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격상 '오락가락' 고민만 수일째… 미루다 '봉쇄 조치'할 판 병상부족은 이미 예견된 일, 선제적 대응 없이 부랴부랴 공공병원 압박백신·치료제 임상현장서 못 쓴다… 명확한 환자분류·중증도 예측 '시급'
  • ▲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 마련된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권창회 기자
    ▲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 마련된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권창회 기자
    정부가 자화자찬했던 ‘K-방역’은 실패로 돌아갔다. 애초에 진단키트 수출 성과를 제외하곤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마스크 쓰기’ 등 개인방역을 잘 지키는 국민성 때문에 그나마 버텼다. 

    K-방역은 과대포장됐고 모호한 영역에 있었으나, 정부는 ‘경제와 방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욕심을 부렸다. 이로 인해 대다수 감염병 전문가들이 10개월 전부터 우려했던 겨울철 대유행과 병상부족은 현실이 됐다. 대한민국 의료체계는 붕괴 직전에 놓였다. 

    조만간 3단계 격상은 이뤄지겠지만 이 역시 너무 늦었다. 백신 도입이 가시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나오지 않았으며 중증환자를 돌볼 병상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선제적 접근을 하지 못하고 급하게 땜질식 정책만 쏟아내다 보니 3차 대유행이 가속화된 것이다.

    ◆ 3단계 이후가 문제… 政, 거리두기 ‘갈팡질팡’ 

    현재 국내 방역체계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핵심이다. 모든 국민이 거리두기 단계 조정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상황인데 정부는 갈팡질팡 고민만 이어가고 있다. 정책의 방향성이 시시각각 바뀜에 따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열고 3차 대유행으로 인한 3단계 격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3단계 격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경우 과감하게 결단해 달라”라고 방역당국에 주문했다. 

    박능후 중대본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도 같은 날 “정부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수도권 등 지자체, 관계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하며 3단계로의 상향 검토에 착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틀이 지나자 정부의 태도는 달라졌다. 3단계 격상은 ‘시기상조’라는 내용이 더 강조되기 시작했다. 

    지난 15일 중대본 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는 “3단계가 주는 무게감과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우선 지금의 거리두기 단계를 과연 우리 모두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3단계 격상에 대한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다 16일 신규 확진자가 1078명으로 역대 최대 수치로 올라가자 정부 또 하루 사이에 3단계 격상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발표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이후 최대 규모다. 단계 상향에 대해 깊이 검토하고 있다. 지난 한 주간 전국 하루 평균 환자 수는 833명으로 3단계를 검토할 수 있는 기준인 800~1000명 범위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현시점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거리두기로 쫓아갈 수 없는 낭떠러지에 놓여 있으므로 3단계 격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미 이달 초부터 대다수 감염병 전문가들은 ‘일시적 3단계 격상’을 통해 방역망을 견고하게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정부는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제도 살리지 못했고 방역도 지키지 못했다. 

    이제 3단계로 올려도 문제는 도사린다. 진작에 정부가 전문가들의 말을 듣고 거리두기 격상을 결정했다면 효과가 나타났겠지만, 이미 늦었다. 

    김우주 교수(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는 “3단계로 격상된다고 해도 신규확진자 수가 예전처럼 100명대 이하로 줄어들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거리두기 단계에 없는 봉쇄 조치가 필요할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 대응 여력 있었는데… 뒷북 행정에 병상도 없다

    3차 대유행 여파는 수도권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로 인해 수도권 코로나19 중증환자를 치료할 병상이 남아 있지 않다. 

    서울시·인천시·경기도에 따르면, 16일 기준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치료병상 수는 각각 78개·25개·49개이며 이 중 남은 병상은 각각 1개·2개·0개다.

    서울은 중증환자·중등도환자·경증환자 등을 위한 시설 모두가 부족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루 신규확진자 수가 400명에 육박하고 있어 병상 소진이 임박했다. 

    중증환자나 중등도 환자가 치료받는 서울시 감염병전담병원 병상의 가동율은 현재 85.7%로, 입·퇴원 등에 따른 준비를 감안하면 한계치에 이르렀다.

    정부는 확진자가 폭증하자 부랴부랴 전국 공공병원에 코로나 병상을 확보하라고 요청을 했지만, 하루하루가 위중한 상황이라 너무 늦은 결정이었다. 

    실제 지난 주말부터 전국의 공공병원은 코로나 병상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금주 내 병상확보는 어느 정도 이뤄지겠지만, 기존 입원환자를 급하게 전동, 전실, 전원시키는데 애를 먹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인한 부수적 피해도 만만찮게 발생하는 상황이다. 

    엄중식 교수(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는 “중환자 병상을 만들려면 적어도 1주일, 이동형 음압기가 설치된 일반 병상을 확보하려고 해도 3~4일은 걸린다. 미리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관련 내용을 요청해 준비했으면 지금의 상황은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 백신·치료제는 먼 얘기… 아직 ‘렘데시비르+덱사메타손’

    정부는 4400만명분 해외 백신(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 존슨앤존슨-얀센) 내년 1분기 도입과 2분기 접종 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시점 유일하게 계약이 완료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부작용 관련 자료제출이 늦어 美FDA 승인이 미뤄지고 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민 우선’ 행정명령에 서명함에 따른 타 백신 확보 불안감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백신을 들여온다고 해도 3차 대유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폭증하는 환자를 백신으로 예방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내년 상반기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길게 남았다. 

    더군다나 국내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아직 멀었다. 임상현장에서는 아직 코로나19 중증환자에게 렘데시비르와 덱사메타손 병용요법을 쓰고 있다. 

    실제 중앙감염병 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해 대다수 병원에서는 임상을 통해 치료효과가 입증된 ‘렘데시비르+덱사메타손’을 사용하고 있다. 중증 단계로 넘어가지 않은 환자에게는 해열제, 수액공급, 진해제 등 대증치료를 이어간다. 

    일부 병원에서는 현재 국내에서 개발 중인 셀트리온의 항체치료제, 녹십자의 혈장치료제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치료목적 승인을 얻어 사용 중이다. 그러나 임상이 완료된 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옵션으로 넣기엔 제한이 걸린다. 

    결국 백신과 치료제가 임상현장에 나오기 전까지 코로나19 치료 과정에서 시급히 개선돼야 할 부분은 중증도에 따른 환자 분류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부족한 병상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최근 안찬식 교수(일산병원 연구분석팀 연구전문의)는 국책과제의 일환으로 ‘인공지능(AI) 기반 코로나19 중증환자 예측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확진자의 현재 조건을 바탕으로 산소치료가 필요할지,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하는지,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지 등을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있는 지표다. 

    그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고 백신을 당장 쓸 수 없는데 환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는 확진자의 상황을 예측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에 개발한 예측 알고리즘이 정부, 지자체, 각 의료기관에서 활용된다면 효율적 병상배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