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신·증축건물 미술작품 의무화…공공임대만 제외박찬걸 부이사장 "월 200원, 자존감 바꿀 금액 아냐"
  •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미술장식품을 공공임대아파트에만 적용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입주민에게도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해야한다는 지적이다.

    7일 한국미술협회 박찬걸 부이사장 겸 충남대 조소과 교수는 "2011년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 조항중 임대아파트에 법적미술작품을 제외하는 정책은 시민의 문화적 수준을 제한하고,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그동안 정부는 주거복지 측면에서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조성하고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정책을 펼쳐왔다. 이는 취약계층 주거비 부담을 줄이는데 상당한 일조를 했지만 반대로 '공공임대=빈곤층'이란 공식을 낳기도 했다. 

    실제 공공임대주택은 민간분양주택에 비해 내부자재 품질이 떨어지거나 조경·문화시설 등 정주환경이 좋지 못했다. 이에 어린학생들 사이에선 한때 '휴거(휴먼시아 거지)'·'엘사(LH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박찬걸 부이사장은 "휴거란 말은 경제논리로 서로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차별하는 비극의 언어"라며 "지난 20년간 우리사회는 소득분배 균형이 깨지고 세계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고 회고했다.

    현행법을 살펴봐도 공공임대주택과 일반분양주택 간 차별화된 조항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진흥법 '건축물에 대한 미술작품의 설치' 조항에 따르면 연면적 1만㎡이상 공동주택이나 근린생활시설 경우 신·증축할 시 건축비용의 일정금액을 의무적으로 회화 및 조각공예 미술품 설치에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2011년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과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박찬걸 부이사장은 "문화체육관광부에 문의한 결과 공공임대주택에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를 의무화할 경우 임대료 상승요인이 될 수 있다는 답변이 왔다"면서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월 200원~300원 가량인데 임대료가 이것 때문에 늘고 주는지 의문이고, 상대적 박탈감이나 자존감과 바꿀 수 있는 금액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이사장은 "작품설치에 있어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를 구분 짓는 것은 차별요소까지 안고 있는 독소조항"이라며 "개인의 불평등을 넘어 사회 불평등을 극명하게 드러낼 뿐"이라고 단정했다.

    다음은 박찬걸 부이사장의 '문화예술진흥법, 임대아파트 미술작품 제외 역차별' 기고문 전문이다.

  • ▲ 박찬걸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 학과장. ⓒ 뉴데일리DB
    ▲ 박찬걸 충남대학교 예술대학 조소과 학과장. ⓒ 뉴데일리DB

    '휴거'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신조어입니다. 수많은 언어들이 만들어지고 허물어지며 시대의 속살을 보여주기 마련입니다만, '휴거'라는 말은 양극화와 불평등의 현상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보여줍니다. 임대아파트 브랜드 휴면시아와 거지의 줄임말입니다. 언어는 사회의 인품이며 체온입니다. 우리 시대가 얼마나 냉정한지 들여다보게 하는 말입니다. 경제논리로 서로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차별하는 비극의 언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경제학자는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는 소득분배의 균형이 깨지고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성장의 과실이 대체로 고루 분배되었던 과거보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불평등의 악화는 우리 삶 곳곳에서 어두운 실체를 드러내 마침내 어린 아이들의 사고까지 지배하고 있는 듯한 두려움마저 듭니다.

    이러한 때에 임대아파트에 법적 미술 작품을 제외한다는 정책은 절망적인 소식입니다. 소수가 누리던 예술작품들을 시민에게 되돌려주기 시작한 공공미술은 이제 서서히 외적으로 질적으로 나아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그것은 마땅한 시민의 보편적 권리이기도 합니다. 문화는 고루 향유되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과 정책이 시민의 문화적 수준을 오히려 제한하고 후퇴시키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차별의 요소까지 안고 있는 법안이기도 합니다.

    유럽에는 그 도시의 심장을 미술관이라고 당당하게 자부심을 갖는 도시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문화예술이 가야할 궁극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고 가며 무심코 바라볼 수 있는 아파트 조형물에서 공공미술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품 설치에 있어서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의 구분은 독소 조항임에 분명합니다. 개인의 불평등을 넘어 사회의 불평등을 극명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문화예술은 그저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줄 뿐 그 무엇으로도 구분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젊은 작가들이 국내보다 오히려 세계시장에서 서서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작품이 구분없이 사람이 사는 곳, 앞마당 같은 아파트 정원에 작품을 세우고 질적 성장을 해나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작가들 스스로 시민들에게 외면 받지 않도록 자기성찰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많은 작가들의 깊은 지성과 세련된 인문학적 고민이 문화 변혁의 중심에 있는 사회가 되기를 또한 바라봅니다.

    문제의 막다른 골목에선 늘 정의의 문제에 부딪친다고 합니다. 지금 시대는 불균형으로 몸살을 앓는 중입니다. 소득이건 문화예술이건 성장하고 그 과실을 고루 나누며 사람을 키우는 시대적 요구가 절실합니다. 임대아파트를 문화의 변방으로 만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임대 아파트는 다른 아파트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어느 곳에 살건 모든 아이들이 한 나무에서 같은 열매를 따고 한 그늘에서 쉬는 평등한 풍경을 꿈꿉니다. 국가와 시민과 작가들이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