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의 농담으로 부도 위기 겪은 영국의 래트너즈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미안하다 고맙다' 논란셀럽 혹은 오너3세… SNS 논란에 얻은 것은
  •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인스타그램.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싼 값에 제품을 팔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그건 우리 제품이 완전 쓰레기(total crap)이라 그렇습니다.”

    보석사 래트너즈(Ratner's) 그룹의 오너 2세이자 CEO였던 제럴드 래트너가 1991년 영국 기업가협회 연례회에 연사로 섰을 때 던진 농담이다. 딱딱한 분위기를 녹이려고 한 일종의 자조적인 농담이었고 실제 청중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졌지만 이를 전해들은 소비자는 그렇지 않았다. ‘쓰레기’라고 한 제품을 사겠다는 소비자는 없었다. 

    이 한마디의 농담으로 승승장구하던 래트너즈의 기업가치는 약 8000억원이 날아갔고 1년도 되지 않아 회사는 파산 직전에 몰렸다. 그는 결국 이듬해 CEO에서 물러났고 회사명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 래트너즈에서 시그넷으로 변경됐다. 오늘날 시그넷 쥬얼러스의 이야기다. 

    오너의 한마디가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논할 때 이 래트너의 일화는 빠지지 않는다. 악의가 없는 농담에 불과했어도 시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고 심지어 기업가치와 기업 그 자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살아있는 사례가 됐다.

    이는 최근 SNS 논란으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 부회장은 최근 SNS에서 우럭 요리나 랍스터 요리 사진을 올리며 “미안하다. 고맙다”고 적어 일약에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시절 세월호 분향소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는 문구를 조롱하기 위해 굳이 해산물에 저 문구를 썼다는 해석이 불씨가 됐다. 진위여부는 차치하고 문제는 그 이후다. 정 부회장은 이후 비꼬듯 SNS 중간 중간에 ‘미안’과 ‘고맙다’를 섞거나 ‘sorry’, ‘thanks’를 쓰는 식으로 대응했다. 비꼬듯 ‘OOO OOOO’ 식으로 남긴 글도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정 부회장은 10여일 만에 “우리 홍보실장이 오해 받을 일 하지 말란다”며 “50년 넘는 습관도 고쳐야한다”고 우회적으로 종지부를 찍었지만 이 일련의 과정이 남긴 상처는 적지 않다. 당장 정 부회장의 이미지 타격은 물론이고 신세계그룹에 대해 불매하겠다는 소비자도 나타났다. 그를 특정 극우커뮤니티 이용자와 동일시하는 시각도 생겨났다. 

    이들의 영향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그것이 크던 적던 간에 이 과정에서 오너 3세인 그가 얻을 것은 거의 없다. 셀럽(Celebrity)이 종종 논란을 통해 노이즈마케팅 효과를 얻지만 그는 셀럽이기 이전에 오너3세이자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래트너의 사례를 곱씹게 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오너의 권한이 막강한 국내 대기업집단 특성상 오너의 한마디가 가진 무게감은 적지 않다. 그 한마디에서 그룹의 미래전략과 현재인식, 투자성향과 그룹이 지향하는 가치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주요 대기업집단 오너들은 시장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공식석상에서 최대한 정제된 어휘를 구사하고 준비되지 않은 말을 아낀다. 

    정 부회장의 SNS가 잘못됐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SNS의 순기능은 분명히 있다. 정 부회장은 자사 제품에 대한 마케팅 효과를 그 어떤 광고보다도 효과적으로 전파할 수 있으면서 보다 가까운 그룹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전통적으로 딱딱했던 대기업 오너의 권위를 친숙하게 끌어내렸다는 점도 순기능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가 순기능에 못지않은 리스크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정 부회장의 그 자신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신세계그룹과 협력사 임직원 수만명의 생계와 삶도 함께 달려있다. 

    정 부회장의 SNS에는 이날도 와인병과 함께 “고맙다 ㅈㄷ야, 과용했어 미안하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 셀럽의 끝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