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환수율 25.4%로 급락…시중 공급 애로고액원이 개인 금고나 회사 캐비닛으로 숨은 꼴코로나 이후 '현금 최고' 고액권 비축 수요 늘어자영업자 비중 높은 국내 대면 상거래 위축 충격
  • ▲ 경산 조폐공사 화폐본부 5만원권 제조공정 현장. ⓒ한국조폐공사
    ▲ 경산 조폐공사 화폐본부 5만원권 제조공정 현장. ⓒ한국조폐공사
    올해 시중에 풀린 돈 '신사임당'이 자취를 감췄다. 국내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현금이 최고'라는 심리가 5만원권 실종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5만원권 환수율이 30% 밑으로 뚝 떨어져 시중 고액권 공급에 어려움이 커지는 등 '돈맥경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는 지적이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10월중 5만원권 환수율은 권종 발행(2009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25.4%를 기록했다.

    5만원권 환수율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9.4%포인트 급락했다. 쉽게 말해 시중에 풀린 5만원권의 4분의 3이 개인 금고나 지갑, 회사 캐비닛 속에 숨어 자금 순환이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유독 환수율이 급감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불확실성과 저금리 기조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가 커지면서 고액권 현금을 비축해두는 예비용 수요가 증가한 영향이 크다. 

    실제 국내 국채 발행은 지난해 47조원에서 올해 115조원으로 급증했고, 이에 시중 유동성이 확대되면서 통화량은 전년 동기 대비 24.0% 증가했다. 이는 2000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감염병 특성상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국내 음식·숙박·여가 서비스업 등의 대면 상거래 활동이 크게 위축된 것도 5만원권 환수경로에 부정적 충격으로 작용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면세점이나 카지노 등 관광지 인접 점포와 환전영업자 거래 영업점 및 ATM의 5만원권 입금이 크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환수율은 특정 기간 중앙은행이 시중에 공급한 화폐량에 비해 다시 돌아온 화폐량의 비율을 말한다. 환수율이 높으면 화폐가 시중에서 활발하게 유통된다는 뜻이고, 환수율이 낮으면 화폐가 어딘가에 묶여 있거나 다른 부분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5만원권 중심으로 은행권 순발행(발행액-환수액)이 크게 늘어나 환수율이 급격히 하락했다. 

    1~10월중 5만원권 발행액은 21조9000억원으로 늘었으나 환수액은 5조6000억원으로 큰 폭 감소했다. 

    이런 현상은 과거 금융불안기와 대조된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고액권인 만원권의 환수율이 107.1%, 98.1%에 달했다. 당시 경기 위축으로 발행액과 환수액이 모두 감소했었다.

    주요국 또한 우리나라와 비슷한 양상이다. 코로나19 이후 고액권 중심으로 화폐수요가 증가해 화폐발행잔액이 빠르게 늘면서 환수율이 크게 하락했다.

    유로존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100유로 이상 고액권 환수율이 19.3%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저액권은 6.4%포인트 소폭 하락했다.

    이는 경제적 불확실성 확대와 저금리 기조 지속 속 금융기관 점포 및 ATM 축소로 인한 현금접근성 약화 등으로 예비용 화폐수요가 크게 증가한 데 기인한다. 서비스업 중심으로 한 대면 거래가 부진한 양상도 반영됐다. 

    한은은 향후 코로나19의 진행 상황에 따라 5만원권 환수율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코로나가 국내에서 지속 혹은 진정되더라도 주요국에서의 사태 확산으로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경우 5만원권 순발행 기조가 상당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환수율이 낮은 5만원권이 범죄수단에 악용되거나 비자금 조성 등 지하경제로 흘러 들어가 화폐유통을 제약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한은은 "단기간에 크게 하락한 5만원권 환수율은 지하경제 유입 등의 구조적 문제라기보다 예비용 수요 확대 등 경제적 충격이 크게 작용한 데 주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