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월세 물건 줄고 가격 하락세도 멈춰8월부터 갱신청구권 쓴 물건 시장에 풀릴 전망전문가들 "임대차 시장 불안 예상" 한목소리새 정부, '임대차법 전면 재검토' 공약에 관심
  • ▲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연합뉴스
    ▲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연합뉴스
    #1. 서울 성북구 전용 84㎡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세입자 A씨는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A씨는 2020년 9월 지금 사는 전셋집의 보증금을 6억원에서 6억3000만원으로 올려 재계약했다. 당시 같은 단지 전세 시세는 최고 7억원에 달했는데, 2020년 7월 말 개정된 주택 임대차법 덕분에 보증금을 5%만 올려주고 갱신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전세가격을 법정한도까지만 올리고 2년 더 살 수 있다는 것에 한숨 돌렸지만, 감당할 수 없게 오른 인근 전세 시세에 계약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2. 서울 마포구에 사는 B씨는 석 달 뒤 아파트 전세 계약이 끝난다. 집주인이 나가 달라고 해서 주변 전셋집을 알아봤지만, 시세가 너무 올라 계약할 앞이 막막해졌다. B씨는 "지금 살고 있는 전셋값보다 거의 40~50% 가까이 시세가 뛰었다. 중산층이라고 하더라도 선뜻 계약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임대차3법 시행 2년을 앞두고 전·월세 물건이 가파르게 줄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번 쓴 매물은 향후 4년간 보증금을 올리지 못할 것에 대비해 가격을 크게 높여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에 따른 전세대란 우려가 커지면서 새 정부의 '임대차법 전면 재검토' 공약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전·월세 물건은 4만1750건으로, 올해 1월1일과 비교해 19.7%, 임대차3법 시행 직후인 2020년 8월1일과 비교해 30.1% 줄어들었다.

    자치구별로는 올해 초와 비교해 △강동구 -48.4% △성북구 -38.0% △동대문구 -35.2% △노원구 -33.3% △광진구 -33.0% △송파구 -29.5% △동작구 -24.7% 등 순으로 감소 폭이 컸다.

    전셋값 하락세도 멈추는 분위기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전세가격은 5월1주 보합세로 전환했다. 1월5주 하락세로 돌아선 이래 13주 만이다. 도봉구(0.01%), 동작구(-0.02%), 영등포구(0.01%) 등은 상대적으로 가격 수준이 낮은 구축 위주로 상승 거래가 발생하며 오름세를 나타냈다.

    서초구(0.00%)와 강동구(0.00%)는 상승과 하락 거래가 혼조세를 보였으며 송파구(0.01%)는 매물 적체가 완화되며 상승 전환했다.

    부동산원 측은 "전세대출 부담 등으로 대부분 지역에서 하락 또는 보합세를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거나 선호도가 높은 신축 위주로 매물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월세 물건이 줄어든 가운데 8월 임대차3법 시행 2년을 앞두고 시장이 다시 출렁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해 말 올해 건설·부동산 경기를 전망하면서 올해 전세 시장이 6.5%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0년 8월 첫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시세보다 저렴하게 계약됐던 매물이 올해 8월부터 풀리면서 시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업계에서는 임대차3법 시행 2년이 도래하면서 새로운 갱신 물량은 전월세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아 주변 시세만큼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출 규제에 따른 전세대출이 제때 되지 않으면 월세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주거난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020년 7월 시행된 임대차3법은 세입자가 원하면 전·월세 계약(2년)을 한 차례 연장(계약갱신청구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전·월세 인상률을 최고 5%(전월세상한제)로 제한하고, 전·월세 계약을 30일 이내에 의무신고(전·월세신고제)하도록 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는 "임대차3법 시행 2년이 지나면 인상 폭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전셋값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보유세 부담이 늘어난 집주인들이 전·월세를 올려 부담을 전가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안정세였던 임대차 시장이 수요는 꾸준한 가운데 최근 매물이 감소하면서 일부 지역의 호가가 높아지는 분위기"라며 "신규 입주 물량도 부족한 가운데 8월 계약갱신청구권 만료 시점을 앞두고 있어 임대차 시장의 불안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계약을 하면 거의 동일한 금액으로 4년간 임차를 줘야 하기 때문에 집주인으로서는 지난 2년간 못 올린 금액에 향후 4년간의 상승 금액을 모두 반영해 매물을 내놓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임대차3법의 폐지 혹은 개편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임대차법 전면 재검토'를 공약했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출범 초기인 3월28일 "임대차3법이 시장에 혼란을 줘 폐지나 축소 같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새 정부에서는 임대차3법의 '폐지'가 아니라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시행한 지 2년이 된 법을 갑자기 폐기하면 주택임대차 시장에 또 다른 혼선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법 개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한몫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인사청문회에서 임대차3법에 대해 "폐지에 가까운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원희룡 후보자는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임대차법 목적에는 동의하지만, 가격과 기간에 대해 우악스럽게 누르기보다는 임대와 임차 상호간 수요 공급이 숨통이 트여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넓은 시야의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임대차3법 개선에 따른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대중 교수는 "주택임대차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전·월세 물량을 확대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물량을 늘리기가 불가능하다"며 "임대차 계약 기간을 3년으로 늘리고, 임대인에게 임대주택 공급에 따른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의 보완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전날 서울시는 임대차법 개정안 시행 2년을 맞는 8월부터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되는 저소득 가구에 대출금액 최대 3억원 내에서 연 3%대까지 이자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임대차법 시행 이후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올해 8월부터 내년 7월 사이 갱신계약이 만료되는 무주택 임차인을 대상으로 최장 2년까지 한시적으로 지원하며 소득 구간별로 금리를 차등 적용해 저소득 가구일수록 더 많은 이자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