각각 건별로 적용하는 등 처벌 규정도 강화됐다.

    이번 개정은 지난해 3월 전국주류도매업중앙회가 도매상 간 차별이 존재한다며 국세청에 건의하며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같은해 5월 국회에서 관련 공청회가 열렸으며, 올해 3월 국세청이 일부 제조업체를 불러 간담회를 연 뒤 5월 말 전격적으로 고시했다.

    이를 두고 업계의 의견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대부분의 주류업체들은 암묵적으로 이뤄져온 불법 리베이트가 금지되며 주류 시장이 건강한 경쟁의 장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하이트진로는 이번 개정안으로 공정한 거래질서가 마련될 것으로 보며, 향후 도소매업과의 상생협력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최종소비자들의 혜택을 도모하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개정안을 환영하는 업체들은 불법 리베이트가 상위 매출 도매상들의 독과점 구조를 유발하는 원인이었다며 강력한 규제가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전국주류도매입중앙회는 "기존에도 리베이트는 법으로 금지돼 있었지만 명확한 유권해석이 없었던 터라 그동안 변칙적인 영업 활동 등을 가능케 해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해 왔다"며 "암암리에 또는 관행적으로 무자료 거래, 덤핑, 지입차 등과 같이 거래 질서를 문란케 하고 탈세로 이어질 수 있는 행위들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앙회는 "이번 고시 개정안을 통해 리베이트를 줄이면서 위스키의 가격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반면 일각에서는 소비자가 인상과 자영업자, 예비 창업자들의 부담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세청은 리베이트에 활용되던 수천억원대의 자금이 신제품 연구개발(R&D) 등에 투입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투명한 주류 유통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판매장려금이 중단되면, 도매상이 받을 수 있는 할인 폭이 작아지고, 소매점 납품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제조업체 영업사원들이 소매점에게 제공해오던 메뉴판, 입간판 등 5000원이 넘는 물품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면 소매점은 해당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결국 소비자 가격의 인상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 ▲ 서울 용산구 한 주류 판매업소 주류 메뉴 안내판. ⓒ임소현 기자
    ▲ 서울 용산구 한 주류 판매업소 주류 메뉴 안내판. ⓒ임소현 기자
    예비창업자들의 진입장벽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프랜차이즈협회 관계자는 "영세 창업자들의 창업 자금줄이 막혀 외식 골목상권이 무너질 우려가 높다"며 "이번 고시개정안이 시행되면 주류도매상들과 영세 창업자 간의 이른바 ‘주류대여금’이 완전히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소규모 영세 창업자들이 ‘주류대여금’을 이용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은행 등 제1 금융권의 금융대출 문턱은 턱없이 높고 제2 금융권의 금리는 너무 높기 때문"이라며 "주류도매상으로부터 창업에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빌리는 ‘주류대여금’은 금융기관 접근이 어려운 소규모 창업자들에겐 자금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사금융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도매상들은 주류를 취급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을 대상으로 저금리, 무이자 대출 등을 지원해왔다. 판매장려금이 중단되면 이같은 창업 지원 역시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자영업자들과 예비 창업자들의 지원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이어져온 관행에 대한 규제로 같은 업계 사이 '주던 자'와 '받던 자'의 온도 차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이에 대해 관련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의 취지 자체에는 공감의 목소리가 높지만 소비자 가격 인상 등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개선이 필요했던 부분을 개선할 수 있으면서도 소수가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상생 측면에서의 고민이 필요해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