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남측 시설 싹 들어내야"크루즈 전문가 "부정적 영향… 상품성 아쉬워""대북 이슈 말고 콘텐츠로 활로 찾아야"
  •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금강산 관광지구 현지 지도.ⓒ연합뉴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금강산 관광지구 현지 지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내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하면서 남북 교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에 먹구름이 꼈다. 금강산 관광 상품화를 통해 침체한 산업의 활로를 모색하려던 크루즈(유람선) 관광도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은 분위기다.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는 김 위원장이 금강산 일대 관광시설을 현지지도하고 고성항과 해금강호텔, 문화회관, 금강산호텔 금강산옥류관 등 남측에서 지은 시설을 돌아본 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 지시에 따라 북측이 조만간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이나 사업자인 현대아산과 협의를 열자고 제안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김 위원장 발언 의도를 파악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정부 당국자는 "일단 상황을 파악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금강산에 남녘 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 등을 들어 '대화 여지'를 내비친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 ▲ 금강산 관광 재개 기원 플래카드.ⓒ연합뉴스
    ▲ 금강산 관광 재개 기원 플래카드.ⓒ연합뉴스

    금강산 관광 주사업자인 현대아산이 속한 현대그룹은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국면에 들어서면서 관광사업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든 가운데 나온 보도에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 관광은 1989년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남측 기업인으로선 처음으로 북한을 공식 방문하고 북한 당국과 금강산 관광 개발 의정서를 맺으면서 역사적인 물꼬를 텄다. 10년 뒤인 1998년 11월 유람선 금강호가 강원도 동해항을 출발하면서 물길이 먼저 열렸고, 2003년 금강산 육로관광이 시작됐다. 2008년 관광객이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으면서 중단되기까지 금강산을 찾은 관광객은 총 195만5951명으로 집계됐다.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얼어붙던 남북 관계는 문재인 정부 들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서 남북·미북 간 정상회담으로 긴장 완화 분위기가 조성됐다. 남북 경제협력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에 대한 기대가 커졌지만, 비핵화 문제를 둘러싼 미북 대화가 벽에 부딪히면서 상황은 안갯속 국면이다.

  • ▲ 크루즈.ⓒ연합뉴스
    ▲ 크루즈.ⓒ연합뉴스

    국제사회와 미국의 대북 제재가 완화하면 금강산 관광 상품화를 크루즈 산업 활성화의 촉매제로 삼으려던 업계는 낙담하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의 남측 시설 철거 지시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짙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해사본부장은 "크루즈관광을 비롯해 일반관광 측면에서도 부정적이다"며 "지난 15일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전 경기처럼 (이번 철거 지시도) 현재의 남북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앞으로 미북 대화가 불씨를 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남북 관계가) 교착국면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황 본부장은 "금강산 관광은 남북 교류에서 상징적인 측면이 있고 다녀온 관광객의 반응도 좋아 상품성은 충분하다. 금강산을 거쳐 러시아나 일본을 가는 연계 상품은 버스보다 비싼 가격에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면서 "크루즈 관광업계는 (금강산 코스를) 대북 제재가 완화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안타깝다"고 부연했다. 황 본부장은 "(이번 조처가) 그동안 북한이 보여왔던 (대외)전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현재로선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크루즈 관광업계에선 대북 이슈에 기대지 말고 크루즈 산업을 부활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금강산 유람선사업에도 관여했던 한 업계 전문가는 "(금강산 관광 상품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한다"면서 "대북 이슈에 기대기보다는 차별화된 콘텐츠로 승부를 걸어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내 크루즈 관광은 외부 변수에 따른 부침을 심하게 겪고 있다. 크루즈 관광객은 2010년 17만명, 2013년 80만명, 2014년 106만명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가 확산하면서 88만명으로 크게 줄었다. 메르스 위기를 넘기고 2016년 195만명으로 다시 늘었다가 이듬해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여파로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발길이 끊기면서 39만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크루즈 관광객은 총 20만명쯤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