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건설시장, 고유가 지속에도 건설 발주 위축아시아-유럽 선전 불구 대형 프로젝트 실종으로 수주 부진유가 고공행진-원전 시장-신사업 진출 등 하반기 기대감 솔솔
  • ▲ 멕시코 도스보카스 정유 프로젝트 공사현장. ⓒ삼성엔지니어링
    ▲ 멕시코 도스보카스 정유 프로젝트 공사현장. ⓒ삼성엔지니어링
    우크라이나 사태와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건설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국내 주요 건설사들의 상반기 해외수주 성적도 부진했다. 하지만 국제유가 고공행진과 원전사업 수주 확대, 신시장 진출 등으로 하반기에는 해외건설 시장의 발주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다.

    5일 해외건설협회 자료 분석 결과 상반기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 규모는 모두 120억달러로 지난해 상반기 147억달러에 비해 18.3% 줄어들었다. 수주 건수는 245건에서 274건으로 소폭 증가(29건)했지만 아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부진했다.

    지역별로는 △아시아 55.9% △중동 23.3% △유럽 15.8% 순으로 수주 비중이 컸다.

    협회측은 "아시아 수주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며 "연초 주요 공사의 계약 성공과 함께 호조세로 출발했으나, 이후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는 연초 우리 기업이 발주한 대형 화학 공장 수주로 순조롭게 출발한 이후 중국, 베트남 등에서 6월 말까지 총 67억달러로 전년동기 64억달러 실적을 넘어섰으며 전체에서의 비중도 가장 컸다.

    같은기간 중동은 41억달러에서 28억달러로 32.0% 감소했다. 올 들어 국제유가가 반등했지만, 지난 몇년간 지속한 저유가 상황으로 주요 산유국들이 재정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면서 발주물량 감소 및 지연 등으로 대형 사업 수주가 저조한 실정이다.

    11억달러 규모 러시아 화학 공장 등 총 19억789만달러를 수주한 유럽은 지난해 19억9443만달러 수준을 유지(-4.33%)했으나, 중남미(1809만달러, -65.3%)와 태평양·북미(1788만달러, -88.1%) 지역의 수주는 급감했다.

    또다른 수주 부진의 원인으로는 '초대형 프로젝트의 실종'이 꼽힌다.

    올해 수주건수는 소폭 개선된 모습을 나타냈지만 수주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10억달러 이상 초대형 프로젝트는 삼성엔지니어링이 수주한 러시아 화학 공장이 유일하다. 국내 건설업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사업인 줄루프 유전 개발 프로젝트 수주를 노렸지만, 최종적으로는 일본 대형건설사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러면서 계열사 등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이 해외에서 건설하는 공장에 대한 수주 의존도가 높아졌다.

    올해초에는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 '라인(LINE) 프로젝트(21억달러)'를 롯데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했고, 중국에서는 삼성전기 천진 3공장 신축공사(5억4000만달러), 아르헨티나에서 포스코의 염수 리튬 상업화 1단계 상공정(1억달러) 등이 수주 실적에 반영됐다.

    이에 국내 제조사의 총수주액은 36억달러로, 지난해보다 41% 증가했고 2019년 13억달러와 비교하면 165% 뛰었다. 경제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수익성이 보장된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부진에도 장밋빛 전망은 나온다. 고유가 상황 지속에 따라 하반기부터는 중동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두바이유 기준 유가는 올 상반기 평균 101.8달러로, 지난해 상반기 63.5달러에 비해 60.3% 뛰었다.

    유가 상승으로 중동 산유국들의 재정 여건이 튼튼해진다면 대규모 발주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건설사의 해외수주액도 크게 늘어날 기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중동 최대 발주처 중 한 곳인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이미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전년보다 30% 이상 늘린 최대 500억달러로 제시한 바 있다. UAE 국영 석유회사인 아부다비석유공사(ADNOC)도 올해부터 2026년까지 127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글로벌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른 중동 지역의 탈석유화 정책도 기대감을 키우는 요소다.

    사우디와 UAE 등은 국가 차원의 중장기 계획을 통해 산업 다각화를 위한 정책 비전을 설정하고 석유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부문 개발, 수소 생산 및 탄소 저감 기술 개발 등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석유 산업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비용 절감과 효율성 제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건설업계에서는 관련 시장 진출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라진성 이지스자산운용 팀장은 "유가 고공행진으로 부를 축적한 중동 산유국들이 투자에 나설 전망"이라며 "최근 글로벌 EPC 시장이 입찰자 우위로 재편되고 있어 EPC 능력을 갖춘 국내 건설사들의 수주 확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 인프라 사업인 '네옴시티' 프로젝트에도 속도가 더해지고 있다. 사우디는 2016년 발표한 '비전 2030'을 바탕으로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해 5000억달러 규모의 미래형 메가시티 네옴시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사우디는 비공개로 입찰을 진행했으며 국내에서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네옴시티 '더라인'의 터널 공사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주액은 약 10억달러 규모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이미 대형사들은 중동 시장에서의 대형 프로젝트 발주물량이 나오는 것에 대비해 시장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중동에서 초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이어지면 하반기에는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원전사업도 건설사의 해외수주액 확대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대우건설은 체코 원전 프로젝트 수주전에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한국수력원자력 등과 함께 민관 합동으로 '팀코리아'를 꾸려 참여했다. 체코는 코바니 지역에 총 8조원을 들여 1000~1200㎿급 원전 1기 건설에 착수했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유가가 오르고는 있지만 중동 국가들이 여전히 코로나19 이후의 불확실성 등에 대비하기 위해 상반기까지는 대형 프로젝트 발주에 조심스러워했다"며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해외 발주처들이 적극 나설 수 있는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